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숙 주거 가능', 계약서 명시 없어도 착오 일으킬 수 있다

정영희 기자 2023. 9. 19.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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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없는 지옥 '생활숙박시설'(2-2)] "돈 된다" 광고에 현혹돼 앞다퉈 사들인 생숙 지금은…

[편집자주]법적 숙박시설로서 주거가 불가한 '생활숙박시설'(생숙)의 투자 피해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정부는 다양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공급자(사업자)에 대한 제재가 약하고 투자자 개인이 소송과 재판을 통해 허위·과장광고에 따른 피해를 입증해야만 구제받을 수 있는 현행 체계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행업자들이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는 것에 비해 투자자는 소송을 통해 최소한의 피해 보상받는 것 조차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분양업자가 계약자를 고의로 속인 사기성 계약이 아닌 경우 현실적으로 보상 방안이 적은 만큼 계약서 내용에 없는 혜택 등의 홍보를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파트 대체 상품으로 주거용으로 인기를 끌던 생활형 숙박시설이 정부의 숙박업 신고 규제에 발목이 잡혔다. 소유자들은 오는 10월14일까지 숙박업 신고를 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사진=뉴시스

◆기사 게재 순서
(1) 생숙 피해 소송·재판 통해서만 보상… "행정 제재 없어"
(2) '생숙 주거 가능', 계약서 명시 없어도 착오 일으킬 수 있다
(3) 하재섭 변호사 "투자 설명 의무 위반 땐 계약 취소 가능해"

생활숙박시설(이하 '생숙')은 호텔과 오피스텔을 합친 개념으로 주택법이 아닌 건축법을 적용받아 주거가 불가하지만 전매제한 등 규제가 없어 부동산 상승기엔 투자자가 몰렸으나 지금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오는 10월15일부터 생숙의 숙박업 등록을 의무화하는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하루 전인 같은 달 14일까지 숙박업 신고를 하지 않으면 매년 두 차례 분양가 등의 10%에 해당하는 이행강제금 부과 대상이 돼 소유자나 계약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생숙은 증가하는 외국인 관광객 수를 감당하기 위해 2011년 보건복지부가 '공중위생법' 시행령을 개정, '체류형 숙박시설' 개념을 도입하면서 합법화됐다. 정작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건 외국인 관광객이 아니라 블루오션을 찾는 부동산 투자자들이 몰려들면서부터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8년 말 3만1108실이던 전국 생숙은 2022년 말 8만6920실로 2.9배가량 증가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집값 상승기'가 겹친다. 당시 정부는 분양권 전매제한이나 다주택자 중과세 등 각종 규제를 통해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을 잡고 싶어 했다. 여기엔 아파트뿐 아니라 오피스텔도 포함됐다.
정부는 생숙 규제에 대한 대안으로 오피스텔로의 전환 시 조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관련 법령과 지방자치단체 조례 등에 따른 조건을 모두 충족하기엔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사진=뉴시스


무풍지대 생숙, 2020년 국감서 처음 브레이크


투자자들은 '주택법' 적용 대상이 아닌 생숙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행사와 분양업자들은 곧장 생숙을 이른바 '무풍지대'로 홍보하며 규제를 피하고도 아파트와 동일하게 거주할 수 있다며 홍보했다. 생숙을 실거주 목적으로 활용한 이들이 많아진 이유 중 하나다.

생숙의 활발한 분양에 처음 제동이 걸린 시점은 2020년 국정감사다. 생숙이 종합부동산세 중과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투기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국토부는 이듬해 5월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생숙을 숙박업으로 등록하고 숙박업을 영위하지 않거나 소유자 본인이 거주하는 경우 불법 건축물로 분류하고 2년의 유예기간까지 용도 변경을 미이행하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는 조항도 추가됐다. 주거용으로 활용하려면 오피스텔이나 주택으로 용도 변경을 해야 한다.

그 동안 특별한 법적 제한 없이 생숙에 살던 이들은 당장 2년 후 불법 건축물로 분류될 거주지에 강한 불만을 표했다. 국토부는 실거주자를 위해 오피스텔 용도 변경 시 발코니와 난방 기준을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지난 8월 기준 전국 592개 사업장 10만3820실의 생활숙박시설 중 오피스텔로 변경된 곳은 1.1%인 1173실 뿐이다.


