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료 차이 2천배... TV 드라마가 사라지는 이유
[오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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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
TV 드라마가 사라지고 있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 <퀸 메이커> <마스크걸> < D.P.2 >, 디즈니플러스 <카지노> <무빙>, 티빙 <방과 후 전쟁활동>, 웨이브 <거래> 등 올해 OTT에서는 수많은 드라마들이 공개되고 많은 인기를 얻었던 반면 TV로 방송되는 드라마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TV 채널만 돌리면 매일 여러 채널에서 다양하게 방송되는 드라마를 골라볼 수 있었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이었는데 이제는 주말을 제외하면 드라마를 TV에서 볼 수 있는 날이 거의 없다.
지난해 11월 종영한 드라마 <진검승부>를 마지막으로 KBS는 수목 드라마 편성을 잠정 중단했다. 이후 <드라마 스페셜 2022>라는 단막극 시리즈를 수, 목요일에 편성했지만 10부작으로 종영했고 지난 2021년 많은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연모> 재방송을 잠시 수목 드라마 자리에 배치하기도 했지만 그 뒤로는 예능 프로그램을 주로 편성해왔다.
SBS는 일찌감치 2019년부터 수목 드라마 편성을 중단했고 MBC도 지난해 12월 종영한 <일당백집사> 이후 수목 드라마를 편성하지 않고 있다. tvN 역시 지난 5월 <스틸러: 일곱 개의 조선통보>를 마지막으로 수목 드라마를 방송하지 않는다. 지난 12일 JTBC 수목 드라마 <이 연애는 불가항력>이 종영된 이후 그 자리에는 예능 프로그램인 <싱어게인3>가 방송된다.
이제 수목 드라마가 방송되는 채널은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케이블을 모두 합쳐서 ENA 하나 뿐이다. 25일 <유괴의 날>이 종영한 이후 ENA 채널에서는 오는 11월 1일부터 새 수목 드라마 <낮에 뜨는 달>이 방송될 예정이다.
월화 드라마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월화 드라마 역시 MBC는 지난 2021년, JTBC는 2022년 2월 <한 사람만>이 마지막이었다. SBS도 지난 5월 <꽃선배 열애사>를 끝으로 편성을 중단했다. 하지만 KBS 월화 드라마는 <순정복서> 이후 올림픽 등으로 인한 약 한 달 간의 휴식을 마치고 오는 30일부터 <혼례대첩>이 방송될 예정이다. tvN도 현재 월화 드라마 <반짝이는 워터멜론>을 방송 중이고, 오는 11월에는 후속 드라마 <운수 오진 날> 편성이 예고되어 있다.
"가장 큰 화두는 출연료"
방송국들이 일제히 평일 드라마 제작을 중단한 것은 낮은 시청률과 높은 제작비 등 제작 여건과 무관하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드라마 연출자 A씨는 25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요즘 제작에 임하는 사람들 사이의 가장 큰 화두"라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고 고평가를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종의 시장실패를 맞은 것 같다. 제작이 엄청 위축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제작비가 너무 커지면서 수익이 안 나기 때문이다.
주인공 출연료는 엄청나게 높아지고,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노동조건 개선으로 인해 스태프 인건비도 엄청나게 올랐다. 현실화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제작되는 드라마가 1/3 이하로 줄어든 상황이다. 스태프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전반적인 시장실패 상황으로 보인다. 방송국에서도 드라마를 만들수록 적자다." (드라마 연출 A씨)
천정부지로 치솟은 스타 배우들의 몸값 역시 제작 여건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소다.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실이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과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방송된 9편의 드라마에서 주연 배우와 단역 배우의 출연료 차이는 최대 2000배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SBS 드라마 <법쩐>에서 주연 남자배우는 회당 2억 원을, 단역 연기자는 회당 10만 원을 받았다.
출연료와 제작비가 급상승하는 가운데, 드라마 시청률은 오히려 하락하는 추세다. 현재 평일에 방송되는 지상파 드라마 MBC <오늘도 사랑스럽개>와 SBS <국민사형투표>는 각각 시청률 1.9%와 2.7%(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2일 종영한 KBS 2TV 월화 드라마 <순정복서> 역시 0.9%와 2.2% 사이를 오가는 시청률로 초라하게 마무리 되었다.
