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공간은 김건희씨 놀이터? [특검IN]

문상현 기자 2025. 9. 23. 07:3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종묘 차담회 의혹, 해군 선상 파티 등 김건희씨의 국가 시스템 사적 유용 의혹이 특검 수사 대상에 올랐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김씨 측의 핵심 방어 논리를 깨기 위한 전략적 측면도 있다.
8월2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에서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건희씨의 종묘 사적 사용과 관련한 질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유산이자 세계문화유산인 종묘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후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왕조의 정통성과 역사를 상징한다. 궁궐 좌측에 종묘가 지어지고 우측에 토지신과 곡식신의 제단인 사직단이 세워진다. TV 사극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종묘사직이 위태롭다’ ‘종묘사직을 보존하옵소서’라는 대사는 국가의 존망이 위태롭다는 뜻이다. 국가의 기반이며 정신적 구심점이 종묘사직이었다. 조선시대는 물론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도 종묘사직이 신성하게 보존됐다. 이곳이 모욕되고 훼손된 때는 일제강점기가 유일했다.

2024년 9월3일은 매주 화요일로 지정된 종묘의 공식 휴관일이었다.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은 그날, 김건희씨가 종묘 망묘루에서 지인들과 비공개 차담회를 열었다. 종묘 안에서도 공개 제한 지역인 망묘루는 왕의 휴식 공간이다. 공간의 이름은 왕이 제향할 때 이곳에 들러 정전을 바라보며 선대왕을 추모하고, 국가와 백성을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조선은 망묘루도 신성하게 여겨 왕의 제향 때만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망묘루 차담회는 조선시대 왕만 주관할 수 있는 행사였다는 뜻이다.

경복궁 찻상, 창덕궁 의자까지 빌려와

차담회는 2024년 8월30일 대통령실 문화체육비서관실에서 종묘를 관리하는 국가유산청 산하 궁능유적본부로 걸려온 전화로부터 준비됐다. 김건희씨의 종묘 사용 협조 요청 전화였다. 종묘는 궁능유적본부장 허가가 있어야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관람규정 제34조에는 ‘국가원수 방문 등 부대행사’의 경우 장소 사용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궁능유적본부는 대통령실 요청을 국가원수 윤석열의 행사로 받아들이고 앞서의 규정에 따라 사용을 허가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종묘 배치도, 내부 사진, 이동 동선 자료 등을 정리해서 대통령실에 전달하는 등 김씨 방문 준비에 협조했다.

종묘 내부에서 진행 중이던 보수 공사는 중단됐다. 종묘 직원들은 영녕전 청소, 망묘루 거미줄 제거, 형광등 교체 등 행사 준비를 위한 대청소에 동원됐다. 차담회 당일에는 각종 편의와 특혜가 제공됐다. 김건희씨 일행이 탑승한 자동차는 소방차 등 비상 차량만 이용할 수 있는 소방 문을 통해 경내로 진입했다. 차담회가 열린 망묘루에는 개인 냉장고가 반입되어 설치되었다. 경복궁에선 찻상을, 창덕궁에서는 의자를 빌려와 배치하는 등 다른 궁궐의 비품까지 동원했다.

현장과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대통령실은 궁능유적본부와 차담회 장소 협조 협의를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행사인지, 누가 참석하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다. 차담회가 진행된 30분가량은 종묘 내부에 설치된 CCTV 카메라 여덟 대의 녹화가 일시 중단됐다. 당시 종묘 관리소 관계자들도 접근이 금지돼 현장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2024년 5월16일 특별 개방 행사가 열린 종묘 망묘루에서 시민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건희 특검이 이 차담회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김건희씨가 종묘 공간을 사적 용도로 사용했고, 이를 위해 국가기관(궁능유적본부)을 속였다는 의혹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은 차담회가 국가 공식 행사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당시 궁능유적본부가 허가 사유로 삼은 ‘국가원수(대통령) 방문’은 없었다. 참석자들은 김씨가 과거 코바나컨텐츠를 운영하던 시절 인연을 맺은 해외 미술작가의 아들과 딸, 그리고 종교인 두 명뿐이었다. 대통령실에선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유경옥·정지원·조연경 전 대통령실 행정관만 배석했다.

궁능유적본부가 2024년 12월 이 차담회와 관련해 받은 외부 법률 자문에도 특검이 의심하는 정황이 담겨 있다. 본부는 “국가원수가 참석하지 않은 김 여사 주관 행사로 예외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허가 관련 규정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된다면 허가한 공무원이 처벌 대상이 되느냐”라고 질의했다. 당초 대통령실로부터 유선 협조 연락을 받을 때는 당시 국가원수 윤석열이 관여하거나 그에 준하는 주요 행사로 예상했으나, 윤석열과 무관한 김건희씨 개인 행사에 불과했음을 뒤늦게 알았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특검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적용을 검토 중이다. 김건희씨 또는 당시 대통령실이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를 상대로 행사의 성격을 의도적으로 속여 정상적인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취지다. 국가원수의 공식 행사처럼 요청해서 궁능유적본부가 착오에 빠지도록 하고, 그 결과 규정에 어긋나는 장소 사용 허가라는 잘못된 처분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직권남용 혐의 적용 여부도 함께 검토 중이다. 김건희씨는 공무원이 아니라서 직권남용죄의 주체가 될 수 없지만, 공무원인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공범으로 삼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 공무원이 자신의 직권을 남용해 궁능유적본부 측에 의무 없는 일(부당한 장소 제공 및 지원)을 하도록 지시했고, 이 과정에 김씨가 지시했거나 공모했다는 취지다. 향후 수사의 관건은 김씨 의사를 궁능유적본부 측에 전달하고 실행에 옮긴 대통령실 직원과 김씨 간 연결고리를 입증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

