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뻔한 ‘전공의 성장일기’ … 현실 떠올리면 아직은 ‘씁쓸’
MZ 마인드 전공의 캐릭터 등
예측 가능한 전개·작위적 사연
감동 코드 섞인 이상적 스토리
현실 전공의들 모습과 상충돼
크리에이터 참여한 신원호 PD
“의사아닌 초년생 서사 봐달라”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슬전생)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시즌2까지 제작된 tvN 인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의 스핀오프작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지난해 ‘전공의 사태’가 터지며 편성이 1년가량 미뤄졌다. 기대와 우려 속에서 출발한 첫 주 시청률은 4%를 기록하고 2주차에는 5%대로 상승했지만 ‘슬의생’이 10~14%를 구가한 것을 고려하면 아쉽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좌충우돌하는 전공의들의 모습은 흥미롭지만, 이상적으로 그려지는 작품 속 병원 풍속도는 다소 진부하고 현실과는 괴리가 느껴진다.
◇‘슈퍼 닥터’는 가라… 실수투성이 전공의
일련의 의학 드라마 속 주인공은 슈퍼맨이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생명을 구하는 과정을 보며 시청자들도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지만 ‘슬전생’에는 직업으로서 의사를 택한 초보들이 즐비하다. 마이너스 통장 5000만 원을 갚으려 포기했던 레지던트 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오이영(고윤정), 환자의 상황을 공감하지 못하고 원리원칙만 앞세우는 ‘T’ 성향의 김사비(한예지), 과유불급 열정이 문제인 엄재일(강유석), 의사도 좋지만 화려한 사생활도 소중해 어깨를 훤히 드러낸 옷을 입고 출근하는 표남경(신시아) 등이다.
선배 의사의 닦달과 요구 많은 환자에 지쳐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전공의의 마음은 극 중 흘러나오는 삽입곡인 선우정아의 ‘도망가자’와 장미여관의 ‘퇴근하겠습니다’로 대변된다.
성장 서사에 초점을 맞춘다면 ‘슬전생’은 ‘미생’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유사한 맥락의 콘텐츠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꾀부릴 줄 모르고 일에 몰두하는 순수한 전공의들의 모습은 현실 속 자기 권리 보호를 위해 극렬 투쟁에 나섰던 전공의들의 모습과 상충돼 공감 수치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신원호 PD는 의사라는 직업군보다는 사회 초년생들의 서사에 주목해달라며 “바쁜 경쟁 사회에서 신입의 이야기는 답답할 수 있지만, 요즘 성장 서사 자체가 귀하다”면서 “갓난아기가 언젠가 목을 가누고, 걷고, 말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을 목격하며 감격을 받듯, 이 드라마의 설득력은 거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신원호 PD는 거들 뿐… 2% 부족한 이야기
‘슬전생’과 ‘슬의생’의 제작진은 다르다. 스핀오프물이지만 앞서 ‘슬의생’ ‘응답하라’ 시리즈 등으로 각광받은 신 PD와 이우정 작가는 크리에이터로만 힘을 보탠다. 김송희 작가가 쓰고, 이민수 PD가 연출한 ‘슬전생’은 작품 속 전공의처럼 아직은 미흡함을 보인다.
MZ세대의 마인드를 가진 초보 전공의들의 캐릭터는 도식적이며, 그들이 각성하게 되는 계기 역시 갑작스럽고 예상 가능한 범위다. 이미 전공의 생활을 한 번 포기할 정도로 의사의 삶에 환멸을 느끼던 오이영이 불합리한 상황 때문에 병원 문을 박차고 나가려다 “코드 블루”(응급 상황) 신호에 뒤돌아가 생명을 구한 후 서릿발 같은 교수의 칭찬을 받는 장면은 작위적이다. 열정이 넘쳐 실수를 저지른 엄재일이 병원 주위를 배회하다가 선배의 연락을 받고 기쁜 얼굴로 돌아가거나, 미워하던 환자가 죽은 것으로 착각했다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관계를 개선하는 표남경의 이야기도 기시감이 강하고 설득력이 떨어진다.
‘슬전생’이 ‘슬의생’과의 관계성으로 화제를 모으는 것도 ‘양날의 칼’이다. 이미 안은진, 정경호 등이 특별출연해 힘을 보탰고, 조정석·전미도 등으로 구성된 ‘슬의생’ 속 밴드가 새로 녹음한 OST가 20일 발표됐다. 두 작품의 세계관이 만나는 것은 반갑지만, 전공의들이 이 드라마의 제목처럼 ‘언젠가 슬기롭기’ 위해서는 ‘슬전생’만의 자립이 필요하다.
여전한 의료 공백 현실 속에서 전공의들의 이야기가 너무 이상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이 PD는 “한 직업군의 이야기라기보다, 동기 4명의 케미스트리와 우정이 중심”이라며 “향후 전개에서 성장기가 펼쳐지며 거기서 나오는 유쾌함과 흐뭇함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슬전생’은 성장물보다는 의학물로 분류되고, 의술이 아닌 인술을 펼치는 의사들의 이야기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는 여전히 높다. 전공의를 전면으로 내세운 ‘슬전생’이 현실 속 의료 대란에 실망한 대중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단순한 성장 서사를 넘어 조물주를 능가하는 치유 능력을 가진 슈퍼 닥터들이 즐비한 기존 의학물과는 차별화된 내러티브가 필요해 보인다.
다만 시청률이 서서히 상승하는 것은 어디선가 묵묵히 제 몫을 다하며 올바른 의료인으로 성장해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에 시청자들이 조금씩 마음의 빗장을 열고 있다는 방증이다.
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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