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규 신작장편소설 '망루'
용산참사 연상 배경으로 전철거민과 종교집단 '힘겨루기'
"비겁한 신이여. 이젠 이 최후의 선택조차 인간의 손에 떠맡기는 무력함으로 일관하는구나."(311쪽)
'열심당'은 로마제국의 식민통치에 폭력항쟁으로 맞설 것을 주장한 유대의 혁명정당을 일컫는다. 로마의 잔인한 살육과 핍박에 거리에는 신음소리가 넘쳐나고 피비린내 진동하는 아수라판에서 열심당 지도자 '벤 야살'은 재림 예수를 만났다. 하지만 그 예수는 자신들의 편이 되어 로마 병정들을 쓸어내기는커녕 다친 적들까지 치유해준다. 불타는 예루살렘 건너편 마사다 언덕에 고립돼 시시각각 조여드는 로마군의 포위 속에서 절규하는 벤 야살. 이미 심판의 칼을 인간들에게 빼앗겼노라고 한탄하는 예수에게 그가 던진 절규가 바로 '비겁한 신!'이라는 원망이었다. 벤 야살은 재림 예수의 심장 깊숙이 칼을 찔러 넣는다.
이 이야기는 물론 허구다. 주원규(35·사진)의 신작장편 '망루'(문학의문학)에 등장하는 이야기 속 이야기다. 이 소설은 용산참사를 연상시키는 철거 현장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용산과 다른 점이라면 철거민들과 표면상 대처하는 이들이 대형 복합쇼핑몰을 건설하려는 종교집단이라는 설정이다. 세명교회의 당회장 조창석 목사는 미국에 유학 보낸 아들 조정인을 후계자로 내세운다. 미국에서 신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알코올 홀릭, 도박, 어설픈 펀드놀음밖에 하지 않았던 조정인은 신학교 졸업장을 돈으로 사서 귀국해 세명교회를 이어받은 뒤 이곳을 새로운 사업의 터전으로 삼으려 한다. 그의 설교 원고를 대신 작성해주며 기득권을 보장받으려는 전도사 정민우. 한때 민우와 신학교 동기였던 윤서는 그와는 반대편인 미래시장 철거민들 편에 서서 세명교회와 싸운다.
민우가 관리하는 세명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재림 예수가 나타났다'는 연재 글이 뜨기 시작하고 결국 철거민들과 함께 하는 '한경태'라는 사나이의 기적 같은 치유현장을 목격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윤서가 재림예수라고 믿는 한씨는 벤 야살이 저주했던 그 예수처럼 무자비한 용역 깡패들을 앞세운 '제국의 주구'들을 속시원히 처결하지 못한 채 부상한 깡패까지 돌보는 답답함을 보여준다. 결국 윤서의 노트에서 나온 벤 야살의 재림예수나 미래시장 철거판의 재림예수는 시대와 공간만 다를 뿐 같은 인물인 것이다. 외로운 마사다 고지나 시장판 망루 또한 같은 현장일 수밖에 없다.
종교인의 탈을 쓴 욕망의 화신 조정인 목사는 민우에게 "제아무리, 어떻게 짓밟고 길길이 날뛰어도 세명교회는 절대 무너지지 않아. 오히려 더 흥왕해지겠지. 왜 그런 줄 알아? 이 애송아"라고 묻고 스스로 답한다. "이 머저리들은 모두 신의 노예들이기 때문이야. 네 녀석도 마찬가지고."(206쪽) 신을 앞세우면, 신의 이름으로 요구하면 그저 '아멘'만 합창하는, 도그마에 빠진 맹목적인 신앙인들을 철저하게 이용하는 '제국의 구조'를 신랄하게 조롱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열외인종잔혹사'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조명을 받기 시작한 작가 주원규는 총회신학 연구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종교공동체를 지향하는 대안교회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종교적인 구원과 현실 문제 해결에 깊이 천착해온 편이다. 그러니 단순한 문학적 관심을 넘어서는 깊은 종교적 성찰이 신예작가의 장편에 골 깊은 서사로 묵직하게 각인된 것도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그는 "지금도 계속해서 사람들은 추방의 언덕, 생존의 망루 위를 오르고 또 오른다"면서 "수원 성남 서울 곳곳에서 도시의 이름, 인간의 이름으로 어떤 이들은 살아남거나 또 어떤 이들은 짓밟히는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작가의 말에 밝혔다. 그는 이어 "가해자와 피해자, 승자와 패자, 가진 자와 잃은 자? 과연 이러한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고 과연 소설은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이번 소설에서는 "생의 밑바닥에서 쏟아져 나오는 절규와 탄식, 짓이겨진 자들의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는 그곳을 향해 가야만 하기에, 누군가들의 손에 쥐어져 있던 (신이 빼앗긴) 칼을 대신 집어야 하는 것, 그래야만 하는 것"이라고 비교적 선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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