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자는 ‘난동’을 부렸는가?

한겨레 입력 2022. 11. 29. 19:10 수정 2022. 11. 3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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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과 출근길 문답을 마친 뒤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부터 출근길 약식회견을 중단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세상읽기]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윤석열 대통령 출근길 약식회견(도어스테핑)이 중단된 지 열흘째다. 현 정부의 상징이었던 출근길 회견이 멈춰선 이유는 지난 18일 <문화방송>(MBC) 기자를 둘러싼 ‘사건’이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그 사건을 ‘불미스러운 사태’ 또는 ‘난동’으로 규정한다. 과연 그날의 사건은 난동이었나?

분석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18일 사건은 해당 기자 행위를 중심으로 1, 2행위로 구분할 수 있다. 1행위는 윤 대통령이 답변 이후 이동하는 순간에 기자가 “무엇이 악의적이냐?”고 질문한 행위다. 2행위는 위 질문 직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과 기자가 벌인 언쟁이다. 각 행위를 내용과 형식으로 나눠 평가해보자.

먼저 1행위 내용. 윤 대통령은 엠비시가 “동맹 관계를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는 아주 악의적인 행태”를 했다고 말했다. 당시 대통령실의 바이든-날리면 가짜뉴스 주장, 한-미 동맹 손상 주장은 익숙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익숙한 두 이야기 사이에 엄청난 사실을 넣었다. 엠비시 보도가 ‘결과적’으로 동맹을 흔든 것이 아니라, 엠비시가 한국 외교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이간질하려는 악의)를 가지고 사실을 조작했다고 말한 것이다. 공영방송이 실수가 아닌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인데, 대통령 입에서 처음 나온 이 ‘악의’를 다시 묻는 건 꼭 필요한 일이었다. 대통령실은 18일 사건 직후 서면을 통해 ‘악의’에 관해 상세히 답변했는데, 답변할 가치가 있는 질문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다음으로 1행위 형식. 또 다른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기자가 밀착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일상적인 모습이다. 답변을 거절해도 계속 질문한다. 이에 어떤 비판이 있었나? 국회의원과 대통령은 차원이 다르다? 맞다. 달라서 질문하라고 정해진 위치에 그대로 서서 떠나는 대통령에게 답변을 요청했을 뿐이다. 출근길 회견 중 윤 대통령이 추가 질문에 발길을 돌려 답변한 적도 여러번이다. 이를 누가 불미스럽다 한 적이 있었나? 질문에 따라, 대통령의 기분에 따라 평가가 바뀔 수는 없다.

대통령 뒤통수에 대고 소리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 기자는 2020년 8월4일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 퇴근길에 이뤄진 문답에서 추가 질문을 받지 않고 이동하는 아베 총리에게 “도망가지 마세요!”라고 소리쳤다. 당시 일본 내에서 ‘도망’이라는 표현을 두고 찬반이 나뉘었지만, 이동하는 총리에게 질문을 던진 행위 자체를 두고는 비판적인 평가는 없었다.

2행위 역시 내용부터 보자. 대통령 출입기자실을 관장하는 홍보기획비서관은 “들어가시는 분에게 그렇게 얘기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라며 질문을 제지했고, 기자가 이에 항의하면서 언쟁이 벌어졌다. 대통령실이 언론에 해서는 안 되는 말이 딱 하나 있다면 ‘질문하지 말라’라는 것이다. 권력이 기자에게 ‘질문을 자제해야 할 예의’를 말하는 순간 검열과 통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의 다른 사례를 보자. 2020년 8월6일 10여분의 짧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떠나는 아베 총리에게 <아사히신문> 기자가 추가 답변을 요구하며 질문을 이어가자 총리실 직원이 해당 기자의 팔을 잡고 “안 돼, 끝, 끝”이라고 했다. 현장에서의 항의는 물론이고, 해당 기자가 소속된 신문사까지 총리실에 “질문 기회를 빼앗는 행위로 이어질 수 있어 용인할 수 없다”며 재발방지 조치를 요구했다. 엠비시 기자는 항의할 만한 사안에 대해 항의를 했다.

마지막으로 2행위 형식. 기자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고성을 내고 감정적으로 표현한 것은 사실이며, 이에 대한 평가는 나뉠 수 있다. 그러나 채 2분이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의 언쟁이었고 공식적인 절차 중 발생한 것도 아니었다. 신체접촉이나 길을 막는 등의 업무방해도 없었다. 이 정도 항의가 대통령실 출입이 금지될 ‘난동’ 또는 ‘품위 유지 위반’이라고 볼 수는 없다.

내용과 형식에서 제대로 물고 늘어질 것이 없으니, 팔짱을 꼈다는 둥 삼선슬리퍼를 신었다는 둥 본질과 상관없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자가 슬리퍼를 신어서 대통령이 출근길 회견을 중단했나? 여권의 낙인찍기로 해당 기자는 살해 협박을 받고 경찰에 의해 신변보호까지 받고 있다. 답변하기 힘들고 불편하면 창피해도 답변하지 않으면 된다. 평가는 국민이 할 것이다. 그 창피함을 가리려고 기자 한명을 족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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