'산 넘어 산' 용도변경… '불법 건축물' 분류 기로에


생숙을 오피스텔로 용도변경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건축법과 하위 법령은 물론 각 지방자치단체의 지구단위계획과 조례상의 건축 기준도 지켜야 한다. 생숙에서 오피스텔이 되려면 주민동의를 바탕으로 바닥과 복도 폭을 주거 용도에 맞게 재시공해야 하고 노약자를 위해 출입문 손잡이의 높이를 다시 조정하거나 점자블록 등을 설치할 의무를 진다. 방화유리 등 안전에 따른 설비 조건도 충족할 필요가 있다. 이미 준공된 생숙이 이 같은 조건을 모두 지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생숙 숙박업 신고를 의무화하는 법규정에는 이미 분양됐거나 준공 후 사용 중인 건축물까지 소급해 적용한다는 단서가 달려 있는데 이것이 헌법상 소급입법금지 원칙을 위반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사진=뉴시스
겨우 조건을 충족했더라도 무작정 용도변경이 가능하지도 않다. 상업지역처럼 지구단위계획 상 주거용 오피스텔의 건축이 허용되지 않는 곳의 생숙은 용도변경을 위한 조건을 갖췄더라도 해당 지자체에서 지구단위계획을 수정해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통상 지구단위계획 변경은 학령인구에 따른 학교용지 추가 확보를 수반하며 때로는 가용 필지 부족 등을 이유로 아예 불가하기도 하다.
주차 문제도 한몫한다. 이는 보통 각 지자체 조례에 포함된 건축기준에 명시돼 있다. 예컨대 서울시의 '주차장 설치 및 관리 조례'에 따르면 생숙과 같은 숙박시설의 부설주차장은 시설면적 134㎡당 1대를 주차할 수 있어야 하지만 오피스텔은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이 적용돼 면적당 주차 가능 대수가 65~75㎡당 1대다. 쉽게 말해 오피스텔로 용도변경을 하려면 주차장 부지가 최소 2배 이상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또한 마땅한 용지가 없거나 비용 증가에 부담을 느낀 주민 반대에 부딪치면 용도변경이 물거품되는 원인 중 하나다.


생숙 규제안 '소급입법' 논란… 위헌 소지 있나


개정 건축법 시행령이 헌법상의 일반원칙인 소급입법에 의한 불이익 변경금지와 신뢰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1년 5월에 개정된 건축법 시행령에는 '공포한 날을 기준으로 이미 분양됐거나 준공 후 사용 중인 건축물까지 소급해 적용되도록 한다'는 규정이 있다.

건설 관련 규정을 개정할 때는 통상 법령 시행일 이후 인·허가를 받은 사업부터 적용토록 함으로써 헌법상 소급입법에 의한 불이익 변경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다. 이에 반해 생숙 규제 개정법은 진정소급입법에 해당해 원칙적으로 허용 불가라는 주장이다. 진정소급입법이 적법하려면 ▲신뢰보호 이익이 적은 경우 ▲소급에 따른 당사자의 손실이 없거나 아주 경미한 경우 ▲중대한 공익상 사유가 있는 경우 등의 사정이 인정돼야 한다.

석호영 명지대 법무행정학과 교수는 "생숙 규제의 소급적용은 소위 '부진정소급'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소급적용을 배제해야 하며 규제적용은 시행일 이후 건축허가를 받은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전 생숙을 매입할 때 '주택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분양업자나 시행업자의 주장을 믿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면 분양계약 취소를 고려해야 한다. 별도의 손해배상은 긴 다툼을 각오해야 한다. 이들이 고의적으로 허위과장 광고를 했거나 분양을 활발히 할 목적으로 수분양자를 기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돼야 하기 때문이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해당 내용이 계약서에 명시돼있지 않더라도 계약 당시 '주거 가능' 등의 말이 착오를 일으켰다는 점이 인정되면 취소가 가능할 것"이라며 "손해배상청구의 소도 법리적으론 충분히 제기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사정을 자세히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생숙 주거를 허용하는 대신 전입신고를 하면 주택으로 간주, 과세를 하는 방안에 대해서 정부는 여전히 회의적인 입장이다./사진=머니투데이 DB


원희룡 "'생숙' 주거 인정, 형평성 문제로 어렵다"


현재로선 생숙에서의 거주를 합법적으로 이어가려면 위탁 운영업체와 위수탁 계약을 맺고 이들의 숙박업 신고를 통해 일반 임대사업자로 등록해야 단기·장기 숙박과 전입신고가 가능하다. 이때 기준은 최소 30실이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의 생숙은 구분소유자로 구성된 집합건물이기에 기준 충족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투숙객들의 체크인을 돕는 로비나 레스토랑, 기타 편의시설 등 기본 요건도 갖춰야 한다.

생숙 규제를 둘러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또 다른 주거의 유형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오피스텔 역시 처음엔 건축법 상 업무시설에 해당했지만 시대와 시장변화를 수용, 주거 유형으로 인정하고 주택법에 따른 준주택으로 도입된 바 있다. 현 정부가 1인 가구 증가 등 생활문화 변화를 반영한 기존 용도 정비와 신설에 열을 올리는 것도 궤를 같이 한다.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1~2인 가구 증가와 가구 구성원, 연령 변화로 다양한 형태의 맞춤형 주거유형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정착, 거주, 체류, 숙박 기능 구분이 무의미한 체류형 주거시설 개념이 새로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선 정부 부처에 따라 달리 사용하고 있는 주거와 숙박의 개념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토부와 보건복지부는 생숙을 숙박시설로 분류, 주택 규제 적용을 배제하고 숙박업 신고를 의무적으로 받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주민등록법'에 따라 30일 이상 거주 목적 유무와 숙식 가능 여부 등으로 생숙을 주거시설로 판단해 전입신고를 허용한다. 이처럼 두 단어 사이 정의의 모호함에 따른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는 것이 현실이다. 김 교수는 "주거는 협의의 기준인 건축물 용도가 아닌 실질적 사용 형태를 기준으로 구분해야 한다"며 "실제로 미국 뉴욕시는 30일 이상 거주하는 숙박시설의 경우 주거용도로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는 생숙 규제 완화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지난 9월10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생숙에의 주거를 허용하되 전입신고 시 주택 수에 포함해 과세하는 방안에 대해 "도심에 공급을 하다 보니 주차장이나 소방 등에서 규제를 완화해주면 아파트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것"이라며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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