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거래액 270조 '탈 많은' 전세…보증금 올라도 떨어져도 폭탄

김유신 기자(trust@mk.co.kr), 이희수 기자(lee.heesoo@mk.co.kr) 2023. 2. 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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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드러낸 전세제도
전셋값 오르면 집값 부추기고
내리면 보증금 반환 다툼 빈번
2020년 임대차법 시행 이후
서울 전세보증금 年10% 증가
집주인 보증금 예치제 도입을

◆ 전세사기 철퇴 ◆

직장인 고 모씨(35)는 전셋값 급등과 급락을 모두 경험하며 주거 불안에 시달리는 피해를 봤다. 2021년 초 고씨가 전셋집을 구할 때는 그해 6월 시행된 임대차 3법 부작용이 현실화되던 시기였다. 임대차법 시행에 따라 계약갱신청구권이 도입돼 시중에 전세 매물이 줄어들고 임대료 상한선이 5%에 묶이자, 집주인들은 전세 가격을 급격히 올리기 시작했다. 결국 고씨는 생각했던 금액보다 1억원 더 비싸게 전세금을 주고 임대차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전세 만기가 다가온 고씨에겐 또 다른 난관이 발생했다. 고금리 여파로 전세 시세가 2년 전 대비 1억원 가까이 하락해 고씨는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시세에 맞게 낮춰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갭투자를 통해 집을 구매해 보증금을 시세만큼 낮춰줄 여력이 없다"며 전세금을 일부만 돌려줄 수 있다고 통보했다. 고씨가 보증금을 낮춰주지 않으면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고 하자 집주인은 "다른 세입자를 구할 때까지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며 완강한 태도를 고수했다.

최근 2년여간 전셋값이 롤러코스터를 타며 우리나라 고유 주거 형태인 '전세'의 문제점이 표면화되고 있다. 전셋값이 급등하면 매매가격과 전셋값 차이가 줄어들며 갭투자가 늘어 집값이 급등하는 원인이 된다. 임차인은 매물이 부족해져 웃돈을 주고서라도 전세 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게 된다. 반면 전셋값이 급락하면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집주인이 늘어나고 임대인과 임차인 간 분쟁이 증가한다. 전세는 우리나라 국민 약 15%가 거주하는 주거 유형으로 그 비중이 작지 않고, 서민들의 주거 안정 수단인 반면 제도개선 관련 연구는 드물다. 전문가들은 고금리 여파로 전셋값이 하향 안정화되는 추세지만 금융 여건이 바뀌면 언제든 뛰어오를 수 있는 만큼 임대차 3법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관련 연구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2일 매일경제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신고된 전세 계약 102만8300건에 대한 총보증금은 269조1825억원으로 집계됐다. 임대차 3법 시행으로 2021년 6월부터 전국(경기도를 제외한 도내 군 제외) 임대차 계약 중 보증금이 6000만원을 초과하거나 월세 30만원을 초과하는 계약은 관할 관청에 신고가 의무화됐다. 그동안 사인 간 거래로 파악이 어려웠던 '숨은' 가계부채가 베일을 벗게 된 것이다. 주거 유형별로 살펴보면 전체 보증금 중 72.4%(194조8995억원)가 아파트 전세 보증금이었다.

서울 아파트의 전세 보증금과 계약 건수를 살펴보면 지난 2년여간 벌어진 전세난과 역전세난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다. 지난해 전세 계약 한 건당 평균 전셋값은 5억3673만원으로 최근 5년 중 처음으로 줄었다. 반면 임대차 3법 시행 이후인 2020년과 2021년에는 전셋값 급등이 문제가 됐다. 전세 계약 건당 평균 보증금은 2020년(4억8154만원)이 직전 해(4억3689만원)보다 10.2%, 2021년이 직전 해보다 13.2% 올랐다.

일각에서는 '빌라왕 사태' 등을 이유로 전세제도의 존속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전세는 갭투자 수단으로 활용돼 집값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고, 일부 전세사기 일당이 무자본 갭투자 수단으로 악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세가 저렴한 비용으로 주거 안정을 누릴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가 있는 만큼 앞으로도 제도가 존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보증금 중 대출 비중이 높으면 고금리가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보증금을 자기 자금으로 마련하면 월세보다 저렴한 주거 유형"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역전세난이 심화되며 보증금 미반환 문제가 커지고 있는 만큼 임차인 보증금을 보장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외국은 월세 2~3개월치를 보증금으로 임대인에게 지급하고, 이를 제3기관에 예치한다"며 "우리나라도 역전세 상황에 대비해 임대인이 전세보증금 일부를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적 기관에 예치하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규제의 부작용은 집값 안정기나 하락기에는 보이지 않지만 상승기엔 증폭될 수 있다"며 "임대차 3법 부작용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제도를 대폭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올해 시장 혼선을 최소화한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김유신 기자 /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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