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산재’로 세상 떠난 아빠…‘책임자 처벌’ 위해 1년을 쉴새없이 뛰었다

김가윤 기자 2025. 4. 1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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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사건
산재 사고로 사망한 고 문유식씨 딸 문혜연씨가 지난 1월4일 ‘윤석열 퇴진’ 광화문 광장 무대에 올라 손팻말을 들고 발언하는 모습. 문혜연씨 제공

“안전모도 없이 일하다 돌아가신 고 문유식 님을 기억해주세요.”

지난 1월4일 ‘윤석열 퇴진’을 외치는 수만명의 시민들이 모여있던 광화문 광장 무대에 까만 털모자를 쓰고 문혜연(34)씨가 올랐다. 그의 손에는 고 문유식씨의 얼굴과 이러한 문구가 적힌 연노란색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코끝은 빨갛고, 눈가엔 눈물이 어린 채로 자신의 아버지를 기억해 달라는 문씨의 목소리는 또렷하고 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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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작업 현장에서의 죽음은 어떤 이들이 돌아보게 될까. 이들은 대부분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았고 시민단체 활동 경험도 없어 하루에도 여러 건 발생하는 산재 사고 중 하나로 묻히기 십상이다. 문유식씨는 지난해 1월22일 서울 마포구의 한 공사 현장에서 미장 작업을 하다가 이동식 비계 위에서 떨어졌다. 그는 일용직 미장공으로 가입할 노조가 없었고, 도급사였던 인우종합건설은 노동자 11명뿐인 작은 업체였다. “어쩌면 한 사람의, 한 가족의 사정일 수도 있는” 고 문유식씨의 산재 사망사고를 많은 시민에게 알린 건 딸 문씨였다. 홀로 탄원서를 쓰고, 연대와 동참을 호소하며, 끝내 시민 수천명의 응원을 받기까지, 길고 고단했던 문씨의 고군분투를 지난 11일 직접 만나 들어봤다.

지난 1월23일 서울서부지법 1심 재판부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받는 현장소장과 인우종합건설에 대한 선고를 하던 날 고 문유식씨의 1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문혜연씨 제공

“돌아가신 아빠는 아무 말이 없잖아요. 누군가 ‘대변인’이 돼야 했어요.” 아버지 문유식씨는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실려 가 치료를 받다가 지난해 1월29일 사망했다. 당시 문유식씨는 안전모를 쓰지 않은 상태였다. 고인의 과실로 인한 사고인지, 회사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벌어진 사고인지 알고 싶었지만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어느 높이에서 추락했는지, 안전모는 지급됐는지조차 초반엔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건설사는 “한파로 인한 (넘어짐) 사고로 추정된다”고 문씨에게 설명했다. 마치 문유식씨의 과실이라는 듯한 태도였다. 문유식씨는 30년 경력의 ‘베테랑’ 미장공이었다. 현장 동료로부터 “회사가 ‘안전모를 지급했다’는 식으로 거짓 서명을 하라고 요구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문씨는 “자칫 억울한 죽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산재 사고에도 ‘금수저’와 ‘흙수저’가 있다고 해요.” 딸 문씨의 비유에 의하면, 아버지의 사고는 ‘흙수저’였다. 궁금한 건 많았지만 알아내기 쉽지 않았다. 사회 경험이 적었던 문씨는 어떤 것부터 파고들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문유식씨는 산재 사고에 초반부터 힘을 모아주는 노조 소속도 아니었고, 시민단체의 관심이 쏠리는 큰 건설사나 공사현장 노동자도 아니었다. 문씨는 “(아빠 사건이) 너무나 개인의, 작은 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저희 아버지처럼 건설현장에서 더는 사람들이 죽고, 가족을 잃지 않도록 저희 아버지의 안타까운 죽음을 널리 알려주세요.” 도움을 요청할 곳도, 어딘가 나서주는 곳도 없었던 문씨는 주변 지인들에게 돌릴 생애 첫 ‘탄원서’를 썼다.

“저희 아버지도 건설 현장에서 돌아가셨어요. 탄원서 읽고 연락드립니다.” 지난해 4월 문씨는 근무 중 전화를 받고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안녕하세요”를 외쳤다. 문씨가 낙담하던 시점, 지난 5년 동안 홀로 싸워왔던 산재 사망사고 유가족 정석채씨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정씨 역시 소규모 작업현장에서 아버지를 잃었다. 그는 문씨에게 “공론화가 돼야 (사건에도) 힘이 실린다”며 ‘발언할, 연대할 기회가 있다면 무조건 가서 사고를 알려라’, ‘누군가 질문을 던졌을 때 개요를 정확히 말할 정도로 사건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조언부터 산업재해 조사표를 얻는 방법, 의원실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쓰는 법 등 자신의 ‘노하우’를 전했다. 덕분에 지난 1년간 문씨는 바쁘게 아버지 사고를 알렸다. 문씨가 광화문 광장의 시민발언대를 놓치지 않고 찾아가 발언하고, 전단을 나누며 서명을 요청했던 이유다.

고 문유식씨 딸 문혜연씨가 시민들에게 나눠준 전단.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과 함께 산재·재난·참사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합니다. 안전하게 살고, 일할 수 있는 나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갑시다.” 시민들은 문씨가 아버지 사건을 알리는 취지에 공감하고 탄원 서명으로 마음을 모아줬다. 지난 1월23일 서울서부지법 1심 재판부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받는 현장소장과 인우종합건설에 대한 선고를 하던 날엔 ‘인우종합건설 산재 사망 고 문유식 노동자 대책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10여명이 모여 문씨의 곁에 섰다. 이들은 사고 1주기를 맞아 흰 국화를 들고 묵념하는 등 추모의 시간도 가졌다. 개인 문유식씨의 사고는 어느새 “안전한 일터”를 위한 모두의 일이 됐다. “아빠의 죽음이 비참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여러 사람의 추모하는 마음이 모였잖아요. 아빠가 정말 기뻐하고 위로가 되셨을 것 같아서 정말 감사하고 따뜻했어요.” 1심 재판부는 현장소장에게 징역 1년을, 인우종합건설엔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아빠 같은 사람 만나서 진짜 영광이야.” 사고가 있기 한 달 전 문씨는 문득 아버지와 저녁을 먹다 이런 말을 건넸다고 한다. “내가 너한테 해 준 게 뭐 있냐”며 머쓱한 답을 하던 문유식씨는 이내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맙다”며 쑥스러운 마음을 딸에게 전했다. 문씨가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 것은 그만의 애도의 방법이었다. 서부지법 정문 앞 1인 시위까지 나섰던 문씨는 조용히 손팻말을 들고 있는 동안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많이 헤아렸다고 한다. “탄원서도 준비해보고, 사람들에게 연락도 해보고, 울어도 보고, 빌어도 보고. 1인 시위를 하면서는 아빠를 정말 오래, 가만히 생각하기도 했어요.”

책임자 처벌을 위한 2심 재판의 선고기일은 다음달 15일 서부지법에서 열린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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