A씨는 최근 방송가에 나도는 풍문을 언급하며 "'남자 주인공을 보유하고 있는 몇 개의 엔터사 대표들이 국내 드라마·영화 산업의 편성과 제작을 결정한다'고까지 얘기한다. '여성 서사를 잘 만들어야 된다'는 니즈(needs)는 모두가 공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콘텐츠의 성공을 견인하는 건 남자 주인공이라고들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출연료는 부르는 게 값이 되었다. 5년 전만 해도 (제작비가 많이 드는 드라마조차) 회당 8억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회당 수십억이 들어야 한다. 광고비는 줄고 있고 ppl도 한계가 있는데, 주인공 한두 명 출연료를 맞춰주면 그 다음부터 쥐어짤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SBS <국민사형투표>의 스틸 이미지 |
ⓒ SBS |
27일 MBC는 기자에게 "주 1회 드라마 편성을 선보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20년 한국판 오리지널 SF 앤솔러지 시리즈 < SF8 >를 과감하게 주 1회로 편성해 시장에 반향을 일으켰고, 지난 해에도 드라마 <멧돼지 사냥>을 주 1회 드라마로 선보이며 밀도 있는 이야기와 짜임새 있는 연출로 시청자의 호평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MBC 관계자는 "MBC는 이전에도 유연한 편성과 실험정신으로 대한민국 드라마 트렌드를 이끌어 왔다. <오늘도 사랑스럽개>는 평일 밤 시청자를 사로잡기에 적합한 이야기와 캐릭터의 매력을 갖춰 자신있게 주 1회 편성을 결정했다"며 "앞으로도 시청자들의 콘텐츠 선택권 확대는 물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평일 TV 드라마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는 OTT의 영향력 확대와도 무관하지 않다. OTT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소재의 시리즈를 선택해 볼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또한 TV드라마에 비해 많은 제작비를 쏟아부을 수 있는 OTT의 제작 여건도 드라마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소다. 생태계의 변화다.
이와 관련해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24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편성에 드라마를 집어넣는 게 '리스크'가 되었다. 제작 여건이 그만큼 안 좋아졌고 방송사가 (드라마로 수익을 얻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짚었다.
"과거에는 '드라마 왕국'이라고 말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드라마가 쏟아졌다. 호황기에는 드라마가 기획, 제작되기 쉬웠고 OTT 등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제작이 늘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내실 없는 작품들이 많아지면서 방송국들에 적자가 누적됐다. 더이상 안이하게 드라마를 기획하고 제작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정덕현 평론가)
이어 정덕현 평론가는 TV의 파워가 감소한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 TV, 라디오, 신문 등 전통적인 미디어)는 전파를 이용해서 실시간 방송할 수 있는 것, 여기에서 나오는 시청률을 통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실시간으로 TV를 보는 세대가 줄어들었다"며 최근 방송된 ENA 드라마 <악인전기>를 예로 들었다.
<악인전기>는 실시간 방송 외에 지니TV 단독 스트리밍을 선택하며 넷플릭스, 티빙 등 OTT에서는 시청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TV 시청률도 0%대로 매우 낮았다. 정 평론가는 "사람들은 이제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콘텐츠를 선택해서 본다. 방송시간을 기다려서 드라마를 보던 패턴은 이제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투자 여건이 충분한 글로벌 OTT에 드라마들이 몰리게 되고 TV 드라마 제작은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 KBS 1TV 일일 드라마 <우당탕탕 패밀리> 스틸 이미지 |
ⓒ KBS |
그러나 평일 미니시리즈는 거의 사라졌지만, 여전히 아침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는 계속 편성되고 있다. MBC는 매일 오후 7시 드라마 <세 번째 결혼>을 방송 중이며, KBS는 1TV, 2TV 두 채널에서 모두 일일 드라마를 방송한다. 특히 KBS <우당탕탕 패밀리>는 11.5%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최고의 흥행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MBC 주말 드라마 <연인>이 시청률 11.7%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에 못지 않은 수치다.
황진미 평론가는 25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에 대해 "중장년층을 위한 일일 드라마는 계속되는데 왜 평일 미니 시리즈만 사라지겠나. 미니시리즈의 타깃 시청층인 젊은 세대가 TV를 찾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들은 OTT로 몰아보는데, 이들을 위해 굳이 방송으로 드라마 편성을 할 필요가 없고 그 시간을 예능으로 돌리는 게 낫다고 (방송국이) 판단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수순"이라고 평했다.
이어 황 평론가는 주 1회 드라마 편성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주 1회 편성이 성공했느냐 하면 아직 그렇지 않다. 일주일에 한 회만 방송하니까 전개가 느리고 흡인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드라마가 주 2회 방송되는 관습에 사람들은 익숙해져 있고 일주일 뒤에는 지난 이야기를 잊어버리는 시청자들도 많다. 몰입도가 떨어지게 되고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나중에 OTT로 보겠다며 이탈하고 있다"고 짚었다.
반면 드라마 제작이 위축된 상황에도 긍정적인 면은 있다. 정덕현 평론가는 "그동안 (한국 드라마 제작이) 과잉되어 있었던 측면도 있다"며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을 변곡점으로 짚었다.
"한국 드라마 제작 과잉을 촉발시킨 게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이다. '오징어게임의 역설'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콘텐츠의 위상을 높이고 전 세계가 열광하게 만들었지만 후폭풍도 만만치 않았다. 너도나도 쉽게 접근해서 기획하고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지만 그게 이제는 상당히 무너졌다. (오징어게임의) 악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실 없는 작품이) 솎아지는 단계가 아닌가 싶다. 단단하게 다진 기획을 시장이 요구하는 단계다. 오히려 긍정적인 신호로도 볼 수 있다." (정덕현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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