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여름이냐, 겨울이냐"... 尹 조기퇴진 시점 두고 '그들만의 정치셈법'
①내년 여름? '朴 탄핵' 속도 6개월 준용
②내년 겨울? 이재명 재판 최종심 기대
③내후년 6월? 지방선거 맞춘 개헌론까지
'한-한 대행체제' 적절한가, 헌법 월권 논란도
행정 등 내각 운영 더해 외교·국군통수권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8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윤석열 대통령의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공식화했다. 관심은 '언제 물러나느냐' 그 시점이다. 최소 6개월부터, 1년후, 내후년까지 저마다의 타임테이블이 거론되고 있지만, 대통령의 즉각적인 직무정지를 바라는 거국적 민심의 요구와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정치 셈법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 대표와 한 총리는 대통령의 공백을 메우겠다고 의지를 다졌지만, 한 총리 대행체제를 두고 법적 권한과 역할이 모호해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①내년 여름? 朴 탄핵 때도 6개월 만에
한 대표는 이날 여의도 중앙 당사에서 한 총리와 공동으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질서 있는 대통령의 조기 퇴진으로 대한민국과 국민들께 미칠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으로 정국을 수습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말했다.
정국의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며 탄핵 대신 소프트랜딩이 가능한 조기 퇴진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한 대표가 줄곧 윤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정지"를 언급해왔다는 점에서, "조속한 퇴진"에도 무게를 실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위헌·위법으로 규정해놓고 탄핵 부결로 돌아선 만큼, 시간을 끌수록 민심의 거센 역풍에 한 대표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여권에서 거론되는 가장 빠른 타임 라인은 '6개월'이다. 헌정 사상 처음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전례를 준용한 시간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 소추됐고, 후임자를 뽑는 19대 대선은 이듬해 5월 9일 치러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튿날인 5월 10일 취임했다. 탄핵 소추부터 새 대통령 취임까지 약 6개월이 걸린 것이다. 탄핵 절차가 진행되는 기간만큼 조기퇴진을 속도감 있게 밀어붙인다면, 야권의 반발을 어느 정도 무마할 수 있지 않겠냐는 계산이다.
②내년 겨울? 이재명 재판은 마무리돼야
여당 내 의견은 분분하다. 한 최고위원은 본보 통화에서 "6개월 내 조기 퇴진은 너무 이르다"며 "최소 1년은 돼야 할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최소 1년으로 끌고 가자는 주장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재판 일정을 의식한 측면이 커 보인다. 이 대표가 사법리스크를 털어내고 조기 대선에 유리하게 나서는 상황은 막아보자는 셈법이다. 이 대표가 걸려 있는 5개 재판 중 가장 속도가 빠른 건 지난달 1심에서 피선거권 10년 박탈형(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이 나온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다. 공직선거법은 2심과 3심의 경우 각각 3개월 이내 선고를 내리도록 의무화했지만 쟁점이 많아 6개월 안에 최종 결론이 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늘어지는 재판 일정에 따라 조기 퇴진 시점도 조금 미뤄 여유를 둘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③내후년 6월? 이참에 개헌... 지방선거랑 동시 대선
개헌 가능성도 변수다. 정치권에선 최고통수권자의 돌발행동을 계기로, 나라가 초토화된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이참에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보자는 개헌론이 터져 나올 조짐이다. 대통령의 임기를 1년 줄여, 4년 중임제 도입에 맞추는 개헌안이 많이 거론된다. 여권 관계자는 "2026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경우 윤 대통령의 임기를 고작 1년 줄이는 것이라 국민적 분노를 감안한다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 일각에선 조기퇴진 시점뿐 아니라 결정 주체를 두고 "한 대표가 아닌 의원총회에서 주도해야 한다"(윤상현 의원)는 공개 반발도 터져 나오는 상황이라 여권 내부에서부터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해 보인다.
헌법 월권 논란, 한덕수 대행 체제 어떻게 운영?
'한 총리-한 대표' 대행 체제를 두고도 권한의 적절성과 역할도 안갯속이다. 두 사람은 일단 정부와 여당의 컨트롤타워를 자처하며, 경제부터 외교, 국방까지 국정운영 전반을 도맡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사실상 투톱체제로 대통령의 빈자리를 메우겠다는 구상이다.
한 대표는 "국민의힘 당대표와 국무총리의 회동을 주 1회 정례화하겠다"며 "상시적인 소통을 통해 경제, 외교, 국방 등 시급한 국정 현안 등을 논의하고, 대책을 마련해 한 치의 국정 공백도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한 총리도 "저를 포함 모든 국무위원과 부처 공직자들은 여당과 함께 지혜를 모아 모든 국가 기능을 안정적이고 원활하게 운영하겠다"고 화답했다. 정부여당의 국정협의 테이블로 작동해오던 당정협의에서 굵직한 정책 방향을 정하면, 실무는 정부에서 진행하고 당이 입법 등으로 피드백을 맞춰 가는 형식을 갖출 것으로 보인다.
외교, 국방 등 회색지대 대통령 권한 행사 논란
그러나 한 총리 대행체제를 두고 헌법 월권 논란도 빚어지고 있다. 우리 헌법상 선출된 대통령의 권한을 임의로 위임할 수 없다. 단 윤 대통령이 전날 대국민담화에서 "향후 국정운영은 우리 당과 정부가 함께 책임지고 해 나가겠다"고 밝힌 만큼 '포괄적 위임'을 받았다고도 볼 수 있다. 국무총리의 경우 행정에 대해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할 수 있다'고 헌법에 명시돼 있는 만큼 국내 행정을 지휘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와 국군통수권자의 역할까지 넘겨줄 수 있을지는 의문부호가 따른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국군 통수권의 경우 행정의 영역으로 볼 수 있어 국무총리에게 위임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지만, 국가를 대표해 외국 정상과 만나거나 조약을 비준하는 행위 등은 문제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한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힘이 과연 국정에 관여하고 권한을 행사할 헌법적 근거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여당은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란 점에서, 대통령 협조하에 국정운영의 한 축을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 주어진다. 그러나 한 대표 스스로 대통령의 탈당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시에 집권여당의 역할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한 대표는 '당대표의 국정운영 참여에 법적 근거가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총리가 국정운영을 직접 챙기는 것이고, 당이 조금 더 적극적이고 세심하게 총리와 협의를 하겠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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