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맥길로이의 '커리어 그랜드슬램' 대관식이 된 마스터스
[골프한국] 14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GC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 명인(名人) 열전 제89회 마스터스 토너먼트는 로리 매킬로이(36·북아일랜드)를 위한, 매킬로이에 의한, 매킬로이의 커리어 그랜드 슬램 대관식(戴冠式)이었다.
커리어 그랜드 슬램은 4대 메이저를 모두 우승하는 위업으로 지금까지 단 5명만 달성했다. 한 해에 4대 메이저를 모두 우승하면 그랜드 슬램이라 하고 생애에 걸쳐 달성하면 커리어 그랜드 슬램이라 일컫는다.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선수는 오거스타 내셔널GC를 만들고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창설한 '영원한 아마추어' 구성(球聖) 바비 존스(1902~1971, Robert Tyre Jones)가 유일하다.
1930년 영국 리버풀의 로열 리버풀GC에서 열린 대회에서 바비 존스는 디 오픈의 세 번째 클라레 저그(우승컵)를 들어 올렸다. 같은 해 이미 브리티시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그는 디 오픈 제패에 이어 US오픈과 US 아마추어 챔피언십까지 차지, 당시 기준 4개의 메이저를 모두 석권하는 전무후무한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현대 골프 기준으로 4대 메이저는 마스터스 토너먼트, US오픈, PGA챔피언십, 디 오픈 등 4개 대회를 일컫는다. 이 기준으로 한 해에 4대 메이저 타이틀을 모두 차지한 사례는 아직 없고 생애에 걸쳐 차지하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은 진 사라젠, 벤 호건, 게리 플레이어,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 등 5명만이 성취했다.
로리 매킬로이가 화려하게 여섯 번째 커리어 그랜드 슬래머의 대관식을 올렸다. 17번째 도전에서 이룬 첫 마스터스 우승으로 메이저 대회 10년 무승의 갈증도 씻었다. AT&T 페블비치 프로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 이은 시즌 3승, 통산 29승(메이저 5승)째다.
매킬로이는 2007년 PGA투어에 뛰어들어 타이거 우즈와 쌍벽을 이루는 유럽의 대표주자로 활약해 왔으나 지난 10년간 유독 메이저와 인연이 없었다. 2011년 US오픈, 2012·2014년 PGA챔피언십, 2014년 디 오픈 우승 이후 10년간 메이저 우승 갈증이 심했던 그는 11년 만의 마스터스 첫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한 마스터스 우승 과정은 드라마보다 극적이었다. 마치 자신의 대관식이 평범해서야 되겠냐는 듯 우승을 결정짓는 순간까지 가능한 모든 극적 요소들이 동원되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왕관에 박힌 보석은 더욱 빛났다.
골프의 본향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스와 함께 지구촌 단 두 곳의 골프 성지(聖地)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코스, 그것도 골프의 성인 바비 존스의 혼이 담긴 코스에서 열리는 마스터스에 출전하는 선수는 모두가 우승 후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를 비롯해 언제라도 우승 가능한 톱 랭커들이 즐비하고 브라이스 디섐보, 더스틴 존슨, 버바 왓슨, 존 람, 패트릭 리드 등 LIV골프에서 뛰는 강자 등 한 시대의 거포 괴물 달인 신동들이 총출동해 매킬로이의 대관식 무대로 부족함이 없었다. 코스를 둘러싼 열광적인 갤러리들의 함성과 박수갈채는 로마의 콜로세움을 방불케 했다. 유일한 아쉬움이 있다면 동시대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함께 라운드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스코티 셰플러와 브라이슨 디섐보, 바이킹 전사 루드비그 오베리 등은 매킬로이의 대관식을 장식하는 배역을 훌륭히 소화해 냈다. 그들은 주인공 매킬로이를 절망에 빠뜨리기도 하며 대관식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했다.
특히 마지막 라운드 후반에 무서운 저력을 발휘하며 연장전까지 갔던 저스틴 로즈(44·영국)의 역할은 마스터스의 주인공을 바꾸기 직전까지 몰아쳐 대회의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매킬로이와 로즈의 대결은 간절함의 싸움이었다. PGA투어 통산 11승으로 2015, 2017년 마스터스에서 준우승에 머문 로즈에겐 18년 만에 그린 자켓을 입을 절호의 기회였다. 나이도 40대 중반으로 접어들어 젊은 선수들과 대결을 벌이는 것도 힘겨운 시기로 접어들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US오픈에서 매킬로이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긴 브라이슨 디섐보와의 리턴매치도 볼 만했지만 대단원에서 매킬로이의 상대역은 연장전까지 간 저스틴 로즈였다. 4타 차 선두로 후반을 맞은 매킬로이가 더블보기를 기록하며 흔들리는 사이 로즈는 6언더파를 치며 역전, 재역전, 타이를 거듭했다. 두 선수는 합계 11언더파 277타로 연장전에 나섰다.
18번 홀(파4)에서 벌어진 연장에서 매킬로이는 세컨 샷을 핀 1m 옆에 붙였다. 로즈의 버디 퍼트가 실패한 뒤 매킬로이는 버디를 챙겨 승부를 결정지었다.
연장전에서 버디 퍼트를 성공한 뒤 그린 위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이는 그의 모습은 이번 마스터스 우승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보여주었다.
패트릭 리드가 3위(9언더파 279타), 지난해 우승자 스코티 셰플러가 4위(8언더파 280타)에 올랐고 임성재가 이날 3타를 줄이고 디섐보와 함께 공동 5위(7언더파 281타)를 차지했다. 임성재는 2020년 공동 2위, 2022년 공동 8위에 이어 3번째 마스터스 톱10을 기록하며 내년 마스터스 출전을 확정했다.
한국선수의 마스터스 대관식은 언제일까.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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