무심코 지나친 이름에서 발견한 1세기 여성 기독교인의 원형
1세기 여성 그리스도인 유니아는 명망 있는 사도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를 자신과 옥고를 치른 이로 소개하면서 “사도들 사이에서 두드러진 사람”으로 평한다. “나보다 앞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롬 16:7·새한글성경)이라고도 부연한다. 이는 유니아가 로마 인근에서 복음을 전하다 바울처럼 고초를 겪었으며 초대교회 성도 사이에선 널리 알려진 인물임을 시사한다. 유대인 여성인 그는 가부장 문화가 만연했던 로마제국에서 어떻게 칭송받는 복음 전도자가 될 수 있었을까.
초대교회 전문가인 영국 신약학자 리처드 보컴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유니아가 예수의 후원자이자 부활의 증인 중 한 명인 요안나와 동일인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로마식 여성 이름인 유니아를 유대식으로 바꾸면 요안나로 읽을 수 있다는 게 주된 이유다. 당시 여러 국가에서 활동하던 유대인의 경우 히브리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그리스식이나 로마식 이름을 두는 관행이 있던 것도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리스도 아닌 예수를 유스도(유스투스·골 4:11)로, 실라를 실루아노(실바누스·고후 1:19)로 바꾸는 식이다.
보컴이 집필한 신간 ‘복음서의 여자들’(죠이북스)은 짧게나마 복음서에 이름이 언급된 여성들을 각종 고대 자료를 토대로 추적한 책이다. 복음서에 이름을 남긴 여성은 총 15명인데 저자는 이들 중 요안나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살로메 등 주로 예수를 직접 목격한 이를 집중 분석한다. 세간의 조명은 덜 받았지만 초기 그리스도 공동체에선 유명한 이들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는 “여태껏 연구된 바 없거나 짧게만 연구된 이들로부터 우리가 알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를 알면 깜짝 놀랄 것”이라며 “이 책은 그저 복음서의 여자를 다룬 또 하나의 책이 아니”라고 장담한다.
특기할만한 건 저자가 고유명사에서 역사적 사실을 캐내는 ‘이름 연구’로 1세기 여성의 삶을 발굴했다는 점이다. “이름 연구는 (타 분야에선) 빈번히 활용되는 역사 연구법이지만 신약학 연구에서는 대체로 무시돼 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마주하는 고대 자료는 그 본질상 이름에서 상당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고 이들 증거는 계속 늘고 있다”고 설명한다.
유니아와 요안나가 동일인일 것이라는 설 역시 이름 연구에서 출발했다. 그는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눅 8:3)로 소개되는 요안나가 당대 유대 사회의 전반적 정서와 달리 친 로마적 문화에 익숙했을 것으로 본다. 남편 구사가 섬기는 지도자 헤롯이 제국의 권력과 유착하는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로마식 이름을 쓰던 이들은 친 헤롯파 귀족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요안나가 식민지 엘리트 집단에 속해 로마식 이름인 유니아를 일상에서 썼을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저자는 이름을 단서로 모은 여러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유니아라 불린 예수의 제자 요안나를 시대상에 맞게 복원시킨다. 그가 재구성한 내용에 따르면 요안나는 유복한 집안서 태어난 유대인 여성으로 혼인 당시 아버지에게 증여받은 개인 재산이 있었다. 남편 허락 없이 자기 뜻대로 예수의 사역에 후원할 수 있던 배경이다.
예수 운동에 합류한다는 건 당시 상류층 여성이 택하기 힘든 선택지였다. 그럼에도 요안나는 2년여간 100여명에 달하는 제자 무리에 속해 예수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전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예수의 빈 무덤, 부활한 예수의 승천 현장에도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 이후 요안나는 남편과 로마에서 박해를 무릅쓰고 10여년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복음을 전했다. 사도 바울이 이들 부부의 명성을 접한 배경이다.
2002년 미국서 이 책을 펴낸 저자는 성경 속 여성을 연구한 여러 페미니즘 신학자의 견해를 참고하되 이에 매몰되지 않는 입장을 취한다. 가부장제 등을 고려해 성경을 분석하는 일도 필요하나 “본문 자체를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진지하게 살피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심코 넘겼던 복음서 속 여성의 참모습은 한국교회 내 여성의 역할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좋은 실례가 될 것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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