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전기차의 민낯... 남미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일
[이주영 기자]
▲ 마을의 공동 수도에서는 물이 한방울도 나오지 않고 있다. '리튬이라는 이름으로' 다큐멘터리 화면 캡쳐 |
ⓒ Calma Cine |
<리튬이라는 이름으로(En el nombre del litio)>(2021)라는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엘모레노(El Moreno) 마을은 하얀 흙먼지로 가득하다. 이곳은 최근 몇 년 동안 주민들이 먹을 물조차 부족한 상황이 되었다. 원래 건조한 기후로 물이 풍부한 지역은 아니었지만 지하수를 퍼올려 가축을 기르고 필요한 농사를 짓기에는 충분한 땅이었던 이곳이 이렇게까지 말라 갈라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리튬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인 측면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클레멘테씨는 지난 10월 2일 필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마을에서 가까운 소금사막 지역에서 리튬을 채굴하면서 엄청난 양의 지하수를 끌어다 쓰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지하수와 강물이 마르고 주민들이 먹을 물조차 부족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리튬을 채굴하는 회사들은 주민들을 살던 집에서 내쫓기도 하고, 대대로 이어오던 소금 생산을 막기도 한다"라며 "살던 곳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도시 빈민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리튬 채굴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로 건강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증언했다.
배터리 제조에 쓰이는 리튬은 이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이름이다. 전기차, 휴대폰, 드론 등 일상의 필수품인 전자기기에 널리 쓰이는 리튬. '화이트 석유' 혹은 '하얀 황금'이라고 불리는 이 리튬 때문에 이렇게까지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니. 유럽, 미국, 아시아 등 북반구에서 쓰일 전기 자동차에 들어갈 리튬을 생산하기 위해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 남미에 있다.
에너지 전환의 필수재, 리튬 이온 배터리
리튬은 광물 속에, 염수 속에 비교적 많이 존재하는 금속 중 하나이다. 풍부한 양이 존재하지만 순수한 리튬을 생산하는 과정이 그리 간단치는 않다. 염수를 증발시키고 농축해서 리튬을 분리하는 방식이 가장 접근성이 좋고 경제적이기 때문에 선호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소금호수 우유니가 있는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의 살타, 까타마르까 지역, 그리고 칠레 북쪽의 고산지대인 아타카마 사막은 리튬 함유량이 높은 염수를 보유하고 있어 전 세계 배터리 기업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다.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이 세 나라의 리튬 생산 지역을 '리튬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른다. <CNN>의 보도에 따르면 볼리비아에 2100만 톤, 아르헨티나에 1900만 톤, 칠레에 980만 톤의 리튬이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기술과 투자금 부족으로 최대 생산국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생산량에는 못 미치지만 세계 리튬의 60퍼센트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참고 기사) 멀지 않은 미래에 '리튬 트라이앵글' 지역은 세계 수요를 책임지는 리튬 공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의 개발과 폭발적인 수요는 리튬 배터리의 생산에 박차를 가했고, 2020년 1톤당 6천 달러 수준이었던 리튬의 국제 가격은 2023년 8만 달러까지 치솟았다(참고 기사). 전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이 남미로 집중되었고, 리튬이 고갈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도 볼리비아와 리튬 개발을 논의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리튬이 곧 고갈된다는 이야기는 과장된 루머였을지 모르지만 리튬 개발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기업들과 여러 나라들의 움직임은 총성과 미사일만 주고받지 않을 뿐 마치 전쟁처럼 치열해 보인다.
자원 패권국인 중국은 볼리비아의 리튬 개발권을 얻어냈고, 아르헨티나와 칠레에는 이미 미국, 호주, 일본 기업들이 진출해 리튬을 생산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포스코 홀딩스도 아르헨티나 살타 지역에서 리튬 생산에 뛰어들었다. 스페인 언론 <엘 파이스>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동부, 현재 러시아가 점령 중인 지역에도 50만 톤 가까이 리튬이 매장"되어 있다고 하니 그곳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참고 기사).
이렇게 리튬의 인기가 나날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자원이 많아 부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생산하고 높은 가격에 팔아서 나라의 빚도 갚고 사회 복지도 늘리고 하면 좋지 않을까. 그러나 '자원의 저주'라는 말이 있듯이 자원 부국의 현실은 그리 순조롭지만은 않다.
