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두고 안 떠난다”… ‘리투아니아 실종’ 미군 수색했던 일주일

이철민 기자 2025. 4. 2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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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 제로(0)에 콘크리트 반죽 같은 깊이 4.5m 넘는 늪
2000㎞ 떨어진 스페인 주둔 미 해군 다이빙 부대 투입
눈 감고 늪에 빠진 동일 장비 위 기어가며 ‘촉감’으로 연습
워싱턴포스트 “우리 애들을 남겨두고 안 떠난다는 신조가 극한의 수색 작업 이끌어”

지난 달 25일 이른 시간, 발트해 소국인 리투아니아의 동쪽 파브라데의 한 늪지대에서 작전 나간 미 육군 부사관과 병사 등 4명이 실종됐다.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는 어틀랜틱 리졸브(Atlantic Resolve) 작전에 참여한 리투아니아 주둔 미 육군 제3보병사단 소속이었다.

이들은 앞서 야간 작전에 투입된 곡사포 부대의 전술 차량이 늪에 빠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 전문 병력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돼 벨라루스와 가까운 파브라데의 숲에서 무전 연락이 끊겼다. 이들과 함께 무려 70t에 달하는 구조 차량 ‘허큘리스’ 역시 감쪽같이 사라졌다.

지난달 28일 실종된 4명의 미군 수색 현장에 투입된 미군의 구조 전문 장갑 차량인 M88 허큘리스. 실종된 미군이 애초 타고 간 구조차량과 동일하다./AP 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는 20일, 이들이 실종되고 난 뒤 미군 250명, 리투아니아군 160명과 폴란드 병력 50명,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의 수색견 팀 등 4개국 460여 명의 병력이 파브라데의 늪지대에서 이들 4명의 시신을 수습하기까지 1주일을 20일 자세히 소개했다.

3월 25일 밤, 중사와 하사, 일병 등으로 구성된 미 구조 전문 병력 4명은 M88A2 허큘리스(Hercules) 구조 차량을 타고 숲으로 향했다. 21~28세의 청년들로, 두 사람은 결혼했고 아이들도 있었다. 허큘리스는 에이브럼스 전차 섀시에 강력한 견인 시스템을 탑재한 장갑차로, 속도는 40~48㎞에 불과했다.

미국은 유럽 전역에 약 8만 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있으며,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침공한 이래 나토(NATO) 동맹국과의 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나토 국가 중에서도 러시아의 침략 가능성을 가장 경계하는 나라가 리투아니아다. 한반도 전체 면적의 3분의1(6만5300㎢)만한 영토에 인구는 264만 명밖에 안 되는 나라다. 동쪽으로는 러시아의 ‘형제국’ 같은 벨라루스와 접하고 있다.

미국은 리투아니아에 약 2,000명의 미군을 순환 배치하며, 올해 2월부터 이 임무는 미 육군 제3보병사단 제1기갑전투여단이 맡고 있었다. 올해 훈련 장소는 구릉과 습지, 울창한 숲으로 이뤄진 파브라데 인근이었다.

25일 밤 애초 전술 차량 구조에 나선 4명의 미군은 에이브럼스 전차를 정비하고 차량의 야간 구조 훈련도 받은 전문가들이었다. 이날 출동은 실전(實戰) 감각을 닦을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이들은 곧 연락이 두절됐고, 미군은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 국경 근처를 넓게 퍼져서 이들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다음날 연한 땅바닥 위에 깊게 팬 트레드 자국을 발견했다. 그 자국은 지름 9m가량의 작은 습지로 이어졌지만, 그 너머엔 이어지지 않았다. 진흙투성이의 전형적인 이탄(泥炭)습지였다. 그 위엔 실종된 병사의 것으로 보이는 작은 군용 가방과 무기 윤활유 병이 떠 있었다.

그러나 수색팀은 처음엔 이렇게 작은 습지가 과연 그렇게 거대한 장갑차량을 삼킬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결국 누군가는 진흙 속으로 잠수해서 확인해야 했다.

이후 4개국에서 온 수십 명의 잠수 전문 요원들이 마치 깊이 4.5m 이상의 콘크리트 반죽 속에서 팔다리를 휘젓는 것과 같이 체력이 급속히 소모되고,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극한적인 환경 속에서 온갖 시도와 기지(奇智)를 동원해 수색 작업을 진행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작업을 이끈 것은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미군의 기본 신조였다고 보도했다. 현장에서 미 해군 잠수팀을 이끌었던 카를로스 에르난데스 원사는 이 신문에 “우리는 우리 애들을 두고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대성당(바실리카)에서 열린 실종 미군 4명에 대한 추모 미사에서 독일과 미국에서 온 미군들이 기도하고 있다./AP 연합뉴스

리투아니아 해군 다이버 6명이 먼저 투입됐다. 외견상 평범한 이 습지는 식물이 부패하며 형성된, 깊고 점성(粘性)이 매우 높은 혼합물이었다. 시야 확보는커녕, 움직이는 것조차 콘크리트 반죽 안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힘들었다. 호흡도 어려웠다.

