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산업'을 아십니까... 한국서 '존엄하게' 죽을 수 없는 이유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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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철]
▲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죽음이 임박하면 중환자실로 환자를 옮기게 되고 평온한 죽음 대신 마지막까지 연명의료를 겪게 된다. |
ⓒ 셔터스톡 |
2022년 6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말기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죽음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의사 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 법안, 일명 PAS 법안을 발의했다. 그리고 한동안 대한민국은 의사 조력자살 찬반에 대한 논쟁으로 뜨거웠다. 오래전부터 이 법안을 연구해 온 관련 학계는 일관되게 '조력자살'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왔지만, 안 의원을 비롯해 이 법안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이를 '존엄사(Dignified death)'라고 부르고 있다.
국내외 정신건강의학회는 오래전부터 '자살'이란 단어를 감추는 순간 오히려 자살 해결에 대한 진지한 대화로부터 멀어지게 된다고 경고해 왔다.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2018년 한국기자협회,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공동 발표한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에서는 '벼랑 끝 선택', '어쩔 수 없는 선택' 등과 같은 표현으로 자살을 합리화하거나 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안 의원 측은 의사 조력자살에 대해 국민의 찬성이 82%로 높다며 법안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설문조사에서 사용된 질문은 "조력존엄사를 도입함으로써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의 입법에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이 질문은 '조력자살'이란 말을 '조력존엄사'로 바꿔 인도주의적인 느낌을 주었고, 또한 일부 말기환자에게만 적용되는 이 법안이 생애말기 자기 결정을 보편적으로 보장해 준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의료윤리연구회에서는 이 설문이 법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제공하지 않은 채 긍정적 용어를 통해 유도된 결과라고 지적한다.
법안이 발의되고 찬반으로 사회가 한창 시끄러웠을 때 한국 호스피스 완화의료학회에서 시행한 설문조사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줬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 호스피스의 확충과 의사 조력자살 중 무엇이 시급한가를 시민들에게 물었을 때 56.3%는 호스피스 확대를, 9.6%는 의사 조력자살을 선택했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정책의 우선순위를 물었을 때는 간병 지원 체계 마련(28.6%), 의료비 지원(26.7%), 호스피스 확충(25.4%)을 꼽았고 의사 조력자살은 13.6%에 불과했다.
사회적 공론화 없이 긍정 여론을 위해 임의로 '자살'을 '존엄사'라고 포장하는 순간, '존엄'의 본질이 흐려지고 시급하고 보편적인 '권리'를 논의해야 하는 사회적 집중력이 분산되고 만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논해야 할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와 제도 개선의 우선순위는 어떤 것들일까?
▲ 연명치료를 중단했던 김 할머니가 별세한 2010년 1월 10일 서울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박창일 연세의료원장(오른쪽 두번째), 박무석 주치의(오른쪽) 등이 김 할머니의 사망경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그래서 언제부턴가 '죽음 산업'이란 말이 등장했고, 병원마다 경쟁하듯 장례식장을 확장하기 여념이 없다. 그러나 정작 병원과 국가는 가족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낼 임종실 설치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죽음이 임박하면 중환자실로 환자를 옮기게 되고 평온한 죽음 대신 마지막까지 연명의료를 겪게 된다. 그 결과 2019년 조사를 보면 충격적이게도 종합병원 중환자실 환자의 56%가 70대 이상 노인이었다.
언제부턴가 대한민국 국민들은 연명의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병원 측이 연명의료 중단을 거부했던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 이후 연명의료를 거부하는 '자기결정'을 존중하기 위해 2018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 결정법)이 전격 시행되었다. 안규백 의원의 의사 조력자살 법안 역시 이 연명의료 결정법의 일부 개정안이다.
연명의료 결정법 시행 후 우리의 죽음은 획기적으로 존엄해졌는가? 안타깝게도 생애 마지막 장소로 병원을 선택하는 국민의 비율은 전혀 줄지 않고 있다. 2004년부터 요구되어 온 종합병원 임종실 설치의무 법안 역시 20년이 지나도록 정치권의 외면 속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날로 초고령화 되어가는 한국 사회에서 노인을 돌보는 사람은 없고, 늙으면 결국 집이 아닌 요양시설과 병원을 전전하다 중환자실에서 삶을 마감하게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호스피스 대신 장례식장을 짓는 대형병원
연명의료 결정법이 존엄한 죽음의 보장에 제 역할을 못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사회에서 암이 진단되면 너도나도 수도권 특히 서울의 대형 대학병원으로 달려간다. 수도권 대형병원들은 암환자 특수를 누리며 경쟁하듯 수도권에 다시 대규모 분원들을 개설하고 있다.
이들 대형병원에는 전국의 암환자들이 몰리는 만큼 호스피스로 의뢰되어야 할 말기 환자 역시 압도적으로 발생한다. 하지만 대형병원들은 치료에만 관심을 둘 뿐 죽음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 없다. 이들은 죽음의 산업화에 발맞춰 중환자실과 고가의 첨단장비들을 갖추고 장례식장도 화려하게 증축하지만, 호스피스 병동 운영과 임종실 설치는 철저히 외면한다.
