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된 줍줍] ①17억넘는 집에 26만명 모인 열풍.. "이젠 대학생도 뛰어든다"

연지연 기자 2020. 5. 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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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3등에 당첨될 확률보다 높은 ‘줍줍(미계약 청약분을 줍고 또 줍는다는 의미)’ 경쟁률이 나왔다. 서울 성동구의 주상복합 아크로 서울포레스트의 미계약분 세 가구를 모집하는 청약 얘기다. 무려 26만4625명이 몰렸다. 전용면적 97㎡ 1가구에 대한 청약 경쟁률은 21만5085대 1이었다. 이는 로또3등에 당첨되는 것 (3만5724대 1)보다 6배가량 어렵다. 전용 159㎡ 1가구 모집에는 3만4969명, 전용 198㎡ 1가구 모집에는 1만4581명이 몰렸다.

이는 아크로 서울포레스트는 처음 분양을 시도했던 3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2017년 7월 말 분양 당시 아크로 서울포레스트의 평균 청약 경쟁률은 2.2대 1에 그쳤다. 주상복합 아파트인데다 232가구로 구성된 작은 단지라는 이유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한 탓이다. 도대체 지난 3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대학생도, 신입 직원도, 부장님도, 현금부자도 일단 넣고 봤다

지난 20일 오전부터 카카오톡 방에는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 ‘줍줍’에 참여하자는 글이 돌아다녔다. 공짜로 해볼 수 있는 로또인데 안 넣으면 바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미계약분 신청을 받았는데, 오전 9시 40분에 전용면적 97㎡의 경쟁률은 2만198대 1을 기록했다. 오후 3시엔 15만2959대 1, 오후 4시엔 17만9675대 1, 오후 5시엔 21만5085대 1로 경쟁률이 높아졌다.

경쟁률이 이렇게까지 높아진 것은 이번 줍줍에서 당첨되면 덮어놓고 5억원의 시세 차익은 볼 수 있는 ‘로또’라는 소문이 퍼진 탓이다.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인천광역시에 거주할 경우 온 가족이 모두 청약 접수에 나서는 풍경도 벌어졌다.

경기도 산본에 사는 한 자산운용사 부장 김모(50)씨는 "군대 간 아들, 대학교 졸업반인 딸까지 네 식구 명의로 신청했다"면서 "우리 가족 중 누구 하나라도 당첨되면 대박이라고 생각한다. 자금이나 명의 문제 같은 복잡한 문제는 당첨되고 나서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이들과 대학생들이 주로 모여있는 대학교 커뮤니티에서도 아크로 서울포레스트 줍줍 열풍이 엿보였다.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에서는 "부모님이 안 넣는다고 하셔서 내가 대신 엄마, 아빠 이름으로 청약했다. 클릭만 몇 번 하면 돼서 로또 사는 기분으로 넣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는 "전세를 놓을 생각을 하면 4억원 정도만 있어도 된다더라. 회사 신입사원들도 다 넣었다"는 글과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가 서울 주거용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 같다. 다 서울에 살고 싶어하지 않냐"는 글이 올라왔다.

◇이들은 왜 줍줍을 택했나

이들이 줍줍을 택한 이유는 상대적 박탈감과 단기차익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서울 중위권 가격의 아파트 매매가는 2013년 11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2배 가량 올랐다. 워낙 단기간에 급등했기 때문에 전세살이를 했던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질 대로 커졌다. 이 때문에 줍줍 기회라도 잡아 늦게나마 자산을 증식하겠다는 수요가 그만큼 크다.

전용면적 97㎡짜리 가구에 청약을 완료한 삼성전자에 다니는 김모(35)씨는 "이번만큼은 나도 당첨되어서 차익을 보고 싶다. 당첨만 되면 내 전셋집 평수가 달라진다"고 했다. 김씨는 남들이 모두 아파트 매수에 뛰어들 때, 손 놓고 있다가 자산 차이가 커졌다는 것에 대한 박탈감이 크다.

그런 김씨에게 이 주상복합은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단기차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크로 서울포레스트의 입주자 분양공고는 2017년 7월 27일에 올라왔기 때문에 8월부터 나왔던 각종 규제에서 자유롭다. 현재 시점에서는 서울에서 등기가 떨어지면 바로 매도가 가능한 거의 유일한 주택이다.

