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바람소리엔 뼈 맞추는 소리가 난다”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2025. 4. 17.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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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동백 졌다 하지 마라

김영란 지음, 한그루 펴냄

“제주섬 바람소리엔 뼈 맞추는 소리가 난다.”

김영란 시인은 제주 토박이다. 토박이는 본토박이의 줄임말로 한 지역에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을 의미한다. 제주의 4·3 속에서 살아온 시인은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섬, 죽은 자 대신 살아남은 자가 ‘증인’이 된 슬픈 섬의 이야기를 4·3 첫 시조집으로 풀어냈다. 4·3의 생생한 증언에서부터 수형인, 행방불명인, 유족과 도민들의 신산한 삶, 그리고 제주와 한국을 넘어 세계 속에서 4·3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인의 집요하고도 깊은 시심을 총 5부, 시 59편에 담았다. 4·3 77주년에 맞춰 나온 4·3 영혼의 갈피들이 한 장씩 포개져 있는 시조집이다.

 

매미 돌아오다

사쿠라다 도모야 지음, 구수영 옮김, 내친구의서재 펴냄

“복잡하고 불가사의한 세상 속에서 나만이 건져 올릴 수 있는 마음이 있다.”

일반적으로 미스터리라면 명석한 탐정이 ‘후더닛(Who done it: 누가 범인인가)’과 ‘하우더닛(How done it: 어떤 방법으로 범죄를 저질렀는가)’을 밝혀내는 형식을 띤다. 그러나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수상 작가인 사쿠라다 도모야의 이 연작 단편집의 성격은 좀 많이 다르다. ‘왓더닛(What done it: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을 관심사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순간 속에서 미스터리를 발견해내고 규명한다. 곤충학자인 탐정은 단편집의 첫 작품 ‘매미 돌아오다’에서 16년 전 지진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 나타난 소녀 유령을 실마리로 슬픈 진상을 해명하고, 관광지에서 발견된 외국인 청년 의문사 사건에서 인간의 악의를 포착해낸다. 각 단편들은 독립된 이야기인 동시에 맞물려 있는데, 일본 미스터리의 새로운 경향을 맛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권한다.

 

나는 스물여섯, 덕진양행 노조위원장입니다

김윤기기념사업회 기획, 이계형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저도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살아볼까 생각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1989년 4월3일, 자기 몸에 불을 붙인 한 청년이 있다. 성남의 소규모 봉제공장 덕진양행의 제1대 노조위원장 김윤기다. 서울 변두리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던 그는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존재였다. 그런 그가 학생운동과 인천 5·3민주항쟁 활동에 이어 노동 현장으로 투신한 이유는 ‘누구보다 양심적’이었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외면할 수 없었던 수많은 김윤기들이 ‘학출(학생 출신 노동자)’이 되었다. 보장된 대졸자의 길을 포기하고 가족의 희생과 기대를 배신하면서까지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노동 해방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젊은 생을 태워 다른 세상을 부르짖은 김윤기의 목소리를 통해 그것을 전한다.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강창래 지음, 글항아리 펴냄

“오늘을 만든 어제는 언제쯤일까?”

‘세계를 균열하는 스물여섯 권의 책’이라는 부제를 통해, 책에 실린 서평이 그저 ‘감상평’에만 머무르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픽션과 논픽션, 고전과 현대소설을 고루 재료 삼은 저자의 글에는, 우리가 발 딛고 선 사회를 구성하는 사상·계급·구조 등을 배제하지 않아야만 글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는 전제가 단단히 서 있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는 ‘여성주의적 독해’다. 한강의 2007년 작품 〈채식주의자〉를 “가부장제 시스템의 일상적인 폭력에 대한 무의식적인 저항”으로, 이사벨 아옌데의 1982년 작품 〈영혼의 집〉을 “4대에 걸친 여성들의 대를 잇는 폭력과 복수의 마침표”로 읽는 식이다. ‘몇백 년 전 고전은 어째서 오늘날에도 유효한가’에 대한, 새삼 정직하고 명쾌한 답변이다.

 

소련 붕괴의 순간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나는 소련 붕괴가 불가피했다는 지배적인 서사, 즉 서방과 소련 내 반공주의 집단 내부에서 생겨난 서사의 구속에서 벗어나려 했다.”

냉전 시기 미국과 양강을 이루었던 소련의 급작스러운 붕괴는 20세기를 뒤흔든 ‘지각변동’이었다.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런던 정경대학에서 국제사를 가르치는 저자는 30년간 조사한 사료를 바탕으로 소련의 당시 현실을 생생히 그려낸다. 미국·러시아 등 여러 나라 기록보관소의 자료를 모으고, 소련 고위 정치인, 외교관, KGB·군 관계자 등을 인터뷰했다. 저자는 소련의 마지막 공산당 서기장이자 초대 대통령인 고르바초프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소련 붕괴의 순간을 재구성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현대화하고 민주화하려 했지만, 그가 추진한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는 소련 경제를 무너뜨렸고 민족 간 분리주의를 강화했다.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

조지 G. 슈피로 지음, 이혜경 옮김, 현암사 펴냄

“난해한 주장들을 무시하는 대신에 그 외관의 이면을 응시해보라.”

이스라엘 출신 수학자가 각종 역설에 대해 쓴 책이다. 풍부한 일화를 곁들여 재미있게 풀어냈다. 저명한 철학자들이 제시한 질문들이 눈길을 끈다.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세비야 남성 전부를 면도해야 하는 세비야 이발사는, 자기 자신을 면도해야 하는가?” “‘비가 오고 있다. 하지만 나는 비가 온다고 믿지 않는다’라는 문장은 논리적인가?” 생각할수록 미궁에 빠지고 결론 내리기 어려운 수수께끼를 나름의 방식으로 풀이한다. 역설은 재미만 있는 게 아니다. 저자는 이 난해한 질문들이 “세상이 항상 흑과 백으로 나뉘지는 않으며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라고 썼다. 뇌를 즐겁게 자극하는 듯한 책이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수식에 지레 겁먹지 않는다면.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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