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대통령’ 시대를 완전히 끝내자

2025. 3. 2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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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인류 역사에서 처음 민주공화국을 만들 때 근본 원칙은 권력분립이었다. 일인 지배에서 다수 지배, 일인 통치에서 제도를 통한 통치로의 전환을 말한다. 이 근본 원리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민주공화국 건설은 의미가 없었다.

일인 통치의 폐해를 절감한 인류로서 최고 집행권자 일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결코 허용할 수 없었다. 수상·총리로 번역되는 국가 최고 행정수반의 용어가 모두 관리자·선임장관·제일행정관·최고행정관으로 불린 이유였다. 오늘날 대통령으로 번역되는 ‘president’ 조차 애초 직임관·조정자의 뜻이었다. 그는 단지 한 사람의 ‘최고 시민(Citizen-in-Chief)’이자 ‘최고 공복’일 뿐이었다.

「 대통령이란 용어는 일본 번역어
시대착오적·봉건적 관념의 산물
민주·공화·시민적 용어로 바꿔야
권력분립 반영한 ‘직임관’이 적절

첫 민주공화국 역시 애초에는 ‘대통령제 미국’이 아니라 ‘의회제 미국’으로 불렸다. 의회제 국가는 대표가 지배하는 ‘자유공화국’과 동의어였다. 민주공화국들의 초기 호명이 모두 자유공화국(free commonwealth)이었던 것은 분명한 뜻을 갖는다. 모두가 공통(common)의 복리·재화(wealth)를 갖는 나라의 시민은 자유롭기(free) 때문이다. 즉 공통복리=공화국은 인간을 자유와 만나게 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었다.

한국은 헌법과 권력구조에서 미국식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국·중국·일본에서 president의 초기 번역은 통령·군주·수령·두목·원수·국주(國主)를 비롯해 여러 가지였다. 군주제 흔적이 물씬 나는 용어들이었다. 당시 천황제 국가였던 일본의 번역어 중의 하나가 대통령이었다. 군주제적·봉건적 의미를 갖는 ‘통령’에 외려 대(大)를 덧붙인 시대착오적 퇴영이었다.

당시 미국 헌법과 정치에 비추어 대통령은 맞지 않는 인식이자 언어였다. 천황제 관념이 반영된 것이었다. 근대적인 시민적·공화적·민주적 인식의 산물이 전혀 아니었다. 이후 한국에서도 여러 국가문서와 언론, 그리고 학술서에서 퇴영적 일본 번역어인 대통령 용어가 수입되어 사용되었다. 한국 헌법에 이 용어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19년부터였다. 그리고는 광복 80년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공공과 민간의 많은 기구·조직·단체의 대표자 명칭으로 president를 쓴다. 그러나 모두 회장·의장·총장·사장이지, 단 하나도 대회장·대의장·대총장·대사장이 아니다. ‘대’가 갖는 군주제 시대의 전권·숭배·복종의 의미를 유념할 때 대통령은 더욱 사용하면 안 된다. 본시 주·주권자·왕·군주는 유일 절대권을 갖는 ‘종교’와 ‘왕국’의 최고 지위를 동시에 의미하는 말이었다. 놀랍게도 완전 한 뿌리였다. 절대 교리와 절대 지배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은 그로부터 나왔다.

21세기 이 민주와 공화, 자유와 자율의 시대에 더 이상 우리 마음과 나라에 대통령을 두면 안 된다. 헌법과 제도의 최고 공직자 명칭은 더 안된다. 대통령이라는 잘못된 인식 및 습속과 단호히 결별할 때가 되었다. 최고 집행권자를 직접 선출하려는 국민의 열망을 반영하여, 헌법에 집행부 최고 직위 president는 그대로 두되, 원뜻을 살리면서도 민주공화국에 맞는 이름으로 바꿀 때다.

대통령 용어 대신 민주공화국 원리와 한국의 권력독점 현실에 비추어 다른 언어를 갖자. 필자는 ‘제1직임관’을 제안한다. 또는 최고행정관도 좋다. 본래 직임은 ‘건물이나 사무실의 나뉜 한 부분을 맡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직임관이 권력분립의 본래 의미에도 맞고, 권력을 독점하는 뉘앙스도 없으며, 무엇보다 대권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권력분립국가와 권력집중국가 사이에 1인당 GDP와 삶의 질, 그리고 자유·평등·갈등·민주주의 지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전자는 계속 발전하고 후자는 중간에 주저앉거나 후퇴하는 이유는, 권력분립으로 인해 타협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합리성과 실용주의의 차이 때문이다. 일방적 독점과 지배로 인한 저항과 갈등의 악순환 고리를 벗어난 것이다. 합리성·실용주의·발전은 권력분립이 낳은 자유와 창의의 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자유공화국을 향한 모든 주요 사상과 실천들이 동의한 공통점은 최고 권력자 대권(prerogative)의 철폐였다. 이 점은 자유공화국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준거였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대통령은 대권의 폐지는커녕 대권 자체를 의미한다. 후보조차 대권 후보로 불린다. 심지어 대권 후보가 없는 정당은 살아남지도 못한다. 다양성과 자율성을 해치는 근본 요인이다. 민주공화국 초기 선현들이 크게 우려한 전형적인 ‘선출된 대권’이다.

무엇보다 남의 잘못된 번역어인 ‘대통령’ 용어와 관념에 사로잡힌 채, 우리가 마음과 현실에서 계속 일인 대권을 지지하며 추종한다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자유민으로서 크게 부끄러운 일이다. 세계에 당당한 민주시민인 우리 자신에 대한 모멸이다. 독점과 갈등의 뿌리인 대통령 시대를 끝내고, 다원적·자율적인 직임관 시대를 열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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