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낱 ‘기삿거리’로 소비되지 않기를 [취재 뒷담화]

변진경 편집국장 2025. 9. 23.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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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말 '참사 현장 대응 인력의 트라우마 문제'를 취재하기로 한 권은혜·문준영 기자가 편집국 '사진(취재) 신청 방'에 인터뷰 일정 여러 건을 줄줄이 올렸다.

한편으로는 '이태원 참사뿐 아니라 다른 참사에 출동했던 현장 인력들 모두 고인처럼 힘들어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삶을 포기하겠다는 충동은 쉽게 제어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이러다 나한테도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까. 이제는 말해야겠다'라는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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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은 〈시사IN〉 기사의 뒷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담당 기자에게 직접 듣는 취재 후기입니다.

8월 말 ‘참사 현장 대응 인력의 트라우마 문제’를 취재하기로 한 권은혜·문준영 기자가 편집국 ‘사진(취재) 신청 방’에 인터뷰 일정 여러 건을 줄줄이 올렸다. 대개 익명 인터뷰로 진행될 것이라 예상되던 취재였다. 기사엔 소방관, 경찰, 의사 등 얼굴 사진과 실명이 여럿 담겼다. 무엇이 이들에게 ‘나서서’ 발언하고자 한 동기였을까? 제938호 커버스토리 “시민 구하러 간 뒤, ‘슈퍼맨’들의 이야기”를 쓴 권은혜·문준영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이 실종 열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보도의 계기?

SNS에서 실종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부터 관심을 두고 주시하고 있었는데, 결국 사망 소식이 들려 안타까웠다. 한편으로는 ‘이태원 참사뿐 아니라 다른 참사에 출동했던 현장 인력들 모두 고인처럼 힘들어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쉽지 않은 이야기인데, 취재원들은 왜 나서줬을까?

똑같은 질문을 여쭤봤다. 사진 촬영이 가능한지도 여러 차례 확인했다.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우리도 놀랐다. 우선 이번 동료의 사망(이태원 참사 출동 소방관 실종 후 사망사건)이 생각보다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삶을 포기하겠다는 충동은 쉽게 제어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이러다 나한테도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까. 이제는 말해야겠다’라는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 같았다. 물론 그걸 감안해도 쉽지 않은 일인데, 용감한 분들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취재원이 있다고?

한 취재원은, 자신이 힘들다는 걸 이전까지 아무한테도 이야기를 안 했다고 했다. 트라우마를 혼자 품고 있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하셨다. 인터뷰를 마치고 건널목 앞에서 인사를 드리는데, 그분이 “남에게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마음이 조금 후련해졌다. 그동안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라고 하셨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니 감사한 마음이다.

기사를 쓸 때, 이분들이 겪은 참사 현장의 모습을 어느 정도 수위로 묘사할지 적정선을 찾기 어려웠을 텐데.

솔직히 말해 자극적으로 쓰고 싶었다면 수위를 얼마든지 높일 수 있었다. 그래야 이들의 고통이 더 공감받고, 주목도가 높아져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취재 후 다 같이 회의를 해서 그러지 말기로 했다. 트라우마로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강조하자고 기사 방향을 정리했다. 누군가 용기 내어 털어놓은 고통이 한낱 ‘기삿거리’로 소비되지 않길 바랐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위로받을 수 있고, 실질적 대책이 무엇인지 좀 더 생각하게 하는 기사였으면 했다.

후속으로 이어가고 싶은 취재가 있다면?

이 문제에 대한 일종의 대책으로, 이르면 내년 1월부터 재난·안전 분야 공무원 수당이 늘어나고 승진에 필요한 근무기간이 단축된다고 하더라. 그 기사를 보자마자 ‘이게 맞나’ 갸우뚱했다. 수당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물론 계시겠지만, 취재해보니 각종 수당 때문에 억지로 그 자리를 지키는 트라우마 경험자들이 분명 있었다.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환경과 시간을 마련하는 게 더 시급해 보인다. 만약 후속 취재를 한다면 지겹겠지만 이번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싶다. 취재하며 만난 당사자들의 뜻은 ‘수당 올려달라’가 아니었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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