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너머까지 고민”… AI·가전 뛰어든 건설업계
‘디 사일런트’ 주방 후드부터 ‘휴스팟’ 제습기와 ‘시스클라인’ 공기청정기까지. 가정에서 친숙하게 사용하는 소형 가전인데 브랜드는 낯설다. 모두 국내 건설사들이 개발한 제품이다.
DL이앤씨가 환풍기 전문 기업 힘펠과 공동 개발한 디 사일런트 후드는 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인 기술로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는 기술상 ‘IR52 장영실상’을 받아 화제가 됐다. 휴스팟은 최근 롯데건설이 휴마스터와 손잡고 개발한 드레스룸 전용 빌트인 제습청정기다. 천장형 에어컨처럼 생겼는데 냉각 방식이 아닌 건조제를 활용해 드레스룸을 쾌적하게 유지한다. 시스클라인은 GS건설이 자체 개발한 공기 청정 시스템으로 창문을 열지 않고도 깨끗한 공기를 실내에 공급하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 건설사들이 주방 후드나 공기청정기 같은 가전은 물론 전기차 인프라, AI(인공지능)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전통 건설 산업에서 떠올리기 어려웠던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단순히 아파트를 짓는 것만으로는 수주 경쟁이나 분양에서 차별화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주택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술 개발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아파트 시공이 단순히 골조만 올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자체 상품과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라이프스타일까지 함께 제공하는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건설사가 전기차 인프라·AI도 개발
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시공 능력 평가 기준 상위 10대 대형 건설사들은 지난해 1~3분기 연구·개발비로 8004억원을 투자했다. 전년 동기(7261억원)보다 10%가량 증가했다. 건설 경기 침체와 공사비 급등에 따른 수익성 악화에도 기술 개발에는 돈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건설사들은 다른 기업과 협력해 가전부터 AI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공기질 센서와 전동 환기구를 개별 방마다 설치해 맞춤형 공기질 관리가 가능한 ‘각 실 제어 청정환기시스템’을 경동나비엔과 함께 개발했고, 대우건설은 삼성전자와 협업해 AI 청정환기 기능이 탑재된 ‘푸르지오 시스템 청정환기’를 도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특히 전기차 인프라 분야에서 건설사 간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한화 건설부문은 LG유플러스와 국내 첫 천장형 전기차 충전 시스템 ‘포레나 EV 에어스테이션’을 개발했다. 충전기 커넥터가 천장에서 내려오는 방식으로, 기존 주차 공간을 줄이지 않고 설치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DL이앤씨는 주차된 전기차에서 화재가 나면 배터리팩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물을 분사해 10분 만에 불을 끄는 전기차 화재 진압 시스템을 개발했고, GS건설도 LK삼양과 손잡고 아파트 전기차 화재 조기 감지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입주민의 생활 편의를 위한 소프트웨어 기술도 진화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클라우드 기반의 스마트홈 플랫폼인 ‘홈닉 2.0′을 출시해 5만여 가구가 이용하고 있다. 커뮤니티 예약, 방문 차량 등록, 가전 제어 등 기존 스마트홈 서비스에 더해 관리비 결제, 하자 보수, 공동 구매 등 생활 밀착형 서비스까지 한데 묶었다. 현대건설은 작년 하반기 경기 고양시 ‘힐스테이트 라피아노’에서 자율 주행 스타트업 모빈과 협업해 자율 주행 배송 로봇을 시범 운영했다. 이 로봇은 단지 내 커뮤니티 센터나 상가에서 출발해 계단과 장애물을 피해 가구 현관문 앞까지 물건을 배송해 준다. 현대건설은 이 밖에 숙면 환경 조성을 위한 AI 슬립테크 상품인 ‘H 슬리포노믹스 2.0’, 식물 생육에 필요한 환경요소를 AI로 제어하는 ‘H 클린팜’ 등을 개발했고, 최근에는 입주민 전용 차세대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인 ‘마이 힐스’와 ‘마이 디에이치’도 출시했다.
◇혁신 기술 발굴해야 수주·분양 유리
건설사들은 혁신 주거 기술과 상품을 발굴하기 위해 스타트업과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롯데건설이 지난달 개최한 오픈이노베이션 행사에는 층간 소음 줄이기 기술 개발사 등 스타트업 7곳이 참여했고, GS건설도 호반건설과 공동으로 작년 11월 스마트 로보틱스 가구 업체 등 스타트업 6곳이 참여하는 행사를 열었다. 삼성물산은 서울산업진흥원과 협력해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인 퓨처스케이프를 운영하고 있다.
건설사들이 스타트업과 손잡고 다양한 기술로 외연 확장에 나서는 것은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단순히 아파트만 튼튼하게 지어서는 주택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설사들은 알짜 재건축·재개발 수주전에서 자사가 개발한 기술과 상품을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알짜 정비 사업은 한정돼 있고, 공사비도 비슷하기 때문에 결국 사업을 따내려면 다른 브랜드와 차별되는 기술력과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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