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칼럼]달러 결제 독점 시대가 저물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 활용해 불합리 개선 중
美, 동맹국 자극 대가로 특권 상실할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공지능(AI) 아바타가 나이키 운동화를 만드는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관심을 끌었다. 이는 미국이 관세 정책을 통해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제조업 부활을 시도하겠다는 것을 풍자한 듯하다. 하지만 이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은 일정 부분 진실을 담고 있다.
전 세계의 농부, 어부, 공장 노동자들은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고 발행하는 100달러짜리 지폐를 얻기 위해 땀 흘려 일한다. 1960년대 한 프랑스 정치인이 '터무니없이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이라 부른 이 같은 달러의 지위가 관세 전쟁으로 인해 한계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달러의 가치 또는 각국 중앙은행과 민간 투자자들이 '안전 자산'으로 여기는 달러의 역할이 장기적으로 어떻게 변할지와는 별개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수많은 거래에 달러가 얽혀 있는 '결제 독점' 구조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최근 다녀온 베트남 여행에서 그 사실을 실감했다.
15세기 중요한 무역항이었고 지금은 관광지로 탈바꿈한 베트남 호이안에서는 재단사와 구두장이들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택시비를 대신 내주고 손님을 소개해준 호텔에는 수수료까지 지급한다. 이들은 (현금 또는 계좌이체 등으로 결제해) 신용카드 수수료를 3% 아낄 수만 있으면 더 적극적으로 쇼핑객을 유인한다. 물건 가격을 1% 인상하는 대신 고액 구매 손님에게 저녁 식사 쿠폰을 서비스로 제공할 수도 있다.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 이익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달러로 결제하면 이 같은 판촉은 불가능하다. 좀 더 정확히 설명하면, 외국의 신용카드나 직불카드를 통해 결제가 이뤄질 경우 그에 비용이 따라붙는 복잡한 금융 구조 때문이다. 주요 18개국의 통화처럼 원활하게 결제가 이뤄지는 경우는 예외다. 하지만 베트남 동화를 포함한 대부분 아시아의 통화는 이 과정에서 큰 비용이 든다. 의류와 신발 산업처럼 마진이 적은 업계에서는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이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때로는 그 이상으로 과도하게 부과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보자. 호이안에서 재단사에게 결제를 요청하면 내가 거래하는 은행은 현지 통화인 베트남 동화를 조달해야 한다. 그런데 동화는 베트남 외에서는 유동성이 낮다. 내 돈은 아마 홍콩에서 달러로 환전된 뒤 다시 베트남에서 베트남 동화로 환전됐을 것이다. 현재 하루 7조5000억달러에 이르는 달러 거래 중 약 40%가 '중개 통화' 역할과 관련된다. 구매자나 판매자 모두 달러에 특별한 관심이 없을지라도 달러 없이는 거래가 불가능한 구조다.
트럼프 대통령도 달러의 특별한 지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는 전 세계 각국이 달러를 대체할 글로벌 기축통화를 만들려는 시도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만약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거래에서 달러가 아닌 다른 통화로 송장을 발행하겠다고 선언한다면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하지만 백악관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도 있다. 결제 시스템의 '엔진룸'에서 일어나는 눈에 띄지 않는 변화들이다.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세계 통화 시스템이 서방과 동방으로 갈라지고 있음을 느꼈는데, 이번 무역 전쟁이 이 분열을 가속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 그 구도가 '서방과 동방'보다는 '미국과 비(非)미국'에 더 가깝다.
나는 이미 홍콩 계좌를 통해 태국 상인에게 QR(Quick Response Code) 코드만 스캔해서 태국 바트화로 결제하고 있다. 이 같은 결제 연결 시스템은 민간 금융기관 간의 협력에 의해 구축되며, 이때 제3자가 외환 서비스를 제공한다. 유럽 일부 중앙은행은 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자동 환전 시스템을 실험 중이기도 하다. 이 시범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기존 중개업자는 더 이상 필요 없어진다. 디지털화된 법정 통화에 내재된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환전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아무 상관 없는 거래에서 굳이 달러가 끼어들 이유가 사라지는 셈이다. 이러한 예시는 서로 다른 통화 간 결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수많은 시도 중 하나일 뿐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결제를 원하는 여러 자금이 대기하고 있다. 전 세계 해외 근로자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8000억달러 규모의 자금은 물론 관광객의 소비 지출도 대표적인 예다. 마스터카드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아시아로 여행하는 관광객들의 체류 기간은 팬데믹 이전보다 평균 1.3일 더 늘어난 7.4일이다. 인기 휴양지에 있는 대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해변 마을의 작은 상점 입장에서는 비용이 추가되는 결제 시스템이 큰 골칫거리다. 지금까지는 대안이 없었고 각국 정부의 정책적 관심도 미국으로의 수출 확대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에 상인들이 참아왔을 뿐이다.
하지만 4월2일 발표된 '상호 관세'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내가 베트남을 떠날 무렵,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트남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중국은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통화를 상호 교환해 국경 간 거래를 정산할 수 있도록 하는 엠브릿지(mBridge) 프로젝트를 밀어붙이고 있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노동집약적 산업 부흥이라는 허황된 목표를 위해 동맹과 경쟁국 모두를 자극하려 한다면, 그 대가는 지정학적 재편과 미국의 특권 상실로 돌아올 것이다.
달러를 여전히 안전 자산이라 여기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미국이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할 때까지 달러를 보유할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셔츠나 신발을 사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힘들게 흥정해서 할인까지 받은 후에 발생하는 카드 결제 3%의 수수료가 말 그대로 허무한 손실일 뿐이다.
비자 카드와 그 협력 은행에 과도한 수수료를 내기보다는, 호이안의 인기 레스토랑에서 한 끼를 먹으며 재단사가 마지막 단추를 꿰매기를 기다리는 편이 내 돈을 훨씬 잘 쓰는 방법일 것이다.
앤디 무케르지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The Dollar's Monopoly in Payments Will Soon Be History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블룸버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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