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汶楗 풍수유람] 54. 일본 수상의 선영
2024년 11월, 풍수 동호인 5명과 함께 일본의 도쿄와 도쿄남부를 풍수 간산하였다.
일본의 역대 수상(총리대신)은 103대, 65명을 배출했고 필자가 간산한 선영은 대략 15분의 선영인데, 이번에 간산한 4분 수상의 선영을 소개한다.
■이토 히로부미 묘소.
이토 히로부미(伊藤 博文, 1841~1909년)는 우리에게는 불공대천의 원수이지만 일본인에서는 매우 추앙받는 인물이다. 미천한 신분에서 입신·현달한 인물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 일본인들의 잣대라고 한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에도막부 시절, 농민의 목숨은 자신의 것이 아니였다.
성실한 농민이었던 하야시 주조(林十藏)가 하급 무사 이토(伊藤)가문에 입적(入籍)함에 따라 아들인 하야시 리스케(林利助)도 이토 히로부미로 개명할 수 있었다.
히로부미 일생은 행운의 연속이었다. 농민에서 무사로 신분 상승된 것 이외에도 그의 출생지가 죠슈번(長州藩)이었고, 16살에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쇼가손쥬쿠(松下村塾)에서 공부도 했다. 죠슈번은 사쯔마번과 더불어 에도막부 타도의 맹주였으며, 그곳에서 주요 인물들과 인맥을 쌓고 서양문물과 군사학에 관심을 갖게되었다.
그는 “상황과 인물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이후 이토는 1871년 12월 ~ 1873년 9월까지 미국와 유럽 12개 나라를 순방하는 이와쿠라(岩倉)사절단의 일원이 되어 견문을 넓히며 일본 근대화의 초석을 놓는 안목을 키웠다.
1882년 헌법조사를 위해 유럽을 유학.
1884년 갑신정변후, 청의 리훙장(李鴻章)과 텐진(天津)조약을 체결하여, 조선에서의 청의 종주권을 배제.
1885년 초대내각 총리대신.
1889년 이토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대일본제국헌법”이 반포.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초대 조선통감에 부임.
1907년 고종을 강제퇴위 시키고, 군대를 해산하여 조선의 내정·외교·군권을 장악.
1909년 추밀원 의장으로 러시아의 외무장관과 조선문제, 극동에서의 일본권리를 확인하기 위해서 시찰길에 올랐다가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척살됨.
이토 히로부미 묘소. 도쿄 시나가와구 니시오이(西大井).
대문은 잠겨있고 옆에는 이등박문공묘소(伊藤博文公墓所)라는 표지석이 서있다.
쪽문의 옆의 차임벨을 눌렀다. 한국에서 왔는데 잠시 입장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개방할 때 오라는 대답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일본어에는 유도리(ゆとり)라는 말은 있지만 일본인은 유도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 이토 묘소는 그의 기일인 10월 26일을 전후로 3일간 개방한다고 한다.
(이토 묘소는 2018년에 촬영한 것임)
이토 히로부미 묘소. 앞에서 들어오는 맥로가 그의 묘소에서 멈추지 않고 청룡방으로 방향을 틀어 부인 묘소에서 명당을 맺었다. 묘소는 맥로의 면배의 배(背)에 해당하는 대흉지이다.
@ 이토 히로부모 묘소의 관리는 잘하면서, 안중근 의사의 시신을 어디에 어떻게
유기(遺棄)했는지를 밝히지 않으면 일본의 양심은 없다는 생각이다.
■요시다 시게루 묘소
요시다 시게루(吉田 茂,1878~1967년)는 제 45·48·49·50·51대 5선의 총리대신으로 2,616일을 재임한 장수 총리의 한 사람이다.
전후 일본 정치의 보수본류를 만든 주역이다. 그는 전후 혼란을 극복하고 일본을 안정과 번영의 토대를 만들었으며, 대외적으로는 미국·유럽과의 협력의 길을 다져 놓았다. 넉넉한 풍모에 시거를 피우는 모습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시계루는 자유민권운동 계열의 타케우치 쯔나(竹內 網)의 5남으로 태어났다. 반정부음모로 투옥된 아버지가 아들의 장래를 위하여 친구인 요시다 겐조(吉田 健三)에게 양자로 보냈다. 양부(養父)인 겐조가 일찍 사망하자 11살의 나이에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다. 1967년 10월, 요시다 시계루가 사망하자 일본 정부는 부도깡(武道館)에서 국장을 치루고 도쿄 미나토구(區)에 있는 아오야마(靑山)묘원에 장사지냈다.
시게루 구광터. 2014년 6월, 묘소를 찾아가니 묘소가 사라졌다.
국장으로 모셨지만 흉지의 불리함을 견디지 못한 후손들이 2011년에 이장해 갔다.
시게루 부부 묘소. 요코하마 구보야마(久保山)묘지.
맥로도. 묘소는 전면의 가파른 옹벽을 향해 있고, 뒤쪽도 축대를 높게 쌓아 올린 곳에 모셨다. 전통풍수의 관점에서는 이런 곳에는 절대로 묘소를 쓰지 않을 것이다.
맥로는 묘소 뒤쪽 넓은 묘원을 지나와서 시게루 묘소에 25회절 명당을 맺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권주자나 대기업인을 배출할 수 있는 역량의 혈처이다.
@ 제92대 총리대신(2008.09~2009.9월)을 지낸 아소다로(麻生太郞)가 요시가 시게루의 외손자이다.
■하토야마 선영
2024년 10월 하순, 국회박물관에서 “일본은 계속 사죄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 그의 이런 발언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였다. 10년 전에는 서대문 형무소의 유관순 열사가 갇혔던 감방을 방문·헌화했고, 광장의 추모비 앞에서 무릎 끓고 사괴했다.