그 결과 연명의료 결정법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 말기 암 환자의 호스피스 이용률은 20% 초반에서 답보하고 있다. 말기 환자의 90% 이상이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영국과 차이가 크다. 호스피스에 대한 홍보와 이해가 부족해서 여전히 죽으러 간다는 부정적 인식도 크지만, 호스피스 기관이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병원과 종교재단 병원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큰 이유다.
그래서 극히 일부 대학병원에만 호스피스가 있어서 대학병원 암 환자의 호스피스 이용률은 평균보다 훨씬 낮은 12% 정도다. 그나마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환자의 절반은 2주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마지막까지 호스피스를 기피하다가 죽음이 임박했을 때 선택한다는 의미이고, 나머지는 마지막까지 치료를 포기하지 않은 채 중환자실에서 삶을 마감한다는 것을 뜻한다.
▲ 지금의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죽음의 현실을 바라보는 차분하고 성숙한 용기이다. |
ⓒ 셔터스톡 |
우리나라 병원 임종의 가장 큰 특징은 마지막까지 환자와 의료진이 치료에 집착하다가 환자가 위독해지면 부랴부랴 가족들이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따르면 연명의료 결정이 이행된 환자의 58%가 가족의 결정으로 조사되었다.
대형 대학병원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2018년 2월부터 2021년 2월까지 3년간 서울대병원 임상윤리 지원 서비스에 의뢰된 총 60건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연명의료 중단 사례의 90%는 환자의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가족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었다. 아무리 법으로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호스피스를 장려해도,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목숨에 집착하는 문화 속에서는 모두 무용지물이다.
또한 연명의료 결정법 이후 위독한 상황에서 연명의료를 피하기 위해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여기에는 커다란 허점이 있음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연명의료 결정법에서는 연명의료 중단이 죽음이 임박한 임종 과정에서 가능하다고 못 박고 있다.
이 말은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한 말기환자라고 하더라도, 임종과정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치료가 계속된다는 의미다. 또한 거부할 수 있는 연명의료 항목 중 영양 공급은 포함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죽음에 이를 때까지 반드시 지속하도록 명시하고 있어서 강제적인 영양공급으로 인한 질질 끄는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죽음을 감추지 않는 것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존엄사'에 대해 가장 큰 사회적 파장과 논의가 있었던 것은 2009년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였다. 당시 김 할머니의 가족들은 연명의료 중단을 위해 병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국가의 '입법 부작위'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1년 반의 논의 끝에 "국가의 입법의무를 인정할 수 없다"며 재판관 전원일치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재판관들은 "자기결정권을 절대적인 공준(公準)으로 삼아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공동체 구성원들이 담론의 장을 마련하여 숙의하고 여기서 형성된 공감대를 바탕으로 국회가 입법을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2016년 국회를 통과한 일명 '연명의료 결정법'도, 그리고 2022년에 발의된 '의사 조력자살' 법안도 모두 사회적 공론화 과정은 건너뛴 채 오로지 '자기결정권'을 전면에 내세우고 '존엄사'란 말로 포장하여 법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외치면서도 비참한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딜레마는 제도가 미비하기보다는 생애말기 장소로 집이 아닌 병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있다. 누구나 늙으면 의존적인 삶을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생애말기 돌봄에 대한 사회적 대안에 철저히 소홀했다. 그 결과 노화도 병으로 간주하고 마지막까지 치료에 집착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고 병원은 삶의 마지막 장소가 되었다. 어찌 보면 연명의료를 거부하고 고통 없는 죽음을 맞이할 권리는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살다 죽을 권리와 그 뿌리가 닿아있다.
우리는 연명의료 결정법 제정 당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회적 대화 없이 전문가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통해 법의 초안을 마련했다. 반면 독일의 경우에는 비슷한 법안을 만들 당시 무려 6년에 걸쳐 대국민 토론을 진행했다. 독일의 완화의학과 의사인 미하엘 데 리더는 "이 과정을 통해 독일인들은 '죽어감과 죽음에 대한 사회적 추방과 금기'를 깰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생의 마지막까지도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는 동시에 모든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라는 요구, 자기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 그리고 담당 의사와 대화하라는 요구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얼마 전 나는 진료실에서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70대 남자를 만났다. 그는 암 수술 후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를 따라온 40대 딸은 남자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아이를 꾸짖듯 왜 그런 부정한 말을 하냐며 화를 냈다.
죽음을 부정하면서 존엄한 죽음을 원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독일의 경우처럼 새로운 죽음의 문화는 한순간의 입법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죽음을 감추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가능하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죽음의 현실을 바라보는 차분하고 성숙한 용기이다.
▲ 박중철 /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
ⓒ 박중철 |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박중철 교수는 인문사회의학 박사이자 호스피스 의사입니다. 왜곡된 한국사회의 성장과 의학적 생명관을 비판하면서, 의료현장 속에서 인문학적 사유를 통해 질병과 건강의 의미, 그리고 삶의 이유와 가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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