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의 시시각각] 상속세 개편 전에 고민할 것들

서경호 2025. 3. 18.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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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호 논설위원

세금 깎아준다는 발표는 긴장하고 듣게 된다. 특히 선거 앞두고 세금을 덜어준다는 말이 정치권에서 나오면 포퓰리즘 의심부터 하고 본다. 경제 기자 오래 하다 생긴 고질병이다.

정부가 유산세 방식의 상속세를 75년 만에 대수술하겠다고 지난주 발표했다. 각 상속인이 받은 만큼 세금을 내는 유산취득세로 바꾸는 내용이다. 사망자 전체 유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세는 세금 매기고 거두는 데는 편했지만 받는 만큼 세금을 내는 과세형평성에선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반면에 유산취득세는 상속인별로 과세 정보를 관리해야 하는 행정부담은 추가되지만 상속인 개인별 과세여서 형평성 면에서 좋은 세금이다. 정치권에서 상속세 부담 완화가 거론되는 것은 수도권 집값이 급등하면서 상속세 과세 대상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상속세 대상자가 2000년엔 1400명에서 2023년 2만 명으로 급증했다.

「 선진국 올해 상속 재산 GDP 10%
청년 삶에 미치는 상속 영향 커져
세습주의가 자본주의 흔들 수도

유산취득세 방식의 상속세 개편은 옳은 방향이다. 세제는 단순하고 간결할수록 좋다. 공제만 늘리면 누더기인 낡은 세제가 더 복잡해진다.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이 던지는 공제 확대 위주의 상속세 개편보다 유산취득세 도입이 훨씬 낫다. 다만, 고민할 문제가 좀 있다.

첫째, 전체 세수는 줄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 안에 포함된 유산취득세 도입과 자녀공제 상향으로 연 2조원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 개별 세목의 불합리를 고친다고 전체 세수가 펑크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둘째, 세금 거두는 입장에서 상속세의 매력(?)은 무시할 수 없다. 상속세는 소득세나 재산세에 비해 조세저항이 약하다. 상속은 개별적으로 발생한다. 누구나 혼자 죽는다. 상속세가 불만이어도 집합적으로 힘을 모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재산세처럼 집주인이 임대료를 올려 세입자에게 세금을 전가하는 일도 없다. 세금은 세금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경제 주체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일을 덜 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줄일 수 있다. 한데 상속세는 그렇지 못하다. 세금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꼼짝마 세금’이 따로 없다. 조세 전문가들이 상속세를 ‘병목 과세’라고 부르는 이유다. 상속세를 고칠 때는 국가 비교만 할 게 아니라 재산과세의 큰 틀 안에서 조세부담을 균형 있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고율의 상속세 탓에 경영권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다. 기업 승계 시 주식·부동산 등을 과세하지 않고 나중에 현금화할 때 세금을 물리는 자본이득세 도입을 검토할 만하다.

셋째, 우리도 세습 자본주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세습주의(inheritocracy)의 귀환’이라는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관심 있게 읽었다. 선진국의 올해 상속재산은 국내총생산(GDP)의 10%인 6조 달러에 달한다. 베이비부머는 재산을 잘 굴렸고 전쟁과 인플레이션도 피할 수 있었다. 소득보다 자산의 불평등이 심하기 때문에 이들의 상속재산은 더 큰 소득과 부의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세습주의가 능력주의라는 이상(理想)뿐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지적했다. 보수 성향이 뚜렷한 이 잡지가 상속세를 세습주의를 교정할 가장 공정한 정책이라고 줄곧 주장해 온 것도 눈길을 끈다.

서울 아파트 가격 중위 값이 10억원에 육박하는 한국도 이젠 세습주의의 폐해를 걱정할 때가 아닐까. 서울의 연소득 하위 20% 가구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배율(PIR)이 지난해 말 상위 20% 주택 기준으로 88.3이었다. 서울의 저소득층이 최상급지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소득을 한 푼도 안 쓰고 88년을 모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이들이 20억원 아파트를 배우자와 두 자녀에게 상속해도 세금 한 푼 안 낸다는 보도를 보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상속세와 아무 상관없는 이들의 분노와 좌절을 계속 방치하면 이코노미스트의 걱정처럼 자본주의가 정말 위기에 빠질지 모른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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