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하나면 한국도 살고, 윤 대통령도 역사에 기록될 겁니다 [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이봉렬 기자]
▲ 2022년 5월 5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에서 어린이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
ⓒ 당선인대변인실 제공 |
ⓒ 최주혜 |
오늘은 대통령님에게 우리나라 출산율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합니다. 출산율을 올리는데 반도체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뒤에서 설명할 예정이니 '반도체 특별과외'라는 취지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지난해 11월, 한국은행이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와 도표는 모두 그 보고서에서 나온 겁니다.
▲ 한국은행이 발표한 우리나라 초저출산 현황. 출산율 자체도 최하지만, 하락 폭도 가장 크고, 지속 기간도 가장 깁니다. |
ⓒ 한국은행 |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2022년 0.78명으로, 전 세계 최저라는 건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보고서는 인구학자 조영태의 입을 빌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전염병 창궐이나 전쟁, 체제 붕괴를 겪지 않는 한 0점대의 합계출산율은 인구학에서 거의 불가능한 숫자로 여겨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심각하다는 거죠.
▲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주택가격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낮습니다. 수도권의 과밀한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게 출산율 재고를 위한 우선 과제입니다. |
ⓒ 한국은행 |
한국은행은 초저출산의 원인을 "청년들이 느끼는 높은 '경쟁압력'과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과 연관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비정규직이 늘고, 주택가격도 급등하여 전반적으로 청년의 경쟁압력이 높아지고 고용 및 주거 여건이 과거보다 악화된 것"이 초저출산의 핵심적인 원인이라는 겁니다.
▲ 출산율 개선을 위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출산율 변화 폭을 산출했습니다. 도시인구집중도를 개선하는 게 가장 효과가 좋았습니다. |
ⓒ 한국은행 |
한국은행은 저출산 해결을 위한 여러 정책 시나리오별로 얼마나 출산율을 개선할 수 있는지 분석했습니다. 가족 관련 정부지출을 OECD 국가 평균 수준으로 올리면 출산율은 0.055% 올라갑니다. 청년층 고용률을 올리면 0.119%가 올라가서 정부지출을 늘이는 것보다 두 배 이상의 효과가 발생합니다. 그럼 도시인구집중도, 즉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면 몇 %가 증가할까요? 정부지출을 늘리는 것보다 무려 7배 이상 높은 0.414%가 증가합니다. 모든 시나리오가 다 달성되면 출산율은 1.625%로 껑충 뛰고, 수도권 집중만 해결해도 1.194%로 크게 개선됩니다.
한국은행이 해결책이라고 말한 수도권 집중 현상을 막고, 집값을 낮추며, 청년층 고용률을 높이는 방법이 없을까요? 있습니다. 반도체가 바로 그 해법입니다. 반도체로 어떻게 출산율 재고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지금부터 차근차근 설명하겠습니다.
▲ 정부는 수도권에 반도체 팹을 비롯한 모든 유관 업체를 몰아넣어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든다고 발표했습니다. 아주 위험하고도 잘못된 결정입니다. |
ⓒ 산업부 |
대통령님은 지난 15일, 민생토론회를 열고 2047년까지 622조 원을 투자해서 "세계 최대·최고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했습니다. 민간 기업들이 이미 계획하고 있던 걸 끌어모아 다시 한번 발표한 것에 불과하지만, 이를 통해 650조 원의 생산 유발효과를 가져오고, "팹 건설·운영 과정을 거치면서 총 346만 명의 직간접 일자리를 새로 만들며 민생을 살찌울 것으로 기대된다"는 게 산업부의 주장입니다.
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안 그래도 사람 많은 수도권이 아니라 지방에 조성하면 초저출산 관련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지방으로 내려가면 청년들도 양질의 일자리를 따라 지방으로 갈 테니까요. 그럼 일자리, 수도권 집중 완화, 주택 가격 하락 등 한국은행이 초저출산 대책의 핵심이라고 한 세 가지가 한꺼번에 해결됩니다.
▲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 필수적이고 경쟁국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산업부의 주장.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
ⓒ 산업부 |
반도체 팹들이 한군데 모여 있게 되면 혹시 있을지 모를 자연재해나, 화재나 폭발 등의 사고, 지정학적 위험 등으로 인한 리스크가 큽니다. 20조짜리 팹 여섯 개가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동시에 멈춘다고 상상해 보세요. 끔찍하지 않습니까? 팹에서 사용하는 대량의 전력이나 용수도 한군데 모여 있는 팹의 수가 많아지면 수급을 위한 기반 시설 설치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반도체 회사는 일부러 팹을 분산해서 만듭니다.
