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져가는 아파트 두고 그린벨트 개발한다니"
그린벨트 푸는 공급책 이해못해"
[디지털타임스 이상현 기자] "이런 다 쓰러져 가는 아파트를 놔두고 그린벨트를 풀면 거기를 또 개발해서 아파트 짓고 (사람들이)들어와 사는데 얼마나 더 걸리겠나."
19일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동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가 서울 외곽 지역의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주택공급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특히 강남 노후 아파트단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재개발·재건축은 묶어두고 그린벨트를 풀겠다는 정부의 판단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현지 주민들은 매일 아침·저녁마다 출퇴근 주차 전쟁을 반복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날 만난 은마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한 주민은 "아침마다 이중 주차된 차를 몸으로 미는데 더운 여름엔 출발하기도 전부터 땀부터 난다"며 "늦게 퇴근하고 자리가 없으면 상가동에 주차하기도 한다"라고 주차난을 호소했다.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듣던 또 다른 주민 역시 "주차공사 하고 나서도 자리가 비좁아서 차 밀다가 접촉사고도 많이 난다"라고 거들었다. 이어 "여기보다 심한 곳은 못 봤다"라고 덧붙였다.
노후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재건축 허가를 통한 공급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은마아파트 상가동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아무래도 들어와 살기에 불편한 부분이 많으니까 집주인들은 세를 놓고 다른 곳에서 사는 경우가 많다"라며 "주차, 엘리베이터, 쓰레기 악취 등등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그동안 서울시와의 인·허가 갈등과 조합원들의 내홍으로 재건축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는 단지다. 이 단지의 준공년도는 1978년으로, 올해 최대 규모의 일반분양 물량으로 공급될 예정인 강동구 둔촌주공(1980년 준공)보다 더 오래됐다.
하지만 지난 2017년부터 서울시의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재건축 정비계획) 벽을 넘지 못하면서 추진위원회에서 조합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올해는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와 비상대책위원회격인 은마반상회의 갈등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반상회는 추진위가 회계감사 위조 및 부정선거 등 불법 행위를 일삼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추진위는 반상회의 손을 들어준 강남구청을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준공된 지 40년이 넘다보니 단지에 실거주하는 주민들의 불만은 상당하다. 주차시설도 부족하고 아파트 지하에 모아놓은 쓰레기 역시 악취와 바퀴벌레를 유발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배관에서 나오는 녹물 문제도 은마아파트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요인 중 하나였다.
또 다른 주민은 "녹물 문제로 냉수 수도배관도 다 바꾸고 나중에는 주차장 확대, 외부 도색 등도 한다고 들었다"라며 "재건축 추진위와 소송 문제가 있어서 이마저도 시간이 걸리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는 "지하실에 모아놓은 쓰레기에서 나는 냄새도 주민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와중에 정부여당은 지난 15일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부동산 대책 당정협의를 개최,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하고 나섰다. 지난 14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 공급은 충분하다"고 언급한 지 불과 하루 만의 일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 일부에서도 재건축·재개발의 규제를 완화해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은 "그린벨트 수용비(토지보상금)로 안 그래도 유동성으로 넘치는 부동산 시장의 거품만 더 만들 것"이라며 "주택수요가 높은 곳에는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재건축재개발 규제로 꽁꽁 묶어놓고 수요억제 수단만 쓰는 정부가 결과가 나쁘니 갑자기 투기 탓을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도 지난 15일 공급확대를 위한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방안'을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등 관계당국에 건의했다.
단지 내 상가동의 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들은 재건축만 보고 매수를 한 사람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하루빨리 재건축이 추진되길 바랄 것"이라며 "정부가 규제를 내놓을 때마다 사업이 어려워지고 있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이번 생에 은마아파트는 재건축이 되기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라고 말했다.
글·사진=이상현기자 ishs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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