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숙 피해 소송·재판 통해서만 보상… "행정 제재 없어"

김노향 기자 2023. 9. 19.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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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없는 지옥 '생활숙박시설'(2-1)] 폭탄 맞은 '생숙'… 공급자 책임 없이 계약자만 '골탕'

[편집자주]법적 숙박시설로서 주거가 불가한 '생활숙박시설'(생숙)의 투자 피해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정부는 다양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공급자(사업자)에 대한 제재가 약하고 투자자 개인이 소송과 재판을 통해 허위·과장광고에 따른 피해를 입증해야만 구제받을 수 있는 현행 체계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행업자들이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는 것에 비해 투자자는 소송을 통해 최소한의 피해 보상받는 것 조차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분양업자가 계약자를 고의로 속인 사기성 계약이 아닌 경우 현실적으로 보상 방안이 적은 만큼 계약서 내용에 없는 혜택 등의 홍보를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건축법 제80조 제5항에 따라 생활숙박시설 불법 거주자는 해마다 두 번씩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공급자에 대한 행정 제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뿐이지만 소비자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제재 수단이 약한 상황이다. /사진=생활숙박시설 피해자 모임
◆기사 게재 순서
(1) 생숙 피해 소송·재판 통해서만 보상… "행정 제재 없어"
(2) '생숙 주거 가능', 계약서 명시 없어도 착오 일으킬 수 있다
(3) 하재섭 변호사 "투자 설명 의무 위반 땐 계약 취소 가능해"

#. "하이엔드(최고급) 주거시설이라고 홍보해서 분양이익을 챙긴 건설업체는 왜 처벌받지 않나요. 주거를 지속하면 이행강제금 문제만 아니라 대출도 회수될 수 있다고 합니다. 새로 살 집은 어떻게 구해야 하나요."

#. "아파트는 공부방 같은 개인사업도 하는데 생활숙박시설은 왜 거주가 안되나요. 정부가 주택 공급을 위해 부도 호텔을 주거시설로 개조·임대하는 정책도 있는데 생활숙박시설은 왜 살던 사람들을 내쫓나요. 지자체는 전입신고도 권장했습니다."

생활숙박시설(이하 '생숙')이 부각된 것은 2021년 주택법이 아닌 건축법의 제한을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분양 홍보 과정에서 규제 완화 등 혜택이 일반 소비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2021년 하반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전까지 수 년 간 저금리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지속되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함에 따라 당시 정부는 주택담보대출과 세금 규제를 강화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0~40%로 낮아졌지만 생숙 투자자는 신용대출을 통해 분양금액의 60~70%가량 빌릴 수 있고 청약통장 없이 계약금만 내면 곧바로 전매해 단기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인기 요인으로 부상했다. 아파트처럼 보유 수에 따라 취득세와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등 각종 중과세를 내야 할 필요도 없었다.

건축법 제80조 제5항에 따라 생숙 불법 거주자는 해마다 두 번씩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공급자에 대한 행정 제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뿐이다. 투자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허위·과장광고 내용이 법적 증거 자료로 인정될 수 있지만 소비자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제재 수단이 약한 상황이다. 계약자가 시행사를 상대로 분양계약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현재로선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분양업자만 잔칫상


생숙은 주택법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규제 대상이 아니다. 분양 사업자가 분양가를 정할 수 있는 것이 공급자 입장에선 최대 메리트다. 이 같은 이유로 2021년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분양한 '롯데캐슬 르웨스트'(876실)의 분양가는 111㎡(이하 전용면적) 기준 최고 20억9400만원에 달했다. 국민 평수로 불리는 84~88㎡의 경우 14억~17억원대였다.

앞서 2020년 공급된 마곡9단지 84㎡ 분양가가 아파트임에도 최고 7억원을 넘지 않았다. 생숙이 최대 10억원가량 비싼 셈이다. 마곡지구 최고가 아파트인 마곡13단지 힐스테이트 마스터 84㎡도 최고 실거래가가 15억1000만원으로 2억원 가까이 낮다.

롯데캐슬 르웨스트 청약 당시 모델하우스 부근엔 소위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자)이 등장했고 평수에 따라 수천만원부터 2억원대 프리미엄 분양권 거래가 횡행했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당시엔 분양만 하면 청약 인파가 몰려 미분양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없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사업자가 분양가를 자율로 정할 수 있는 유사주택이 분양이익을 높일 수 있고 아파트, 오피스텔, 생숙 등 복합주거시설로 짓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현재 생숙 주거의 불법성 여부를 놓고 제도 검토를 하고 있다. 이진철 국토교통부 건축정책과장은 지난 8월3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생활숙박시설 당면문제와 관련 제도 개선방안' 세미나에 참석해 "실거주자의 주거 안정성을 위해 어떻게 하면 큰 피해 없이 진행할지 많은 검토를 하고 있다"며 "생숙 용도변경이 1%로 조사됐는데 이들이 법을 준수한 것이라고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줘선 안된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용도변경이 불가한 사례가 있다고 들었는데 숙박용으로 사용하는 사례도 많다"면서 "따라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사진 제공=생활숙박시설 피해자 모임


소송 통해서만 구제될 수 있어


규제의 허점을 노렸지만 고분양가 피해를 계약자들이 고스란히 안게 될 수 있음은 이전부터 경고돼 왔다. 생숙은 2010년대 유행한 '분양형호텔' 사기 피해와도 유사한 형태를 띤다. 생숙과 같이 '수익형 부동산'인 분양형호텔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다가 회복한 2010년대 우후죽순 등장해 '수익률 ○○% 보장' 등의 광고 문구를 이용하고 투자자를 모집했다.

숙박업 신고 시 호텔 운영업체가 투자자에게 수익을 배분하는 구조로 돼 있는 점도 생숙과 같다. 분양형호텔은 개별 소유자 간의 이해관계 대립이 발생하고 투자 당시 약속된 배당금 지급이 이행되지 않기도 해 계약자가 시행사 대표를 사기죄로 고소한 사례가 잇따랐다.

제주에서 선보였던 A분양형호텔은 '확정 수익금'을 광고해 투자자를 모집한 것이 소비자 기망 행위라는 내용의 고소가 접수돼 검찰이 시행사 대표를 조사하기도 했다. TV홈쇼핑을 통해 분양한 해당 호텔은 ▲공실률 0% 가동률 100% ▲수익금 연 16%(대출이자 4% 포함) ▲5년간 수익금 확정보장 증서 제공 ▲5년 후 환매보장 증서 제공 등을 계약조건으로 제시했다. 230명의 계약자가 400억원 이상 피해를 주장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분양형호텔의 허위·과장광고에 대해 시정명령을 부과하거나 자율시정을 유도 했지만 일부 피해 사건의 경우 고발을 통해 수사가 이뤄졌다. 앞으로 생숙 투자자가 계약 취소를 위해 소송을 의뢰하는 사례도 늘어날 수 있다. 하재섭 법무법인 일신 강남분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생숙 공급자인 분양 사업자에 책임을 묻기 위해선 계약자가 생숙을 주거용으로 혼동하게 된 대한 귀책이 있어야 한다"면서 "실제 소송 사례에서 검토했던 대부분의 분양계약서에 주거용이란 표현이 없었고 오히려 '숙박용'이라는 점에 대해 계약자로부터 확인서명받은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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