양식이 살아있는 정치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 由紀夫) 전 총리의 말과 행동이었다.
직업(가업)을 세습하는 것은 일본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정치인 집안에서 정치인이 나오는 것도 흔한 현상이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손자가 총리대신을 한 경우는 많지 않다. (아베 신조와 그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브스케도 조손(祖孫)이 총리였음). 하토야마 가문은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 명가(名家)이다.
하토야마 선영. 청룡방 증조부모, 중앙 조부모, 백호방 가문 표시. 도쿄 야나카(谷中)묘원.
증조부 하토야마 가즈오(鳩山和夫, 1856~1911년)
도쿄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했다. 미국 예일대학에서 일본인 최초로 법학박사를 받았다. 도쿄제국대학 교수와 와세다 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이후 8선의 중의원 의원과 중의원 의장을 역임했다.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1883~1959년)
도쿄제국 대학을 졸업하고 부친의 후광으로 32세에 중의원에 당선되었다.
패전 이후, 보수 우익정당인 일본자유당을 창당했지만 1946년에 연합군 사령부에 의해 공직에서 추방된다. 1952년에 정계로 복귀한 이후 제 52, 53, 54대 (1954.12월 ~ 1956년 12월) 총리대신을 역임했다.
그는 소련과의 국교를 회복하여, 일본의 유엔가입이 가능케 하였다.
부모 묘소. 가문 묘소 앞 측면.
하토야마 이이치로(鳩山威一郎, 1918~1993년)는 외무장관을 지냈으나, 가문 안에서의 그의 경력은 대단한 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장남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 由紀夫, 1947년생)는 야당인 민주당으로 2009년 총선에서 압승한다. 재미있는 것은 조부가 기틀을 다진 자민당의 54년 장기 집권체제를 무너트린 점이다.
차남인 하토야마 쿠니오(鳩山 邦夫, 1948년생)는 중의원 13선에 문교, 노동, 법무장관 등을 역임했다.
맥로도. 묘소 뒤에서 진입하는 맥로가 마지막 분기점에서 주혈은 하토야마 유키오의 조부묘소로, 차혈은 백호방에 있는 유명 화가 요코야마 다이칸(橫山 大觀)묘소로 진입한다. 풍수파워는 중국의 후진타오 부모 묘소보다 더 좋다는 판단이다. 하토야마 유키오가 자민당이었다면 아베 신조를 능가하는 장기 총리도 가능하였을 것이다.
묘역의 공간은 좁지만 3대 6분을 한 곳에 모셨으니 풍수파워가 상승작용을 하였다. 묘역이 넓고 봉분이 크다고 풍수파워가 좋은 것이 아니다.
@ 2018년 간산했을 때는 가족의 납골항들이 많이 있었느데, 3대(6위)만 남기고 정리하였다.
■고이즈미 선영
일본은 다수당인 자민당 총재가 수상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 루트이다. 2024년 9월, 자민당 총재선거에 이시바 시게루가 당선되었다. 비록 낙마했지만 40대의 고이즈미 신지로(小泉 進次郎)가 출마하여 주목을 받기도 했다.
고이즈미 가문도 세습 정치가 집안인데, 신지로는 총리대신을 역임한 준이치로의 아들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郎, 1942년생)
국회의원이던 부친이 급서(急逝)하자, 지역구를 물려받아 중의원에 12번 당선되고 제 87,88,89대 총리대신을 역임했다. 비교적 장기집권(2001. 4~
~2006. 9월)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자민당 총재의 임기를 제대로 마쳤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한국을 방문하여 한일관계 유지에 노력하였으나, 노무현 정부 때에는 독도를 일본에 포함시키는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여 반일 감정을 촉발시켰다.
고이즈미 신지로(小泉 進次郎, 1981년생)
아버지인 준이치로가 2008년에 정계 은퇴를 하면서 지역구를 물려받아 국회에 입성한다. 2009년 국회에 입성한 이후 2024년까지 늘 1위로 당선되면서 6선의원이 되었다.
아베 내각에서는 제 27,28대 환경장관을 지냈으며 작년 9월에는 자민당 총재직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백호방 쥰야(小泉 純也), 가문 묘소, 그리고 마타지로(小泉又次郞)묘소.
고이즈미 쥰야(小泉 純也, 1904~1969년)
준이치로의 부친인 쥰야는 자신의 선거구인 시나가와(神奈川)에서 남서쪽으로 1,300여 킬로 떨어진 규수(九州)의 가고시마(廘兒島)출신으로 원래의 성(舊姓)은 사메지마(鮫島)였다. 장인이 결혼을 반대하자, 그의 딸과 사랑의 도피행각을 감행한다. 장인은 돌아오라는 신문광고까지 내면서 그들의 결혼을 승인했다. 쥰야는 아예 고이즈미가(家)의 서양자(婿養子, 무코요시)로 입적하고 장인의 선거구까지 물려 받아 그곳에서 7선 의원을 하였다.
고이즈미 마타지로(小泉 又次郎, 1865~1951년)
처음에서 시의원에 당선되어 의장까지 맡았다. 1908년 중의원 의원에 당선된 이후 연속 12선 의원을 역임한다. 1951년 사망하자 지역구를 사위이자 아들인 쥰야가 물려받았다.
맥로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외할아버지는 20회절, 부모는 18회절 명당에 모셨다. 18~20회절 정도의 명당이면 일본에서는 총리대신이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외조부모의 묘소도 본인에게 풍수적 영향을 많이 주고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훗날 고이즈미 준이치로를 제대로 모시기만 한다면 그의 아들 신지로도 총리대신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다.
#하토야마 #고이즈미 #총리대신 #시게루 #히로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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