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마아파트 수천만원 인테리어하고 들어간 집주인 '부글부글'
재건축 2년 실거주 철회 결정 이후..
"오락가락 대책에 집주인도 세입자도 피해자"
"전세매물 줄지는 않지만..전셋값 하락도 어려워" 전망
"국민들 O개 훈련시키나요", "정책이 애들 장난입니까?", "쫓겨난 세입자, 수천만원 인테리어하고 들어간 집주인도 있습니다. 피해자가 한두명이 아닌데, 소송 갔으면 좋겠네요", "사과 한마디 없이 뒤집으면 다 인가요?", "부랴부랴 조합 설립하고, 집값은 폭등했는데 정부의 의도가 대체 뭐였나요?"…(부동산 카페 커뮤니티)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권 취득을 위한 조합원의 2년 실거주 의무가 1년여 만에 '없던 일'이 되자 부동산 커뮤니티와 단체채팅 방에는 성토글이 넘쳐나고 있다. 전문가들 또한 정부의 설익은 정책에 국민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이번 백지화로 인해 시장에 나온 전세물량은 다소 늘겠지만, 이미 오를대로 오른 전셋값을 내리기에는 역부족으로 보고 있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법안심사 소위를 열어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중 재건축 조합원에게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규정을 삭제한 채 통과시켰다. '2년 실거주 의무'는 지난해 6·17 대책의 핵심으로 꼽히는 내용이다. 그동안 야당 의원들의 반대로 법 통과가 지연되고 시행이 미뤄졌고, 투기자금 유입이라는 본래 취지 보다 세입자 주거 불안 우려가 더 크다고 판단에 이번에 삭제됐다.
엄밀히 보면 시행되지 않은 법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없어야 하지만, 시행을 감안해 미리 움직인 조합원과 세입자 등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가장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들은 '낡은 주택이라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았던 세입자'다. 지난해 임대차법이 시행되고, 재건축 2년 실거주 의무가 예고되면서 집주인들이 직접 들어와 살게 되면서 쫓겨난 이들이다.
전세매물은 줄고 전셋값은 오르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버티거나 외곽으로 내몰린 무주택자들이다. 대표적인 재건축 아파트인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전용 84㎡의 전셋값이 2년 만에 4억원 이상 올랐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19년 7월만 하더라도 5억원 초반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달 나온 전세계약은 최고 10억원에 달했고, 호가는 11억원까지 올라 있다. 계약갱신이 된 가구를 제외하면 신규로 진입하기 쉽지 않은 금액대다.
대치동의 A공인중개사는 "워낙 이 지역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다보니 실거주를 감안하고 매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이번 조치로 전세매물이 크게 늘어나는 등 분위기가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2년간 매매·임대가 금지되고 실거주를 해야 한다. 대치동은 지난해 6월 지정되고 매매가가 잠시 주춤했을 뿐 꾸준히 집값이 상승했다. 지난달 전용 84㎡에 26억원 거래가 나오면서 신고가를 경신했는데, 작년 6월 최고가(22억1500만원)와 비교하면 4억원가량 오른 수준이다.
또다른 B공인중개사는 세입자들의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몇 년 전만해도 애들 교육 때문에 4억~5억원에 참고살았던 세입자들은 몽땅 나갔다고 보면 된다"며 "이사하고 아이들 전학시키면서 세입자들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나마 그 돈(5억원가량)들고 경기도 쪽에 일찌감치 집 산 사람들은 양호하다"며 "전세계약 갱신하면서 버티고 있는 분들은 이번에 집을 빼게되면 꼼짝없이 갈데가 없다보니 걱정이 많더라"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에 대해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시장에서 전세매물이 더이상은 줄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향후 전망에서는 강남과 나머지 지역이 엇갈렸다. 집주인들의 실거주 비율이 높은 강남 전세시장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는 게 대부분의 의견이지만, 노원구나 양천구의 재건축 아파트에서는 전세매물이 늘어날 수 있다고 봤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소장은 "시장 전체적인 차원에서는 정부의 이번 백지화 조치는 잘했다고 본다"면서도 "6·17대책 당시 전문가들이 모두 반대했던 대책을 밀어붙이다가 중간에 피해자들이 나오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본의 아니게 쫓겨난 세입자들에게 사과가 필요하다"며 "실거주 의무를 피하겠다고 무리하게 조합을 설립한 아파트들의 후폭풍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 교수는 "강남은 매매시장으로 전환됐고, 임대차시장은 월세로 변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강남에서 전세매물은 워낙 귀한데다 집주인들이 이사를 나가면서 전셋값을 확 올려서 받을 가능성도 있어 전셋값이 떨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목동이나 상계동 등에 대해서는 "재건축 단계가 멀었거나 다주택자들의 경우에는 전세매물을 내놓을 수 있다"면서도 "보유세 부담이 있다보니 가격조정이 바로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가 재건축 조합원 2년 실거주 의무방침을 밝힌 후 재건축 단지들의 조합설립이 빨라졌다. 때문에 1970~1980년대에 지은 압구정, 신반포 등 재건축 아파트값이 치솟기 시작했다. 실거주 의무를 감안해 집주인들이 직접 들어가 살면서 임대차 물건은 줄어들고 전셋값과 월세가 동시에 급등했다. 이러한 영향은 서울 외곽과 경기·인천까지 확대되면서 수도권 전반적인 집값 상승의 신호탄이 됐다.
작년 11월부터 올해 초까지 재건축 조합설립 인가를 받은 곳은 강남구 개포동 주공 5·6·7단지를 비롯해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차, 방배동 신동아, 송파구 송파동 한양2차, 용산구 서빙고동 신동아, 양천구 신정동 수정아파트 등이다. 압구정동에서도 지난 2월 4구역을 시작으로 5·2·3구역 등이 조합설립 인가를 받으면서 거래되는 집마다 최고치를 경신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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