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난민·퀴어 청소년까지 어린이책이 품은 ‘오늘의 세계’ [.txt]
디지털 성폭력 만연에 ‘디지털 시민성’ 특집 다뤄
다움북클럽, 성평등 어린이·청소년책 108권 엄선
‘오늘의 어린이책’ 4호가 이달 초 출간되었다. 2024년 출간된 도서를 중심으로 주체성, 몸의 이해, 일의 세계, 가족, 사회적 소수자, 표현, 젠더 다양성, 사회적 인정, 안전, 연대라는 10가지 주제 아래 108권의 ‘성평등 어린이·청소년책’을 발굴, 선별해 의미를 살폈다. ‘다움북클럽’은 평론가, 편집자, 출판 기획자, 교사, 작가 등 어린이책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한 모임이다. 2019년부터 올해까지 다움북클럽이 엄선한 책을 더하면 모두 547종이다.
‘오늘의 어린이책’은 이달 ‘제주북페어’(5~6일)에 참여하여 독자들을 직접 만났다. ‘제주북페어’는 제주도 탐라도서관에서 주관하는 행사로, 참가자들에게 공평하게 120㎝짜리 작은 테이블 하나가 무료로 주어진다. 상업적인 대규모 부스는 전혀 들어올 수 없는 비자본주의적 축제다. 올해로 3회 연속 참가한 ‘오늘의 어린이책’은 따끈한 4호 신간을 만나러 왔다는 독자들의 응원과 격려에 또 한번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직접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자리였기에 독자들은 반가움을 보였다. 다움북클럽 기획위원이자 제주도민인 신수진은 “도서 선정 기준에 대한 호기심, ‘오늘의 어린이책’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등 생생한 독자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추천 도서 설명에 쫑긋 귀를 기울이거나 학교에서 봤던 책이라며 반가움을 표시하는 적극적인 어린이 독자들이 많다는 점도 제주북페어에서 누리는 즐거움이다.
이번 4호의 특집 주제는 ‘디지털 시민성’이다. 딥페이크(음성·이미지 합성 기술), 불법 촬영 및 유포 같은 기술매개 성폭력 등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어린이·청소년 대상 범죄가 만연한데다 점점 진화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8~9월, 학교 현장을 중심으로 ‘딥페이크 성폭력 사태’가 폭로되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라는 공간,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관계에서 일어난 집단 성범죄가 전국 각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는 사실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성평등·성폭력 교육의 부재가 어떤 현실과 문제를 낳고 있는지를 확인시켰다.
이러한 시의성에 절감하며, 디지털 시민이자 디지털 세계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오늘날의 어린이·청소년들이 어떻게 안전하게 온라인 세상에서 소통하며 지낼지, 건강한 디지털 시민 의식이란 무엇일지 함께 고민하고자 했다. 관련한 주제에 관해 연구자와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디지털 문화의 역할과 담론을 폭넓게 다루고자 했다. 디지털 리터러시 관점에서 어린이책을 소개하는 비평과 더불어 성평등 교육권 침해에 맞서 싸워온 시민 활동가와 성교육 현장에서 느낀 활동가의 경험담, 성평등 융합 수업과 퀴어 그림책을 함께 읽은 수업 사례, 디지털 범죄에 맞서는 모습을 담은 만평 등 지금, 현재의 이야기를 보여 주고자 했다.
지난해 3월 발간된 3호에서 ‘혐오 반대’를 ‘젠더 다양성’으로 개정했듯, 이번 4호에서도 범주 단어의 개정이 이루어졌다. ‘사회적 약자’를 ‘사회적 소수자’로 바꿈으로써 약자라는 단어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소수자성을 좀 더 구체적이고 폭넓게 인식하고자 하였다. 추천된 도서 역시 장애인, 이주민뿐 아니라 사회 구조 안에서 돌봄과 지원을 받지 못하는 현실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포함했다. 이처럼 다움북클럽은 시대에 필요한 가치를 인지하며 이와 관련한 담론을 책을 통해 보여 주고자 도서 목록 선정에 힘쓰고 있다.
‘주체성’에서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자기를 발견하고 성장해 가는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아일랜드’는 로봇 ‘유니온’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사유하는 인간의 존재를 성찰하게 하는 에스에프(SF)동화다. ‘어린이가 말한다: 요즘 어린이로 산다는 것’에서는 어린이 혐오 표현, 노키즈존, 성별 고정관념 등 온갖 편견에 대항하는 어린이의 실제적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회적 소수자’에서는 보조적인 인물로만 등장시키지 않고 편견 없이 인물의 성장을 보여 주는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휠체어 공주는 없어요?’는 공주 이야기에 휠체어를 탄 공주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어린이가 자신과 같은 모습의 공주를 상상하고 만들어 내는 이야기다. ‘햇살 나라’는 빈곤 계층 어린이, 학대당하는 어린이, 난민 어린이 등 가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어린이를 보여 주며 용기와 희망을 품은 어린이 문학의 의미를 비춘다.
‘젠더 다양성’에서는 다양한 성정체성을 가진 인물들을 그대로 존중하며 깊이 있게 보여 주고, 성소수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자 한다. ‘폴리’는 성별 이분법에 들지 않는 ‘인터섹스’를 다루며, 불확실하고 자유로운 상태로 존재하는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주체성에 관한 이야기다. ‘플랜B의 은유’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당당히 긍정하며 연대와 우정으로 차별을 넘어서는 퀴어 청소년들의 삶을 풀어냈다.
‘연대’ 범주의 책들은 사회적 소수자가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편견에 함께 저항하는 공존의 가치를 전달한다. ‘오늘의 할 일’은 인간이 만든 환경 문제를 비인간의 시선으로 돌아보는 그림책이다. 기후위기 속에서도 서로를 돌보고 연대하는 어린이의 힘을 강조했다. 다양한 이주 배경을 지닌 어린이들의 일상을 생생히 담아낸 ‘산내리 국제 학교’는 모두 다 똑같은 친구로 존재하는 어린이들이 등장한다. 서로 어울려 놀고, 부딪히고, 성장하는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순간은 유쾌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책을 준비하는 동안 세상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비현실적인 상황 앞에서 당연하고 평범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거리와 광장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말하는 이들 덕분에 우리는 지지와 연대의 힘을 더 굳건히 믿게 되었다. ‘오늘의 어린이책’ 또한 연대의 힘을 가진 또 다른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고, 다양성을 바탕으로 타인을 이해하며, 공존의 가치를 꿈꾸는 것. 어린이와 청소년이 이해와 공감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그리며, 그 곁에 함께 서고 싶은 마음이다. 다움북클럽도 계속해서 다음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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