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 최순실 국정농단에 술렁 "누가 대통령입니까"
[한겨레] 행정시스템 붕괴 우려 “공직사회 왜 필요하나” 당혹
“한 마디로 개판이다…이게 나라냐” 격한 반응도 나와
경제활성화·산업 구조조정 등 현안 산적…답답함 호소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가 정부 주요 부처 인사와 대통령 연설문, 정책까지 전방위적으로 개입한 것이 드러나면서 공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공무원들은 “누가 대통령인지 헷갈릴 정도다. 지금까지 겪어 본 적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제부처의 한 간부는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하는데, 내용보다도 최순실씨와 사전에 논의했겠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며 “공직사회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곳이다. 대통령을 믿을 수 없게 됐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복잡하고 참담하다”고 말했다. 사회부처의 한 간부도 “대통령의 말은 공무원에겐 ‘어명’이다. 대통령의 지시사항은 따로 관리할 정도로 영향력이 강하다”며 “최씨가 옷을 고르고 인사에 개입하고 ‘대통령 말씀’까지 좌지우지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대통령이 꼭두각시처럼 느껴졌다. 허탈하다”고 했다.
행정시스템이 붕괴한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사회부처 고위 간부는 “행정이라는 게 절차와 시스템이 있다. 저 위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참모가 왜 필요하고, 공직사회가 왜 필요한 것이냐”며 “역대 정권 레임덕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공무원들이 어이없음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고 했다. 경제부처 한 간부도 “공직사회란 것이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과 대통령이 임명한 행정수장들이 국정을 운영하고 책임지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대통령은 공직자들을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간부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발언한 것이 상당히 충격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다는 거 아니냐”고 했다.
격한 반응도 나왔다. 경제부처 고위 간부는 “한마디로 ‘개판’이다. 이게 나라인가 싶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려고 해도 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사회부처 간부도 “지금 상황을 보면 고려시대 공민왕과 신돈 같지 않나. 실소가 나온다”며 “도저히 상식으로는 납득이 안 된다. 국민이 결국엔 최순실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라고 했다.
정부 정책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핵심 정책은 최종적으로 청와대와 조율을 해야 하는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활성화, 산업 구조조정, 부동산 대책, 가계 부채, 예산 등 정부가 당장 풀어야 할 현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상황이다. 경제부처 고위 간부는 “흔들리지 말고 할 일을 하자는 마음을 먹어도 컨트롤타워가 없는데 일이 제대로 되겠나”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경제부처 간부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이 발표된다고 해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며 “정책이란 것이 힘이 실려도 효과를 내기 힘든데, 이런 상황에선 어렵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후속 처리에도 답답함을 호소했다. 사회부처 한 간부는 “자고 일어나면 최순실 문제가 양파껍질 까듯 계속 나오고 있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로는 부족하다”며 “먼저 청와대의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부처 간부도 “대통령이 그동안 가장 강조한 말이 공직기강 확립이다. 그런데 대통령 스스로 공직기강을 무너뜨렸다”며 “일차적으로는 최씨와 관련된 의혹을 말끔하게 털고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연 기자, 경제·사회부 종합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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