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에 널린 나물로 해먹은 부침개

임경욱 2025. 4. 2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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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농촌에서 1년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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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욱 기자]

아침부터 추적이는 봄비가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창밖으로 비에 젖은 산야는 초록이 짙어가고, 꽃을 모두 떨군 나무에서는 잎들이 연둣빛으로 피어오르며 쉼 없이 봄을 바디질하고 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 마음을 더욱 평온하게 해 준다. 비 오는 날 아침의 시골 풍경이 고향처럼 아늑하다.

춘분에 심은 하지감자에 싹이 돋았다

봄비는 모든 생명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아침 일찍 빗소리에 깨어 빗속을 헤치고 지난 춘분에 종자를 묻었던 밭으로 나갔다. 싹이 올라오지 않아 이제나 저제나 하고 내심 걱정했었는데, 줄줄이 올라오는 어린싹들이 멀칭비닐 속에 갇혀 숨 막혀하고 있다. 비닐에 구멍을 뚫어주니 바짝 마른 흙 속의 감자싹들은 이제야 살겠다는 듯 빗물을 받아 마시며 기운을 돋운다.

비닐하우스 내 채소밭도 하루가 다르게 푸르름을 더해가고 있다. 세대별로 주인의 성향에 따라 특색 있게 가꿔진 색색의 텃밭은 모자이크처럼 예쁘다. 모종을 이식한 지 한 달 정도 됐는데, 주인을 잘 만나 잘 가꿔진 채소는 어느덧 잎을 따먹을 정도로 자랐다. 이곳은 우리 세대원들에게 보물창고가 되어 주고 있다.
 세대별로 다양하게 가꾸는 텃밭
ⓒ 임경욱
어디를 가나 지천으로 널려있는 나물류

직접 가꾼 텃밭뿐 아니라 이 시기에 농촌은 어딜 가나 먹을거리 천지다. 들녘에 나가면 달래, 쑥, 미나리, 머위 등이 지천이다. 쑥은 쓰임새가 많은 식물이다. 국으로 떡으로, 효소로, 탈취제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이 지역은 특히 쑥부쟁이 요리가 특화된 지역으로 야생 곳곳에서 쑥부쟁이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곳이 많다.

이런 나물류는 우리 세대가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일상적으로 먹으며 자랐던 것들이다. 며칠 전에 이웃집에서 쑥부쟁이 나물을 무쳐 보내왔는데, 나도 경험해 보지 못한 맛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나물인데도 그 오묘하고 향긋한 맛이 내 입맛을 단번에 매료시켰다.

나물이 주는 맛도 맛이지만, 영양성분이나 효능도 다양해 다이어트는 물론 성인병 예방에 아주 좋은 먹거리들이다. 시골에 살면 굳이 돈 들여 채소를 구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이즈음 산에서는 고사리, 드릅, 엄나무순, 다래순 등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나물에 대해 조그만 알고 부지런하면 쉽게 채취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 곳에서나 채취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으니, 반드시 산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아니면 아는 사람을 통해 채취할 수 있는 곳을 안내받아야 한다. 무턱대로 아무 곳이나 찾아다니면 빈손으로 돌아오기 십상이다.

며칠 전에는 산을 좋아하고 나물류를 잘 아는 이웃분이 두릅과 엄나무순을 잔뜩 따와 그걸로 부침개를 해서 막걸리를 한 잔씩 했다. 아낌없이 넣은 나물 덕에 봄향기에 흠뻑 젖고 생동하는 봄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나물 부침개에 더해 이웃들이 함께 모여 정담을 나누며, 농촌생활의 훈훈함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는 게 무엇보다 좋았다.
 녹차잎 수확 체험
ⓒ 임경욱
녹차잎 따기 체험

농사에 무지렁이인 우리에게까지 일손을 요구하는 걸 보면, 농산촌인 이곳은 이제부터 바쁜 시기에 접어든 모양이다. 고사리나 녹차잎 채취에 일손을 좀 보태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제는 세대원 열 명과 함께 채엽 작업에 다녀왔다.

모두들 녹차잎 채취가 시골살이를 하는 동안 즐거운 체험이 될 것이라는 기대로 기꺼이 참여해 주었다. 아침 일곱 시부터 시작되는 작업시간에 맞추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화엄사 입구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작업 채비를 갖추고 야생녹차가 자생하는 가파른 산으로 올라갔다.

이곳은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녹차의 시배지로 알려져 있다. 서기 544년에 연기스님이 인도에서 지리산으로 들어와 화엄사를 창건할 때 차 씨앗을 심었다는 것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화엄사 주변에는 차나무가 많아 그 대를 이어가고 있다.

다행히 작업할 곳은 그렇게 험한 산은 아니어서 편하게 힐링한다는 마음으로 대부분이 처음인 녹차잎을 따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처음엔 차밭을 조성할 목적으로 차나무를 재배했을 터인데, 오랫동안 방치해서 야생화된 차밭이다. 그래도 소나무와 대나무 사이에서 잘도 버텨내 싱싱한 모습으로 새잎을 피워내고 있었다.
 녹차 시배지 안내표지판
ⓒ 임경욱
아직은 잎이 어려 작업은 더디고 수확량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봄이 피어오르는 녹차 향기 그윽한 산속에서 어린 찻잎 하나하나를 따는 것이 힘든 작업이 아닌 값진 체험이었다. 힘들면 차나무 사이에 앉아 쉬기도 하고, 목이 마르면 참새 혀 같은 찻잎을 입에 넣고 씹으면 쌉싸름한 맛이 돌며 오랫동안 입안에 차향을 머금게 해 주었다.

작업은 12시까지 꼬박 다섯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우리 일행이 채취한 녹차잎은 한데 모아 제다원으로 옮겨서 덖고, 비비고, 말리는 제다(製茶) 과정을(製茶) 거쳐 우리가 알고 있는 녹차로 탄생할 것이다. 지리산 화엄사 야생차는 고차수(古茶樹)로 그 명성이 자자해 차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차라고 한다. 우리가 채취한 찻잎이 향기로운 차로 탄생해 그 차를 마시는 모든 이가 세상을 차향으로 채워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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