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안정.. '두 토끼' 딜레마

이호준 기자 2011. 1. 17.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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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 확대하며 물가 잡아라?▶ DTI 완화하며 가계부채 줄여라?

'성장이냐, 위기관리냐' 집권 후반기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딜레마에 빠졌다. '성장'이라는 지상과제에 '안정'이라는 숙제까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과정에서 발생한 현실이다. 최근 물가전쟁을 비롯해 가계부채 안정화 방안, 전세대책 등 각종 위기관리 대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성장' 족쇄에 발이 묶인 경제정책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만 가중되는 양상이다.

◇ 총수요 진작 vs 물가 억제 = 국제 원유 및 원자재가 급등으로 연초부터 물가가 요동치자 정부는 물가안정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못박고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전격 인상했고, '공공요금 동결' '등록금 인상 최소화' 등 전방위 물가안정 대책도 쏟아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조직을 물가중심체제로 개편하고 '물가감시기구화'를 선언했다.

하지만 물가안정이 최우선 과제라는 설명과 달리 정부의 재정집행 방향은 정반대인 수요를 확대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기획재정부는 '내년 재정집행 방향'을 통해 "올 상반기 재정의 57.4%를 조기집행해 경기회복 추세를 지속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도 직접 "재정의 60%를 상반기에 집행해서 성장을 유지하라"고 독려했다.

인플레이션 압력 상승에 따라 재정 조기집행 방침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13일 정부가 내놓은 '물가안정 종합대책'에서 이 부분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성장'을 위한 수요진작 정책은 지속하겠다는 뜻으로 물가전쟁 구호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을 펴는 셈이다.

재정·환율 등 핵심적인 거시변수는 성장에 묶어둔 채 감시와 억제 등 관(官)의 힘을 빌려 물가잡기에 나서면서 정부 정책간 충돌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현정부가 친서민정책으로 대대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도 그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 가계부채 연착륙 vs DTI 완화 = 부동산경기 회복에 발목이 잡힌 금융정책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2일 가계부채 종합대책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오는 3월 말까지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연초부터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까닭은 지난해 부동산경기 활성화 차원에서 단행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완화 이후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급증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잔액은 590조2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6조5800억원 증가했다. 2006년 12월 7조원 이후 3년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증가로, DTI 규제완화가 직접적인 대출증가의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8·29부동산 대책 직후인 9월 3조3000억원에 그쳤던 가계대출 증가액은 10월 5조3000억원으로 뛰어오른 데 이어 11월 6조원 벽까지 돌파하면서 폭증하는 양상이다. 물가상승으로 금리인상 압력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가 급격히 오를 경우 가계 금융비용이 급증하면서 대규모 가계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금융당국은 오는 3월로 끝나는 DTI 규제 완화 추가 연장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1, 2월 이사철의 전반적인 부동산 시장을 봐가면서 3월에 결정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다. 금융당국은 대신 장기·고정금리 활성화, 분할상환대출 확대, 변동금리대출 금리변동성 완화 등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희석시키는 데만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 홍익대 전성인 교수는 "고성장과 안정이라는 양립불가능한 목표를 추진하다보니 경제학에 없는 비경제적 미봉책만 쏟아지고 있는 형국"이라면서 "예를 들어 인위적으로 가격을 누르면 자장면에 양파가 안나오고, 전주비빔밥에 육회가 안올라오는 것처럼 소비자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점을 정부만 모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 이호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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