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컷] 얼음에서 자라는 나무는 어디일까?
꽁꽁 얼어붙은 하얀 빙벽 사이로 나무 한 그루가 초록의 가지를 뻗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나무 줄기를 타고 이끼가 자란다. 제주도에나 볼 법한 나무다. 얼음 기둥을 뒤로 한 왼쪽의 언덕은 겨울이 아니라 한 여름 초록의 숲이다. 계절을 알 수 없는 이 기이한 풍경은 대체 어디일까?
사람들은 사진이 현실의 모습을 찍어서 보여준다고 믿는다. 아니면 그림(drawing)을 사진처럼 실감나게 묘사했거나, 또는 사진을 합성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사진을 오려와 한 곳에 붙이는 콜라주(collage)는 미술로 여겨지기 때문에 사진이 가진 현실감(reality)은 사라지고 감상자는 어려워한다.
합성한 사진으로 현실감을 보여주기 위해선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피사체의 크기와 위치를 원근법에 맞게 프레임에 배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촬영한 빛과 어둠을 균일하게 맞춰야 한다. 후자가 훨씬 어렵다. 그런데 원성원(52)은 20년 넘게 이런 방식으로 작업해오고 있다. 현재 서울 종로구 뮤지엄한미 삼청 분관에서 1월 29일까지 열리는 ‘모두의 빙점’은 이 추운 겨울날 얼음 사이를 뚫고 나온 나무를 보여주고 ‘의지를 가진 나무’라 했다.
추운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푸른 것이 의지일까, 아니면 의지가 너무 굳세면 주위 풍경과 어울리지 않으니 곧 얼어서 부러질 수 있다는 경고일까? 작가는 “해석은 보는 사람이 알아서 하는 것”이란다. 어렵다.
알쏭달쏭한 사진을 보며 질문하는 이유는 작업들이 현실감과 환상을 사이를 오가는 사실적인 콜라주이기 때문이다. 원성원은 현실에 있는 사진으로 세상에 없는 모습을 배치해서 그럴듯한 풍경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작가가 살면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심리와 사회, 사적인 경험들이 이야기로 펼쳐진다. 어떻게 이런 작업들이 시작됐을까?
“유치해도 괜찮다. 네가 원하는 걸 해라”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던 원성원은 독일로 유학 가서 설치미술을 공부하다가 퇴학 위기에 놓인다. 설치미술을 하기엔 체력적인 조건이 부족했고, 사람들과 협업 속에서 완성될 수 있었다. 타인들과 관계를 어려워하던 작가와는 맞지 않았다. 어느 날 자신을 보던 담당 교수가 “집으로 가라”고 통보했다. 두 달 내로 다른 선생을 찾지 않으면 추방될 신세였다.
패닉에 빠져 있을 때 친구가 빌려준 카메라로 자신의 방에 있던 속옷이며 약 봉지 등의 잡동사니들을 사진으로 찍어서 종이를 오려 붙여보았다. 이것을 학교 빈 벽에 걸어 놓고 신세를 한탄하며 혼자 울고 있을 때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옆 반 클라우스 린케(Klaus Linke) 교수가 이 모습을 보았다. 벽에 걸린 콜라주를 보더니 자기 수업에 와보라고 했다. 린케 교수는 작가의 콜라주를 보면서 “좀 유치하네. 그런데 계속해봐, 유치해도 네가 하고 싶은 걸 계속해야 작가지”라며 격려했다.
인생에서 바닥을 치고 일어난 그때 작가는 결심했다. 남들에게 멋있게 보이는 것, 잘 모르는 것들 것 하지 않겠다고. 앞으로는 내가 아는 것만 할 것이며 다른 사람들과 협업을 해야 가능한 설치 미술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보겠다고. 결국 사진으로 찍은 대상(오브제object)을 포토샵으로 합성해서 보여주는 현재의 방법이 되었다.
원성원은 디지털 사진을 찍으면서 초기에 평판 스캔한 종이 사진을 가위로 오려 붙이는 대신 포토샵6의 수천개의 레이어로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현재 원성원이 콜라주로 완성하는 사진 한 장엔 약 1,700장에서 2,000장의 사진들이 있다. 일부러 그림자가 일정하게 흐린 날을 택해서 촬영한다. 포토샵으로 없는 음영을 만들거나 색이나 형태를 변형하지도 않고 오로지 오려서 붙이는 사진 콜라주의 일관된 방법을 고수한다.
평균 12시간 가까이 매달리는 사진 보정을 3개월 하면 한 장 나오는 중노동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얼음과 고드름은 강원도 인제, 철원이나 경북 청송의 얼음 폭포를 찾아다니며 찍었고 나무는 제주도 등에서 촬영했다. 포토샵 작업만 3개월이지 촬영까지 더하면 수 개월에서 1년까지 걸린다.
과거 몇 번이나 자신의 작업 방식을 강의해서 학생들에게 알려준 적이 있었지만, 아무도 따라하는 사람이 없었다. 방법을 알려줘도 따라 할 수 없는 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 때문이다.
어렵기 때문에 하고 싶은 소재가 된 인간관계
원성원의 작업들은 대부분 경치를 보여주고 메시지를 숨긴다.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이 궁금했다.
“주로 내가 만난 사람, 내가 겪은 어려운 일에서 비롯된다”면서 대부분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나 관계에서 착안한다고 했다. 작가는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람을 지독히 높고 차가운 얼음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작가는 사람들의 얼음장 같이 차가운 성격에도 따뜻한 물이 흐르거나 꽃이나 푸른 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보았다.
추상적인 사람의 인성이나 심리를 구체적인 사물로 구성하고 어떻게 연상하는지가 궁금했지만, 작가는 사람을 볼 때 자연스럽게 풍경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무엇을 보면 연상이 되는 이미지가 있듯이 사람이나 집단마다 성격을 자연 현상으로, 풍경으로 표현되는 이미지가 있다”고 했다.
관심이 있는 분야를 물었더니 바로 “사람들과 관계”라고 답했다. 자신이 가장 어려운 것이 인간 관계라서 가장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한 장을 위해 세 달간 포토샵에 매달리는 동안 작가는 수많은 고민과 회의를 오가면서 마주한다. 그럼에도 수많은 난관을 ‘집중과 노력으로 극복하고 완성하면서 자신만의 예술로 하나씩 성과를 이루는 점이 작가’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나도 불안하다. 그렇지만 불안을 이기고 끝까지 가는 건 내 작업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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