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전세 난민 '봄은 먼 곳에'

안장원 2014. 2. 13.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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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개월째 쉬지 않고 상승 행진물건은 줄고 찾는 사람 많고'병목현상'으로 5년 새 35%?세입자들 돈 더주고 재계약가계 소비 줄여 경제도 부담

서울 잠실동 트리지움 아파트에 사는 김모(42·여)씨는 다음 달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2012년 초 4억1000만원이던 전용 59㎡형 전세보증금이 5억5000만원으로 뛰어서다. 김씨는 "보증금이 너무 올라 주변에서 싼 전셋집을 찾으러 중개업소 수십 군데를 돌아다녔지만 마땅한 집이 없어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집을 매입하는 사람이 늘었는데도 전셋값 상승세가 거침없다. 전세 세입자를 매매 수요로 돌려 전셋값을 진정시키려던 정부의 지난해 8·28 대책으로 매매 거래가 늘었는데도 전셋값은 더 오르고 있다.

 12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이 4.2%, 서울·수도권은 5.6% 올랐다. 그 이전보다 상승세가 더 커졌다. 서울·수도권의 월평균 상승률이 지난해 1~8월 0.4%였는데 9월 이후는 1.1%였다. 전셋값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2009년 3월부터 60개월째 오름세를 타고 있다. 당시 1억3000만원이던 전세보증금이 1억7000만원 선으로 뛰었다. 2억원이던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3억원을 코앞에 두고 있다.

 올해 전세 재계약이 돌아오는 서울 아파트 세입자들은 재계약하려면 평균 3000만원 정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의 전세난은 과거 2000년대 초반 집값이 뛰며 전셋값을 끌어올리던 양상과 다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처럼 불확실한 집값 전망에 전세를 선호하면서 거래 증가와 함께 전셋값이 뛰는 것도 아니다.

 8·28 대책 이후 전세 거래는 되레 줄었다. 지난달 0.8% 오른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량은 6430건으로 0.3% 상승률을 보인 지난해 1월(8677건)보다 적다.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전국 아파트 전셋집이 13만여 가구 계약됐는데 2012년 같은 기간보다 20% 정도 적다. 이는 '전세 병목현상' 때문이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전세로 나오는 물건이 워낙 귀하다 보니 극심한 초과 수요로 전셋값 고삐가 풀렸다"고 말했다.

 전셋집 대부분은 기존 세입자가 재계약해 시장에 나오지 못한다. 중개업소들은 10가구 중 6~7가구는 재계약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서울 상계동 허브공인 조남례 사장은 "어디를 가든 전셋값이 만만치 않고 이사·중개수수료 등 비용이 들다 보니 웬만해선 전셋값을 올려주고라도 그냥 있으려 한다"고 말했다. 2012년 전세계약을 한 가구는 전국적으로 87만여 가구다. 이 중 50만여 가구가 전세시장에 나오지 못하고 잠긴 셈이다. 기존 전셋집은 월세로 바뀌면서 사라진다. 저금리에 따라 집주인들은 수익률이 연 8~9%여서 은행 금리보다 나은 월세를 선호해 전세를 월세로 돌리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 원일공인 정해주 사장은 "임대로 나온 10집 중 전세는 2~3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월세 물건이다"고 전했다.

 국토교통부의 전·월세 실거래 자료에 따르면 전·월세 거래건수 중 전세 비중이 2011년 66.5%에서 지난해 60.6%로 줄었다. 한 해 8만 가구가량의 전셋집이 없어졌다. 상대적으로 전세가 많은 아파트에서도 월세가 크게 늘어 서울 아파트 월세가 2011년 7가구 중 한 가구에서 지난달엔 3가구 중 하나꼴로 급증했다. 이러다 보니 전셋집이 가뭄에 콩 나듯 나온다. 3696가구에 이르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 트리지움 아파트의 전·월세 물건이 60여 가구인데 이 중 전세는 20여 가구에 불과하다. 여기다 정부의 엇박자 정책이 전세난을 부채질하고 있다. 전세자금 지원을 확대한 바람에 보증금을 댈 수 있는 돈이 풍부해진 것이다. 서울 강남지역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세입자는 전셋값을 올려줄 수 있어 정부가 전세난에 기름을 부은 꼴"이라고 지적했다.

 전세난과 월세 증가로 가계의 주름은 깊어졌다. 2009년 이후 가구당 소득은 연평균 4% 오른 데 비해 전셋값은 연평균 7% 상승했다. 그 사이 오른 전셋값(4000만원)이 소득 증가액(2500만원가량)보다 훨씬 많다. 서울연구원(옛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임대료 지출이 소득의 30%가 넘는 가구가 서울 26만7000가구(7.4%)를 비롯해 서울·수도권에서 46만3000가구(5.4%)로 추정했다. 주부 허모(45·서울 도곡동)씨는 "주인의 요구로 연초 보증금 인상분 1억8000만원 대신 월세 120만원을 내고 있다"며 "살림살이가 빠듯해졌다"고 하소연했다.

 전세난은 경제에도 부담이다. 한국은행은 2011년 전셋값이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1%포인트 더 높게 오르면 가계소비가 0.15%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했다. 세입자의 소비 감소가 임대료 수입이 늘어난 집주인의 소비 증가 효과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2009년 이후 소비자물가는 연평균 2.8%가량 오른 데 비해 전셋값은 1년에 7.2%씩 뛰었다. 주택산업연구원 권주안 금융경제실장은 "전셋값이 계속 올라 집값과 별 차이가 없어져 집을 사려는 세입자가 늘어나면 전셋값 상승세가 다소 둔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장원·최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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