특검은 종묘 차담회 의혹과 더불어 해군 ‘선상 파티’ 의혹도 살피고 있다. 선상 파티 의혹은 2023년 8월 초, 윤석열 부부가 여름휴가 때 경남 거제시에 위치한 대통령 별장 ‘청해대(靑海臺)’에 머물던 당시 김건희씨가 해군 함정을 동원해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폭죽놀이를 하는 등 파티를 벌였다는 게 골자다. 정치권을 통해 처음 제기된 이 의혹은 해군의 공식 기록인 ‘항만 일지’와 대통령경호처 징계 기록 등으로 실체의 일부가 확인됐다.

해군 항만 일지에 따르면, 김건희씨의 선상 모임을 위해 해군 함정이 최소 7척 동원된 것으로 확인됐다. 해군 지휘정인 ‘귀빈정’은 김건희씨가 탑승한 함정이자 파티가 열린 주무대다. 귀빈정 주변에는 지원 함대가 함께 움직였다. 민간인 지인들을 태우기 위해 운항된 것으로 추정되는 항만 수송정 2척이 있었다. 이 중 1척은 탑승 인원 기록이 누락되어 의혹을 증폭시킨다. 외부 경비를 위한 고속정 2척, 경호 및 비서 인력을 위한 군수 지원정 1척, 군 인력 수송을 위한 수송정 1척 등도 동원됐다. 대통령경호처는 내부 감사를 통해 선상 파티를 기획하고 실행한 인물로 김성훈 전 차장을 지목했다. 그가 해군 선상 파티 준비, 작살 낚시 시연 등에서 직권을 남용해 직원들에게 부당한 행위를 지시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파면 처분을 내렸다. 특검은 최근 해군 항만 일지와 경호처 징계 기록을 확보해서 검토 중이다.

7월3일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이 내란특검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고등검찰청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특검은 그 외에도 김건희씨의 삼청동 대통령 안가 사용 의혹, 트위터(현 엑스·X) 실버 마크 청탁 의혹, 측근 자녀 학교폭력 사건 무마 의혹 등도 함께 검토 중이다. 삼청동 안가 사용 의혹은 서희건설 이봉관 회장의 자수서를 통해 드러났다. 이 회장은 김건희씨에게 고가의 명품 목걸이와 귀걸이 등을 건네고 사위 박성근 전 검사의 취업을 청탁한 인물이다. 그는 자수서를 통해 김건희씨가 자신을 안가로 두 차례 정도 불렀으며 함께 성경 공부 등을 했다고 밝혔다. 삼청동 안가는 윤석열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비상계엄 관련 모의를 했던 곳이다.

군함에서 파티 열고, 대통령 안가 사용하고

‘트위터 실버 마크’ 의혹은 공적 지위가 없는 영부인에게도 국가기관 인증 마크(실버 마크)를 줄 수 있도록 대통령실이 트위터 측을 압박했다는 내용이다. 대통령실은 2023년 김건희씨 계정에 실버 마크가 제공되어야 한다며 문화체육관광부와 외교부 등을 통해 민원 형식으로 트위터를 압박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특검은 대통령실의 ‘민원’이 이뤄진 이후 영부인도 국가기관 인증 마크를 받을 수 있도록 트위터 규정이 바뀐 사유를 살펴보는 중이다. ‘측근 자녀 학폭 사건 무마’는, 김건희씨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김승희 전 대통령실 의전비서관 자녀가 가해자인 이 사건을 김건희씨가 외압을 행사해 무마했다는 의혹이다.

김건희씨 구속 직후 특검이 이러한 의혹들을 검토하는 근거는 특검법 제2조 12호에 있다. 특검 수사 대상으로서 ‘윤석열 재임 중 김건희씨의 지위 및 대통령실의 자원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했다는 의혹 사건’이라고 적혀 있다. 이 조항은 김건희 특검 수사의 본질이기도 하다. 특검 관계자도 김건희씨 구속 이후 브리핑에서 특검의 목적과 본질을 설명하며 “선출되지도 않고 법에 의해 권한이 부여되지도 않은 사인(김건희씨)이 대통령실 자원을 이용해 대한민국 법치 시스템을 파괴한 의혹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적 이용 의혹 수사는 재판을 앞둔 김건희씨의 핵심 방어 논리를 깨기 위한 특검의 전략적 측면도 있다. 8월6일 김건희씨는 특검 소환조사에 출석하면서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표현한 뒤 이 주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자신은 공적 역할과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불거진 국민의힘 공천과 인사 개입 등과 관계가 없으며 법적 책임도 없다는 취지다. 그러나 특검은 사적 이용 의혹을 통해 김건희씨 측의 ‘방패’를 수사 동력으로 삼는다. 공적 지위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행위가 더욱 중대한 문제라는 취지다. 특검은 최근 종묘 차담회 의혹과 관련,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들을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이후 차담회와 선상 파티에 모두 참석한 것으로 알려진 유경옥 전 행정관을 소환해 수사를 본격화했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