리튬 1톤 생산 위해 2백만 리터의 물 사용
아르헨티나 과학기술연구원(Conicet)에서 리튬 개발 문제를 오랜 시간 연구한 브루노 포르니요 박사는 지난 9월 25일 필자와의 화상통화에서 "염수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 주변의 수자원이 완전히 말라버린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포르니요 박사는 "리튬을 추출하기 위해서는 지하 소금층에서 염수를 뽑아내서 그것을 축구장 넓이 수천 배에 달하는 넓은 폰드(pond)에 가두고, 이 염수가 증발되면서 일정한 농도로 농축되면 그 농축액에서 리튬을 분리할 수 있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투입되는 여러 화학물질이 나중에 부산물로 남아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는 점도 큰 문제"라고 말했다.
문제는 지하에서 염수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지반에 구멍을 뚫게 되는데 염수가 추출된 곳으로 땅 속에 흐르는 담수가 이동하게 되고 결국 담수와 염수가 섞이면서 지하수의 균형이 깨진다는 점이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리튬 생산지는 사막 기후로 비가 많이 내리지 않기 때문에 원래 물이 귀한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땅속에 고여있는 지하수까지 모두 끌어내 사용하기 때문에 생물 다양성이 깨지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물부족으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것이다.
리튬 생산에 도대체 얼마 큼의 물을 쓰이길래 이런 문제들을 야기하는 것일까. 아르헨티나 언론 퍼필(Perfil)의 보도에 따르면 1톤의 리튬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2백만 리터의 물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 예로 아르헨티나에서 리튬을 생산하는 리벤트(Livent) 회사가 15일 동안 사용하는 물의 양은 그 지역 주민들이 일 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과 같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물을 소비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참고 기사).
▲ 소금사막은 주민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소금을 채취하며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리튬이라는 이름으로' 다큐멘터리 캡쳐 |
ⓒ Calma Cine |
남미 여행을 구상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을 여행 일정에 넣어두었을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하얀 소금 사막이 우기가 되면 거대한 거울로 변한다. 물빛이 반사되면 하늘이 내려앉아 마치 구름 위를 걷고 있는 듯한 풍경이 연출되는 바로 그곳이다.
▲ 아르헨티나의 소금사막 살라르그란데의 모습. '리튬이라는 이름으로' 다큐멘터리 캡쳐 |
ⓒ Calma Cine |
에너지 전환, 화석 연료를 쓰지 않는 것에서 그친다면
인류는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탄소 발생을 줄여야 하는 공동의 목표를 갖게 되었다. 현재 화석 연료 사용을 억제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전환하자는 인류의 공동 과제를 수행 중이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질량과 부피 대비 에너지 밀도가 매우 높다는 장점 때문에 녹색에너지 상용화를 위한 필수요소가 되었고, 특히 전기차의 수요가 꾸준히 늘어남에 따라 리튬 이온 배터리의 수요도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에 따라 당연히 주원료인 리튬 생산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은 숙고해야할 다양한 이슈들을 안고 있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금속을 추출하기 위해서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환경을 파괴해야 한다면? 광산에서 발생하는 부산물과 화학물질이 물과 땅을 오염시키고, 수명이 다한 배터리는 쓰레기로 전락해 지구를 오염시킨다면? 전기 자동차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탄소발자국이 발생한다면?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이 전기 자동차를 타는 쾌적함을 누리기 위해서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기본적인 삶의 요소들을 잃게 된다면? 과연 그 전환을 지속가능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 전통을 이어가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리튬이라는 이름으로' 다큐멘터리 캡쳐 |
ⓒ Calma Cine |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금호수는 그들 자신과 마찬가지다. 지금도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의 원주민들은 리튬 채굴을 막기 위해 삶과 인생을 걸고 투쟁하고 있다. 소금호수에 구멍이 뚫리고 생물다양성이 무너진다면 그들 또한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이 땅에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자연과 공존하며 겸손하게 살아온 이들에게 주어진 이 가혹한 상황은 누구의 탓일까.
역사적으로 에너지와 자원이 인류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혜택이었던 적은 거의 없다. 여전히 에너지와 자원을 누리는 쪽은 북반구, 그것으로 인해 피 흘리는 쪽은 남반구다. 기후위기라는 급박한 과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우리는 녹색 에너지로의 전환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해야 한다면 그것을 모두를 위한 희망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보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은 불가능한 것일까. 우리 앞에 쉽지 않은 숙제로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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