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장관 사퇴 주장은 후진적"…그럼 선진국은 어땠나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 바꿔라’, ‘청장 바꿔라’, 이것도 후진적으로 본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8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내각 경질론에 반대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의 부실 대응을 지적하는 이장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일단은 현장 책임자가 판단을 해줘야 한다. 주말 오후인데 장관이나 총리가 어떻게 알겠나”라며 한 말이다.
김 실장의 발언은 “행정 공백”이라는 현실적 우려를 표명하는 가운데 나왔다. 지난 7일 이주호 교육부 장관 임명으로 윤석열 정부 출범 6개월 만에 겨우 내각 진용을 갖춘 상황에서 장관을 경질하면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김 실장은 “지금 사람을 바꾸고 하는 것도 중요할 수도 있지만,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겠나”라며 “또 청문회 열고 뭐 하면 두 달이 흘러간다. 행정 공백이 또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야권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이상민 장관에 대해선 “그렇게 자리에 연연하는 분이 아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김 실장의 “후진적” 표현을 놓고는 정치권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흔히 ‘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테러·사고로 여론이 나빠지면 행정 책임자를 경질하는 문제로 정치적 공방이 적잖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국제공항 인근에서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로 13명의 미군과 아프가니스탄 시민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 공화당 상·하원 의원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군을 결정한 게 문제였다는 논리였다. 당시 마샤 블랙번 상원의원은 “이것은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 실패에 따른 재앙적 산물”이라며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뿐 아니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마크 밀리 합동참모본부(합참) 의장 등 국가안보팀 전체의 동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2016년 30여명이 사망한 브뤼셀 테러 직후 벨기에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은 동시에 사임 의사를 밝혔다. 당시 총리가 사표를 반려하긴 했지만 사퇴로서 장관의 책임을 다하려 한 것이다. 당시 코엔 긴스 벨기에 법무장관은 테러 이틀 뒤 TV에 나와 “용의자 2명 중 1명의 위험성을 사전에 터키 정부로부터 통보받았다”고 시인한 뒤 “우리는 많은 자기비판을 해야 한다”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같은 해 프랑스 니스 트럭 테러 때도 정치적 책임 공방이 뜨거웠다. 대선 10개월 전 86명이 사망한 대형 사고가 터지자 당시 야당이던 공화당에서 “언제까지 과오를 반복할 것이냐”고 정부를 추궁했고 극우정당에서는 “이번 테러는 국가의 직무 태만이다. 책임을 물어 내무장관을 경질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영국에선 1989년 힐스버러 축구장 압사 사고 때 정부 대응이 ‘좋지 못한 사례’로 꼽히곤 한다. 당시 경찰 보고만 믿고 관련자 문책을 등졌던 마거릿 대처 총리는 이후 “매기 대처가 죽으면 파티를 열 거야(When Maggie Thatcher dies, we're gonna have a party)”라는 노래가 생길 정도로 수십년간 지탄을 받았다. 결국 참사 20주기를 계기로 진상조사를 재개한 끝에 2012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유가족에게 ‘두번의 불의(Double Injustice)’를 공식 사과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태원 참사와 힐스버리 사건을 비교하는 글도 종종 올라오고 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참사 국면에서는 정부가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데 ‘후진적’이라는 김 실장의 말 자체가 후진적으로 들릴 수 있다”면서 “1999년 씨랜드 참사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바로 다음날 대국민 사과를 했고, 그로 인해 내각 책임론을 피했던 전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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