특히 전용면적 97㎡에 청약자들이 단기차익을 많이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오는 9월 말까지 분양대금의 20%만 내면 1년 이후 몇억원의 단기 차익을 누릴 것으로 봤다. 97㎡의 경우 약 3억5000만원만 내면, 내년 5월 이맘때 등기권리증을 받고 바로 되팔아 시세 차익을 올릴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이다.

김씨는 당첨만 된다면 본인 신용대출 1억원, 교직에 있는 아내의 신용대출 1억원, 그리고 주식 매도금액과 예금으로 1억5000만원을 조달해 계약금과 중도금을 해결할 계획이다. 12월에 준공승인이 떨어지면 바로 전세를 줄 계획도 세웠다. 전세계약금으로 나머지 잔금을 충분히 치를 수 있다고 봤다. 김씨는 "내년 5월 등기권리증이 떨어지면 못해도 5억원의 시세차익은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높은 가점의 무주택 중년들에게 밀려 청약시장 근처에는 발도 못 딛던 이들의 관심도 몰렸다. 은행원 신모씨(39)는 "각종 규제 속에서 내 집을 마련할 마지막 동아줄"이라면서 "청약 신청을 하면 매번 떨어졌다. 가점이 30점 중반대라 서울에선 분양을 꿈도 꿀 수 없는데, 이번만큼은 당첨되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신씨도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대출을 금지하는 것이 골자인 12·16 대책 여파로 잔금대출이 불가능한 탓에 전세를 내줄 계획이다. 신씨는 "감당할 수 있을 때 입주해 살고 싶다"고 했다.

소위 ‘현금부자’로 불리는 여유자금을 갖춘 유주택자는 ‘현금을 가지고 있기는 무섭고, 집은 어떻게 해도 남는다’는 생각에 청약에 나섰다. 서울 신당동의 한모(46)씨는 "여유자금이 2억~3억원 정도 있는데 이걸 그냥 예금에 넣어놓자니 바보같은 짓인 것 같다"면서 "그런데 이 돈으로 마땅히 투자할 곳도 없다. 주식은 무섭고, 부동산은 그래도 집 한 채는 남지 않느냐"고 했다. 한씨는 2주택자가 되면 내야 하는 세금 부담이 커서 당첨이 되더라도 내년 6월 1일 이전엔 무조건 매도를 할 생각이다. 6월 1일 기점으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가 부과된다.

공격적으로 부동산 투자에 나서는 젊은 층에서는 "당첨만 되면 부동산에서 알아서 해주지 않겠냐"는 글도 있었다. 복등기를 염두에 둔 말이다. 복등기란 아파트 입주 전 매매 계약을 한 뒤 입주 직후 최초 분양계약자(매도자) 명의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했다가 곧바로 매수자 앞으로 등기를 바꾸는 것을 뜻한다. 성동구 뚝섬 근처의 한 공인중개사는 "당첨이 된다면 등기권리증이 떨어지기 전에도 복등기 거래를 해결해줄 수 있느냐는 전화가 왔었다"고 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전용면적 159㎡나 198㎡ 정도에 청약을 진행한 이들이 실제 입주 가능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분양가 전액을 부담할 수 있거나, 현재 약 10억원 정도를 예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진짜 ‘현금부자’다. 159㎡에 청약을 했다면 오는 9월 말까지 6억원, 198㎡의 경우 7억8000만원 가량을 마련해야 한다. 경쟁률로 미뤄봤을 때 이들은 약 5만명 정도다.

◇여전한 부동산 열기… 돈 갈 길 안 만들어주면 규제 백약 무효

부동산 전문가들은 아크로 서울포레스트의 미계약분 청약 경쟁률로 시중 부동자금이 얼마나 많은지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청약에 참여한 26만명이 대출이건 보유자금이건 간에 최소 3억원을 당장 가용할 수 있다면 서울포레스트에 몰린 부동자금만 78조원에 이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유동성이 그만큼 넘치고 있다는 뜻"이라면서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시장 유동성이 폭격기로 돈을 뿌린 것처럼 풍부하다. 이 돈들이 거대한 머니 벨트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시중 부동자금이 흐를 만한 매력적인 투자처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20번에 걸친 부동산 규제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현상은 계속될 것이란 분석도 있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자금이 1000조원대라는데, 이 돈들이 부동산으로 향하지 않게 하려면 다른 대안을 만들어 돈이 흐를 곳을 마련해줘야 한다"면서 "이런 대책이 없으면 어떤 규제를 해도 부동산으로 돈이 몰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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