이곳에 빠진 것으로 추정된 구조차량 허큘리스는 모두 1563 L의 연료를 적재할 수 있는데, 이 연료가 새어나면서 다이버들의 장비를 오염시켰다.

리투아니아 해군 다이버들은 수심 약 4.5미터 지점에서 금속 물체를 처음 접촉했다. 그러나 이게 오래 전에 빠진 군용 차량이나 농부의 트랙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다이버들은 군 차량 정비소에서 같은 모델을 사전에 연구한 덕분에, 자신들의 접촉한 것이 허큘리스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나 허큘리스는 두꺼운 진흙 속에 묻혀 있었고, 그 아래로는 고압 가스관이 지나갔다. 허큘리스가 더 가라앉으면 가스관이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가스관은 비웠지만, 미국 수색팀은 시간이 지날수록 시신 수습 가능성이 낮아질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진흙 제거를 위해 자갈 237t을 늪에 부었다. 또 진흙과 모래, 물과 섞인 기타 고형물을 뽑아내는 슬러리(slurry) 펌프를 24시간 가동하면서, 방수 울타리막을 설치했다. 그러나 265만 L의 물을 뽑아냈지만, 주변에서 계속 물이 유입돼 실패로 끝났다.

겉에서 볼 때는 일반적인 습지 같았지만, 유해 요소가 가득한 늪이었고 잠수해도 시계는 제로였다./미 육군

시간이 지나면서, 수색 작전 규모는 급속히 확대됐다. 미군 250명, 리투아니아 군·민간인 160명, 폴란드 병력 50명,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의 탐지견 팀이 참여했다.

수색 현장에서 2,000km 떨어진 스페인 로타에 있던 미 해군 다이버 부대는 유럽 대륙을 가로질러 긴급 파견됐다.

이들의 목표는 늪에 빠진 허큘리스 구조 차량에서 견인할 포인트를 찾아내 케이블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손끝 감각만으로 차량의 견인 포인트를 찾아내 연결해야 했다. 미 해군 다이버들은 눈을 감은 채로 예비 차량 위를 기어다니며 차량의 형태를 익혔다.

하지만 늪 속의 실제 작업에선 다이버들은 소방호스로 계속 강한 수압의 물을 뿌려 몸을 감싼 진흙을 밀어내며 전진해야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진흙 속을 헤치며 이동하는 것은 고통 그 자체로, 다이버들은 근육 피로에 시달렸고 첫번째 견인 포인트에 케이블을 연결하는 데만 2시간 이상 걸렸다”고 전했다. 그리고 90분 뒤에 두번째 견인 포인트도 찾아 연결했다.

이윽고 2대의 M88 허큘리스 구조 차량과 2대의 불도저가 진흙 속에서 허큘리스를 끌어올렸다. 내부에선 3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그러나 마지막 한 명은 없었다.

다음날 지면 투과 레이더를 장착한 드론을 투입해 헬멧 하나를 탐지했지만 여전히 시신의 위치는 확인할 수 없었다.

에스토니아 국경수비 경찰의 탐지견 저먼 셰퍼드가 도착했다. 이 탐지견은 생존자든 사망자든 발견하면 짖도록 훈련됐다. 그러나 바람이 냄새를 흩뜨렸고, 물속에 퍼진 연료 냄새가 개의 후각을 방해했다. 탐지견 팀장은 개의 꼬리 흔들기, 초조한 움직임, 물 표면을 핥으려는 행동과 같이 미세한 몸짓을 계속 관찰했고, 마침내 이러한 징후들이 한 군데에서 몰렸을 때 특정 지점을 가리켰다. 드디어 이 곳에서 진흙을 퍼내던 중에, 군화 한 켤레를 발견했다. 마지막 한 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4월1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미 대사관 인근에서 시민들이 많은 꽃과 촛불로 숨진 미군 4명을 애도하고 있다./AP 연합뉴스

4월 3일, 수천 명의 리투아니아 시민이 수도 빌뉴스에서 미군 4명의 유해가 본국으로 송환되는 행렬을 지켜보았다. 기타나스 리투아니아 대통령도 참석했다. 그는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아픈 과거를 언급하며 “우리는 시련의 역사 속에서 상실과 죽음, 명예로운 임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며 이들의 사망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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