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 뒤덮은 인터넷 케이블처럼…해저전선 시대 '성큼' [테크토크]

임주형 2024. 9. 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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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압직류송전(HVDC) 해저 케이블
친환경 에너지 늘어나면서 주목 받아
英, 호주 등 4000㎞ 프로젝트도 발주

고속 인터넷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는 '인터넷 해저 케이블' 붐을 경험했습니다. 케이블 붐은 통신 산업이 성숙기에 이른 현재 잠시 멈칫한 상태이지만, 어쩌면 다시 한번 재도약할지도 모릅니다. 단 이번에는 통신선이 아닌 '전선'이 수요를 북돋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해저에 깔린 수천㎞짜리 고압 전선

한국 기업 LS 전선의 수출용 해저 케이블.

지난달 21일(현지시간) 호주 IT 기업 '아틀라시안'은 호주 정부로부터 4000㎞에 달하는 해저 전선 케이블 건설 계획을 승인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이 케이블은 호주 해안에서 시작해 싱가포르로 연결됩니다. 이에 따라 호주의 광활한 평야에 세워진 태양광 패널 전력을 싱가포르에 공급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완공 예정 시기는 2029년으로 예측됩니다. 만일 이 프로젝트가 현실화한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긴 송전 시스템으로 이름에 남을 겁니다. 4000㎞급 송전망 프로젝트는 유럽에서도 진행 중입니다. 영국과 모로코 사이에 4000㎞ 길이의 해저 케이블을 연결해 영국의 풍력 발전 시설과 모로코의 태양광 발전 시설을 통합하겠다는 'X링크(Xlink)' 프로젝트도 가동 중입니다.

친환경 전환 성공하려면…'간헐적 에너지' 옮겨야

풍력, 태양광 등 친환경 발전 시설의 단점은 '간헐적 에너지(Intermittent Energy)'원이라는 겁니다. 즉, 바람이 많이 불거나 햇빛이 센 날에만 최대의 효율을 발휘하고, 궂은 날씨엔 발전량이 뚝 떨어진다는 뜻이지요.

이 때문에 친환경 발전의 시대엔 전력 공급보다 '수요 통제'가 더 중요해집니다. 수천㎞ 떨어진 국가들의 발전 시설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도 이런 수요 통제 계획의 일환입니다. A 국가의 전력이 부족할 땐 B 국가의 전력을 길어올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니까요.

다만 이전의 송전 기술로는 이런 광대한 송전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없었을 겁니다. 초고압직류송전(HVDC) 기술의 발전 덕분에 수천㎞대 송전망 건설이 가능해졌습니다. HVDC는 교류 전력을 직류로 바꿔 송전한 뒤, 전기가 도착하는 지점에서 다시 교류로 바꿔 가정 등에 공급하는 기술입니다. 전기를 먼 거리까지 보내기에 최적화된 기술이지요.

영국 남부와 모로코 해안 사이를 오가는 4000 규모 해저 케이블 사업 'Xlink(엑스링크)' [이미지출처=와이모로코 캡처]

HVDC 자체는 1950년대에도 이미 존재했지만, 그때는 본격적인 국가 간 송전을 꿈꾸기엔 너무 미약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제조되는 최신 세대 HVDC는 전선 한 개에 최대 1.2기가와트(GW) 용량을 쏘아 보낼 수 있고, 1000㎞당 전력 손실은 3% 안팎에 불과합니다.

이미 인도 같은 대륙 국가는 1000~2000㎞에 달하는 '전기 고속도로'를 설치해 사용 중이며, 영국-모로코, 호주-싱가포르 프로젝트는 그 규모를 2배 더 늘릴 계획인 겁니다.

'인터넷 케이블'처럼 해저 HVDC도 붐 올까

호주-싱가포르 송전망이나 영국-모로코 X링크가 성공한다면, 앞으로 친환경 에너지 설비를 갖춘 국가들끼리의 '송전망 통합'은 붐을 일으킬 겁니다. 당장 영국의 경우 2030년까지 최대 50GW의 해상 풍력 단지를 건설할 계획이며, 유럽 대륙도 100~150GW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해저 전선망 붐은 21세기 초 '인터넷 케이블 붐'과 유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1999년부터 2020년까지 지구상에 깔린 해저 통신선은 갑절 이상으로 불어났습니다. 특히 미국의 4대 빅테크(구글·메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가 전체 투자액의 50%를 장악한 상태이지요.

초기에는 인터넷의 글로벌화를 위해 대대적으로 통신선 투자를 감행했고, 2010년대 들어선 클라우드 데이터 송수신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직접 통신선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HVDC 케이블 사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21세기 초 인터넷 케이블이 경험한 폭발적인 수요 증대 수준까지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친환경 에너지가 인류의 주력 발전원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드디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걸지도 모릅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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