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석유를 확보하라”…전 세계는 지금 리튬 쟁탈전 [글로벌 이슈 인사이트]

김덕식 기자(dskim2k@mk.co.kr) 2023. 4. 3.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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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서 전기차는 더 이상 생소한 대상이 아닙니다. 흔한 차량이 되었죠. 곳곳에 전기차 충전소도 많이 들어섰습니다. 친환경 기조에 맞춰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 모델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습니다. 2월 14일 유럽의회는 2035년부터 EU 27개 회원국에서 휘발유나 디젤 등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해당 법안의 통과로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전기차 전환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관측됩니다. 전기차 시장조사업체인 EV 볼륨스닷컴에 따르면 작년 순수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이 55% 증가해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의 약 13%인 1000여 만대를 기록했습니다. 중국에 이어 세계 제2의 전기차 시장인 유럽에서는 지난해 자동차 판매량 가운데 전기차의 비중이 20%를 돌파했습니다.

리튬 원석. [로이터 연합뉴스]
전기차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면서 중요해진 원자재가 있습니다. 바로 리튬입니다. 리튬은 전기차 배터리 생산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핵심 광물로, 검은색인 석유를 대체할 재료라는 의미에서 은백색인 리튬을 하얀 석유로도 부릅니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전기차 시장 확대로 리튬 수요는 2040년까지 40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각국에서는 리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세계 10위 리튬 매장국인 멕시코는 리튬을 국유화한다고 공포하고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리튬 국유화 법안에 서명하면서 “이 나라, 이 지역에 있는 리튬은 모든 멕시코 국민의 것”이라며 “러시아도, 중국도, 미국도 손댈 수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등 다국적 기업의 강한 반발에도 멕시코 정부는 리튬 국유화를 강행했습니다. 라켈 부엔로스트로 멕시코 경제부 장관은 “새로운 산업정책으로 가는 노정에서 석유 국유화가 분수령이었다면, 리튬 국유화는 그 속도를 높이는 톱니바퀴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멕시코 정부의 움직임에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멕시코에 공장을 짓기로 했습니다.
칠레 리튬 광산에서 정제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전 세계적으로 멕시코뿐만 아니라 에너지·자원 분야에서 국가 통제력을 높이는 자원 민족주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화석연료의 대표 격인 원유를 무기 삼아 자신의 이권을 관철했던 중동 국가처럼 중남미 국가들이 리튬을 적극 활용하고 있죠. 칠레와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등 3개국에는 전 세계 리튬의 53%가 매장돼 있어 이들 지역을 리튬 삼각지대라고 말합니다. 전략 자원으로 헌법에 명시한 칠레는 조만간 국영 리튬 기업을 설립합니다. 아르헨티나는 올해 1월 라리오하주 정부가 리튬을 전략 광물로 지정하고 기업들이 가지고 있던 채굴권을 중단시켰습니다. 볼리비아는 좌파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집권하던 2008년에 이미 리튬을 국유화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두고 블룸버그는 “커지는 민족주의가 리튬 공급 성장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석유수출국기구와 유사한 형태의 니켈 기구 설립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바흐릴 라하달리아 투자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성명을 통해 “인도네시아 정부가 오펙과 같은 니켈 생산국들을 위한 특별 기구 설립 준비에 공식 착수했다”며 “호주, 캐나다 정부와 만나 기구 설립에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고 밝혔습니다. 과거 오일쇼크를 일으킨 오펙처럼 힘을 갖춘 기구를 준비하겠다는 것입니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와 별도로 열린 비즈니스 콘퍼런스에서 중국의 CATL, 중국 투자 회사인 CMB 인터내셔널, 인도네시아 국부펀드 간의 파트너십이 체결됐습니다.

