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장보고-Ⅲ급 잠수함 방산 기술, 대만에 넘어갔다

이해인 기자 2022. 6. 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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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기술로 보호받는 우리 해군의 최신예 3000t급(장보고-3급) 잠수함 기술 일부가 대만으로 유출된 혐의가 드러나 경찰이 관련자들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긴 것으로 6일 확인됐다. 유출된 기술은 대우조선해양이 갖고 있는 것으로, 대우조선은 해군의 첫 3000t급 잠수함인 ‘도산 안창호함’ 등 우리나라 주력 함정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우리 해군의 최신예 3000t급(장보고-3급) 잠수함이 실전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상상도. 이 잠수함은 국내 독자 기술로 설계된 것이다. 장보고-3급으로 처음 만들어진 ‘도산 안창호함’은 작년 8월 해군에 인도돼 임무 수행에 들어갔다.

6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군사 장비를 무허가 수출하고 대우조선의 잠수함 기술을 대만의 국영기업인 대만국제조선공사에 넘긴 혐의로 조선기자재 업체 A사 등 법인 3곳과 관계자 3명을 지난 3월 검찰에 송치했다. 이 중 잠수함 기술 도면 일부를 갖고 출국한 뒤 이를 대만 기업에 넘긴 혐의를 받는 1명은 구속 송치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원래 총 1500억원을 받기로 하고 대만 기업의 잠수함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들은 대우조선 잠수함 건조 기술자로 일했던 퇴직자 등을 채용한 후, 이 중 20여 명을 대만으로 보내 잠수함 제작에 참여하게 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이 기술을 유출한 대가로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79억원에 대해 ‘기소 전 추징보전’ 신청을 해 법원에서 인용 결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6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에 본사를 두고 경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조선 기자재 업체 A사는 2019년쯤 대만의 ‘잠수함 도입 사업’에 뛰어들었다. 대만은 오는 2025년까지 자체 기술로 잠수함 8척을 만들겠다는 걸 목표로 내걸고 사업을 추진 중이다. 대만이 입찰을 통해 이 사업에 참여할 업체를 모집할 당시 A사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입찰에 참여했다. 하지만 대부분 중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군사 기술이나 물자를 수출하려면 정부나 군의 허가가 필요한데, 대만 잠수함 사업에 참여하는 게 기술 유출에 해당할 수 있는 여지가 컸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남경찰청 조사 결과, A사는 1500억원 규모 계약을 맺고 2019년부터 최근까지 대우조선해양의 잠수함 사업부에서 일했던 퇴직자 15명을 포함해 총 20여 명을 대만에 파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이들이 대만 남부 가오슝(高雄)에 있는 대만국제조선공사에서 잠수함 건조 업무에 투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중 한 명은 대우조선해양에서 빼낸 잠수함 유수분리장치, 배터리 고정 장치 등 핵심 부품의 설계 도면 2건을 넘긴 것이 확인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지난 3월 A사 등 법인 3곳과 관계자 3명을 대외무역법 위반,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이 중 직접 설계 도면을 갖고 대만에 간 회사 대표의 동생은 구속됐다. 경찰은 현재 대만에 머물고 있는 이 회사 대표에 대해 수배령을 내렸다.

이들 중 일부는 잠수함을 만들 때 사용하는 일부 부품을 아예 대만으로 가지고 갔는데, 공항에서 “해양플랜트 건설에 필요한 풍력 부품”이라고 속여 유출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들은 경찰에 “처음에는 문제가 될 줄 모르고 사업을 진행하다가 나중에 불법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만둘 수 없어서 계속 진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1500억원 규모 계약을 맺었지만 기술 유출 정황이 도중에 발각되면서, 실제 받은 돈은 중도금 성격의 약 640억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 중 기술 유출 대가로 보이는 약 79억원에 대해 법원을 통해 기소 전 추징보전 조치를 했다. 경찰이 범죄로 얻은 재산을 빼돌리는 것을 막는 조치인 기소 전 추징보전을 산업기술 유출 사건에 적용한 건 처음이다.

한편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2월부터 5월 말까지 100일간 특별 단속을 벌여 A사 관계자 등 산업기술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 96명을 적발해 검찰에 넘겼다고 6일 밝혔다. 기술 유출이 적발된 건수는 총 23건인데, 이 중 4건이 국외로 기술이 유출된 사례다. 유형별로는 영업 비밀 유출이 16건으로 가장 많았고, 기업 규모별로는 중소기업 피해가 18건으로 대기업(5건)보다 많았다.

이 중에는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으로부터 전기차 배터리로 사용되는 2차전지 기술을 빼낸 사건도 포함됐다. 서울경찰청은 지난 3월 말 SK이노베이션 법인과, 이 회사 전기차 배터리 부문 총책임자였던 부사장급 임원 B씨 등 35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 송치했다. SK이노베이션은 당시 LG 직원 100여 명을 경력직으로 채용하는 과정에서 면접을 보면서 이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기술 발표와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방법으로 LG화학 기술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10월 말까지 산업기술 유출 사범에 대한 특별 단속을 계속해 반도체·2차전지·조선 등 국내 기업의 핵심 기술을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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