▲ 인텔의 반도체 제조시설 위치.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고, 미국 안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
ⓒ 인텔 |
▲ 2021년 이후 인텔의 투자 계획. 향후 투자 역시 여러 나라에 분산해서 진행합니다. 이른바 클러스터를 조성해서 한군데 모으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
ⓒ 인텔 |
이번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분야 경쟁업체인 마이크론의 상황을 볼까요? 마이크론의 팹 역시 미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으로 여러 나라에 분산 운영되고 있습니다. 세계 4위의 파운드리 업체인 글로벌 파운드리도 미국, 독일, 싱가포르에 각각 다른 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세계 3위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의 생산기지 현황. 미국이 본사지만 아시아에서 더 많은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
ⓒ 마이크론 |
▲ 세계 4위 파운드리 업체, 글로벌 파운드리의 생산시설 위치. 미국, 유럽, 아시아에 분산되어 있습니다. |
ⓒ 글로벌 파운드리 |
미국 회사들이 미국 바깥에 반도체 제조 시설을 갖추려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럼 얼마 전 대통령님이 다녀온 네덜란드의 대표적 시스템 반도체 제조 회사 NXP의 경우는 어떨까요? 미국과 네덜란드에 별도의 팹이 있고, 패키징 시설은 중국과 아시아까지 여러 곳에 분산시켜 두었습니다. 유럽의 또 다른 시스템 반도체 회사인 XFAB 역시 미국, 프랑스, 독일, 말레이시아까지 서로 다른 나라에서 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네덜란드의 NXP, 본사가 있는 네덜란드 외에도 미국, 중국, 아시아 지역에 생산시설이 있습니다. |
ⓒ NXP |
▲ 유럽의 반도체 업체인 XFAB. 독일, 프랑스, 미국, 말레이시아에 팹이 있고, 독일 안에서도 각각 다른 지역에서 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 XFAB |
그건 개별 반도체 기업들의 이야기고, 반도체 팹을 가지고 있는 각국의 정부는 별도의 클러스터를 만들어 그 안에 팹들을 다 모아 놓고 있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네요. 그럼 이번에는 기업별이 아니라 국가별로 한번 보겠습니다. 아래 그림은 미국의 반도체 팹과 반도체 학과가 있는 대학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산업부는 보도자료에서 미국의 경우 "전 국토의 클러스터화 추진"이라고 표현했더라고요. 말장난이 도를 넘은 것 같습니다.
▲ 미국의 반도체 팹과 반도체 학과가 있는 대학의 위치. 팹도 대학도 미국 전역에 골고루 퍼져 있습니다. |
ⓒ SEMI.ORG |
유럽은 어떨까요? 특정 국가 혹은 지역에 클러스터를 만들어 팹을 모아 놓았을까요? 아래 지도를 한번 보세요. 녹색 동그라미가 웨이퍼 팹인데 유럽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유럽의 팹 위치. 특정 지역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나라에 팹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
ⓒ YOLE Group |
우리가 "세계 최대·최고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말하는 건, 역으로 생각하면 세계 어느 나라도 그런 식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일부러 조성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는 겁니다.
미국에 있는 팹리스 회사 엔비디아가 설계한 반도체를 지구 반대편 대만에 있는 TSMC가 제조하는 첨단 21세기에 국내 반도체 회사들 모두를 같은 지역에 모아 놓으면 뭔가 더 소통도 잘되지 않을까 하는 20세기적 생각을 하는 정부 관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수도권에 반도체 클러스터라는 이름으로 반도체 팹을 모아 놓으면 그 자체로 리스크 관리에 불리할 뿐 아니라 전력 공급에도 큰 어려움이 따릅니다. 산업부는 LNG 발전을 통해 초기 전력을 공급하고 이후 부족분은 동해안의 원자력 발전과 호남의 재생에너지를 송전설비를 이용해서 끌어오겠다고 밝혔습니다.
LNG나 원자력 발전이 RE100에 해당되지 않아서 그 전력을 받아서 반도체를 만들면 외국에 수출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했으니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수도권에 위치한 반도체 팹들이 사용할 그 많은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동해안 지역과 호남 전체가 송전탑으로 뒤덮이게 될 것입니다. 이게 무슨 낭비입니까?
재생에너지가 있는 지방에 반도체 팹을 짓자
호남에 이미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이 있고, 거기서 생산된 전력을 호남에서 다 소비하지 못해 남아돌고 있습니다. 전기가 있는 곳에 팹을 지으면 될 일입니다. 전력공급 문제뿐만 아니라 RE100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입니다.
수도권에서 먼 지방에 반도체 팹을 지으면 고급 인력이 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지방의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이유는 거기가 수도권이라서가 아니라 지방에는 일자리가 없고 수도권에만 일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모여들고, 그래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래서 집값이 오르고, 그래서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게 한국은행 보고서의 결론입니다.
▲ 346만명의 일자리와 650조원의 생산 유발 효과. 이게 수도권이 아니라 지방에서 발휘되면 왜 안되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
ⓒ 산업부 |
기업들이 수도권의 입지 좋은 곳에 공장을 가지겠다는 욕심은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겁니다. 수도권의 과도한 제조업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1994년부터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수도권 공장 총량제를 도입해 공장의 신·증설을 억제해 왔습니다. 그런데 반도체 클러스터에 예외를 허용한다면 수도권 집중과 난개발은 더욱더 심해질 것입니다. 대통령님 취임 이후 모든 게 거꾸로 가는 시절이긴 하지만 이건 거꾸로 가면 안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초저출산입니다. 이에 대한 확실한 해법이 수도권 집중 완화와 함께 청년층에게 양질의 일자리와 저렴한 주거환경을 마련해 주는 거라는 게 한국은행의 분석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겐 이미 반도체가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수도권에 조성한다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백지화하고 지방에 반도체 팹이 내려갈 수 있도록 다시 조율하세요. 그러면 "인구학에서 거의 불가능한 숫자"로 여겨졌던 0점대의 출산율을 1점대로 다시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그게 대통령님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정부 발표 못 믿겠다... 서울 주부 가계부가 드러낸 진실
- 첨예하게 갈린 '주호민 사건' 법정 밖, 그래도 함께 가리킨 곳
- "부결됐어요?"... 부둥켜 안고 눈물 흘린 유가족들
- "왜 약을 안 먹어요?" 발달장애인에게 정신과 약 권하는 사회
- 지구 종말 90초 전... 윤 대통령의 최근 행보가 위험한 이유
- 당뇨와 함께 온 노인 우울증, 이렇게 벗어났다
- "대통령 시계 받았다 제보 접수"... 홍성 선관위 확인중
- '서현역 흉기난동' 무기징역... 유족 절규 "대체 어떻게 해야 사형?"
- 불교계 위해 술·육포 뺐는데... 십자가·기도문이 들어갔네
- 강제동원 피해자 외면했던 '김양호 판결'... 2심 "문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