리튬 정제 사업을 가리켜 “돈 찍어내는 면허”라고 말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2020년 호주 피드몬트 리튬과 공급계약을 체결했고 지난해부터 텍사스주에 리튬 정제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국 최대 자동차 업체 제너럴모터스는 캐나다 리튬 광산 업체인 리튬아메리카스에 6억 5000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포드도 호주 광산 업체 라이언타운과 계약했습니다. 일본 도요타도 아르헨티나에서 수입한 리튬을 후쿠시마현에서 가공해 전속 공급받기로 했습니다. 지난 1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순방해 벤츠와 BMW 등 자국 기업에 리튬을 공급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죠. 이처럼 각국 차량 업체들의 리튬 확보를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리튬을 향한 뜨거운 경쟁에 기름을 붓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그동안 자동차 산업에 관심이 없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전기차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 공개됐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2030년까지 연간 50만 대의 자동차 생산을 목표로 하는 사우디는 역내 전기차 제조 허브 조성 사업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을 계획입니다. 대표적인 산유국 사우디가 전기차 사업을 육성하려는 것은 원유 수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것입니다. 세계 원유 매장량의 약 17%를 차지하는 사우디는 GDP의 절반가량을 원유 수출을 통해 창출하고 있습니다. 원유 이외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은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중요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사우디 공공투자 펀드는 이미 미국에 본사를 둔 럭셔리 세단 전기차 제조업체 루시드의 지분을 사들이기 위해 20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여러 나라들이 예전 오일쇼크를 기억하면서 리튬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 기업들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LG화학은 미국 광산업체 피드몬트리튬으로부터 총 20만 톤 규모의 리튬 정광 구매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포스코홀딩스도 최근 호주 광물 탐사·개발업체인 진달리리소스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미국에서 점토 리튬 사업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021년 호주 니켈 제련기업 QPM 지분 7.5%를 인수하며 2023년 말부터 10년간 매년 니켈 7000톤을 공급받기로 했습니다. SK온은 지난해 10월 호주 자원개발업체 레이크리소스의 지분 10%를 확보하고 친환경 고순도 리튬 총 23만 톤을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지난해 11월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호주 필바라의 리튬 광산을 방문해 현장을 점검하는 모습. [매경DB]
차량의 다른 부품과 마찬가지로 전기차 배터리 역시 소모품입니다. 이에 따라 폐배터리 재활용을 통한 리튬 확보 경쟁도 뜨거운 상황입니다. 캐서 못 구할 것 같으면 재활용해서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아이마크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지난해 23억 달러에서 2028년 98억 달러로 급격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리튬 배터리의 사용 연한은 대개 5~8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럽부흥개발은행은 최근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인 네덜란드 EIT이노에너지와 함께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폴란드를 포함한 중부유럽 인근 국가에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투자권역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미국 에너지부는 2월 초 네바다에 본사를 둔 배터리 재활용 전문기업 레드우드 머트리얼스의 전기차 배터리 부품 생산 프로젝트에 20억 달러 규모의 조건부 대출 보증을 지원했습니다. 일본 종합상사인 마루베니는 미국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 서바 솔루션스에 5000만 달러를 들여 2025년까지 미국 오하이오주에 신규 재활용 공장 건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 역시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가오공 산업연구원은 2025년까지 재활용이 가능한 폐배터리 부품이 96만 톤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중국 궈하이증권은 2027년까지 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가 1300억 위안 규모로 확대되고, 앞으로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29%로 전망했습니다. CATL은 지난 1월 리튬 배터리 재활용 사업 추진을 위해 광둥성 포산에 최대 238억 위안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또 다른 배터리 업체 구오쉔도 같은 달 연 50기가와트시 용량을 처리할 수 있는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 건설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정부도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에 세액공제 적용을 추진해 광물 수입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포스코홀딩스는 GS에너지와 함께 이차전지 리사이클링 합작법인을 출범할 계획입니다. LG화학은 지난해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인 재영텍과 240억 원 규모의 지분 투자 계약을 체결하고, 올해 북미 지역에 합작 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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