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케어반’ 진짜네… 대치동 학원가 씁쓸한 ‘초딩 의대반’

김용현 2023. 2. 2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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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9시40분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겨울방학 수업이 끝난 초등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17년 동안 대치동 일대에서 수학학원을 운영해온 A원장은 22일 "지난달 겨울방학 직전부터 의대 입시를 미리 준비하겠다는 초등학생이 배 넘게 늘었다"며 "2020년만 해도 학부모 요청으로 2~3명 소수로만 운영해 왔는데 13명으로 크게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대치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초등학생 의대 준비반 바람이 거세진 건 2021년 무렵부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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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생 의대 진학 어려워지자
대치동 학원가 초등생까지 몰려
“입시 문제 해결, 정부가 나서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수학학원에서 지난 21일 한 초등학생이 수능기출문제를 풀고 있다. 김용현 기자


지난 21일 오후 9시40분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겨울방학 수업이 끝난 초등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바퀴가 달린 캐리어 모양의 가방을 끌던 초등학교 6학년 고모(12)군은 귀가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미적분’ 문제집을 꺼내 한참을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고군은 학원 의대 준비반에 다니고 있다. 고군은 “의대 준비반에선 저를 빼고 모두 고3 수학 과정을 끝내놓은 상태”라며 “저보다 어린 애들도 있다”고 말했다.

의대 진학은 예전부터 많은 입시생의 목표였지만 최근에는 준비 연령이 초등학생으로까지 낮아진 모습이다. 17년 동안 대치동 일대에서 수학학원을 운영해온 A원장은 22일 “지난달 겨울방학 직전부터 의대 입시를 미리 준비하겠다는 초등학생이 배 넘게 늘었다”며 “2020년만 해도 학부모 요청으로 2~3명 소수로만 운영해 왔는데 13명으로 크게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대치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초등학생 의대 준비반 바람이 거세진 건 2021년 무렵부터라고 한다. 영재고·과학고 학생이 의대로 진학하면 교육비를 전액 환수한다는 정부 방침이 영향을 미쳤다. 이들 학교를 통해 의대로 진학하려던 학생 다수가 수학능력시험 정시 입학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특목고를 준비하던 입시학원 수업 난도가 ‘수능’으로 높아진 것이다.

A원장은 “의대 준비반에 다니는 초등학생의 3분의 2는 다 고교 과정을 공부한다”며 “과거에는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입시 경쟁이 더 살벌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다른 학원도 초등학생 의대 준비반을 한 반에 2~3명으로 구성해 일대일로 지도하고 있었다. 개별적으로 선행학습 진도를 다르게 하는데, 진도가 빠른 학생은 고3 과정까지 선행학습을 마치고 복습 단계를 밟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주로 부모 권유에 따라 의대 입시 공부를 하다 보니 의사에 대한 직업적 이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의대 준비반에 다닌 송모(14)군은 “엄마의 제안으로 학원 시험을 봤는데, 그때는 의대가 목표인 학원인 줄도 몰랐다”며 “아직 의사가 어떤 직업인지 제대로 찾아본 건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목표를 묻자 송군은 “서울대 의대에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할아버지처럼 의사가 되려면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송군은 고등학교 2·3학년 학생 4명과 함께 2022년도 6월 고2 모의고사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송군의 수학 모의고사 성적은 1등급이었다.

현재의 ‘의대 쏠림’ 현상이 초등학생의 의대 준비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정시에 합격하고도 등록을 포기한 사람은 자연계 모집 정원 2233명 중 737명이었다. 다른 대학 의대·약대로 대거 이탈한 것으로 해석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수능에서 전체 문항 중 최대 4~5문제 정도를 틀려야만 정시로 의대 입학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과학고나 영재고를 통한 의대 입시가 어려워지다 보니 수능 점수를 맞추기 위해 학부모들이 수학과 과학을 선행하는 의대 준비반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교육 철학이나 인재 육성에 대한 국가 비전이 없어서 생기는 입시제도의 과잉”이라며 “손 놓고 있는 입시 문제를 정부에서 눈치 보지 말고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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