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스타 Live] 오거스타에 없는 것 3가지와 명물 3가지

손기성 2025. 4. 12.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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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골프장 중 가장 비밀스러운 오거스타 내셔널 G.C
이 곳에만 만나볼 수 있는 명물 3가지와
여기선 찾아볼 수 없는 3가지는?
89회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리고 있는 오거스타 내셔널 파5 2번홀 그린 전경. 수 백 명의 패트론들이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다.


■ 오거스타 내셔널에서는 이것을 찾지 마라!

① 이동식 간이 화장실

명인열전으로 불리는 메이저 중의 메이저 89회 마스터스 대회 1라운드가 열린 오거스타 내셔널이 한 아마추어 선수의 노상방뇨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바로 스페인 출신의 아마추어 선수인 호세 루이스 바예스테르가 파5 13번 홀 옆을 흐르고 있는 래의 개울(Rae's creek) 그린 근처에서 몰래 쉬를 하다가 갤러리들에게 딱 걸린 것이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이 신성한 골프장에서 바예스테르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지난해 US아마추어 우승자 자격으로 마스터스에 참가한 스페인의 바예스테르가 아이언 샷을 날리고 있다.


바예스테르는 “너무 너무 오줌이 마려웠다. 14번홀 티잉 구역 왼쪽에 화장실이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다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마침 "같은 조에서 플레이를 펼치던 저스틴 토머스가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아서 그리로 갔다”고 급박했던 사정을 설명했다.

바예스테르 말대로 오거스타 내셔널에는 간이 화장실이 없다. 갤러리, 즉 패트론들을 위한 식음료 시설과 화장실은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모두 정식 건물 형태이지 국내 대회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간이 화장실은 없다. 전통과 역사를 중요시하고 자연과의 교감을 제1가치로 여기는 오거스타로서는 간이 화장실은 불필요한 존재일 뿐이다.

아무렴 어떠리, 화장실이 급해도 초록색 플라스틱 컵 모양에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던 패트론들은 매킬로이와 셰플러 등 세계 정상급 골프 선수들의 환상적인 플레이가 나올 때마다 환호를 내질렀다.

② 일상 생활의 필수품 휴대전화

마스터스 대회장인 오거스타 내셔널에는 매일 수만 명의 관중들이 몰려들지만 그 누구도 휴대전화를 꺼내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입장하기 전에 휴대전화를 모두 반납해야 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휴대전화를 보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싶지만 이곳 오거스타 내셔널에서는 가능하다. 선수가 티샷을 날리는 결정적인 순간 벨소리가 울려 관중을 향해 손가락 욕(?)을 날리는 불상사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오거스타가 1934년부터 이 정책을 고집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골프 그 자체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손바닥 위의 휴대폰에 사로잡혀 유튜브를 보거나 문자를 보낼 일도 없으니, 이곳을 찾은 관객들은 공의 비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시하거나, 선수들의 수준높은 플레이에 두 손으로 손바닥을 마주쳐 박수를 치거나, 동행한 친구들과 골프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다. 이곳이 바로 골프 천국인 이유다.

1번홀 언덕 입구에 위치한 대회 메인 리더보드. 마스터스 대회장엔 그 어떤 스폰서 상표도 광고판도 없다.


③ 황금알을 낳는 거위 '타이틀 스폰서'

마스터스 토너먼트 대회는 대회 명 앞에 흔히 따라붙는 타이틀 스폰서가 없다. 스폰서가 없이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이유는 철저한 신비주의 전략 때문이다. 비상업주의 전략을 꾸준히 유지해 오고 있는데 돈은 돈대로 벌어들이는 아이러니가 일어났다.

작년 총상금 규모는 약 295억 원 이었고, 우승 상금은 53억 원이었다. 대회 기간인 단 일주일 동안의 기념품 판매 금액, 입장권 수입, TV중계권료를 합한 총수입이 2022년 기준으로 2200억 원을 넘었다. 숨기면 숨길 수록 대회의 가치가 폭등하는 이상 현상이 일어난 거다. 미국내 중계권사인 CBS, ESPN을 제외한 전세계 어떤 방송사라도 코스내에서 경기를 함부로 찍을 수도 없다. 심지어 선수 인터뷰나 사진도 마찬가지. 오로지 조직위에서 제공하는 기자회견 영상과 인터뷰 클립을 다운받아 써야한다. 주최 측에서 철저히 보여주고 싶은 장면만 인위적으로 선택해 공개하는 극도의 신비주의 전략이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꼭 찾아오고 싶은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오거스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명물 3가지

① 21세기에 유물이 된 공중전화

오거스타를 찾은 관람객들이 공중전화 부스에서 각자 어디론가 통화를 하고 있다. 물론 통화료는 무료다.


오거스타 내셔널의 비현실적으로 완벽한 코스를 걷다보면 군데군데 까만색 공중 전화 부스를 찾을 수 있다. 코스내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으니 혹시라도 급한 일이 생기면 지인에게 비상 연락을 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휴대전화 없이 선수들을 따라다니던 관람객들은 이 전화기가 신기하기라도 한 듯 저마다 다이얼을 눌러보며 구시대적 유물의 추억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인구 20만 명 남짓한 미국 조지아주의 시골 마을 오거스타엔 아직 공중전화가 여전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② 카우보이의 상징 '시가' 향기

만약, 비흡연자라면 오거스타 내셔널 코스를 거니는 게 그리 달갑지 만은 않다. 바로 진한 시가 담배 연기가 수시로 후각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곳 오거스타 내셔널에선 야외 흡연이 공식적으로 허락돼 있다. 대회 2라운드 도중 아멘 코너인 12번홀 티잉 구역 아래에서 만난 56살 데이비드 씨(애틀랜타 거주)를 통해 이 독특한 시가 문화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데이비드 씨는 흡연자가 아닌데도 오거스타에 시가를 들고 와 거나하게 한 모금 흡입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시가는 마치 와인과 같은 거예요. 당신도 와인 마시죠? 이 시가도 와인과 마찬가지로 맛과 풍미를 즐기는 것 뿐입니다. 시가는 절대 들이마시는 게 아니고(Not inhale) 그냥 빤 다음에 향을 느끼고 내뱉는 거죠. 2024년 뉴잉글랜드 저널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하루 2개비 이하의 시가를 피는 건 건강에 전혀 해롭지 않다고 해요."

마치 노예 제도가 횡행하던 18세기 초반 미국 시골 마을의 전형적인 카우보이 DNA가 몸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것 마냥 데이비드 씨는 그렇게 연신 시가를 뻐끔뻐끔 빨았다. 가장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라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 진한 수컷의 향기가 진동했다.

③ 아날로그의 끝판왕 수동식 리더보드

영국의 골프 스타 저스틴 로즈가 고풍스럽지만 구닥다리 같은 리더보드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스터스를 정말 마스터스스럽게 만드는 또 하나의 명물은 수동식 리더보드다. 저 간판 뒤에는 운영 요원들이 무전기를 통해 전해들은 선수들의 이름과 빨간색 언더파 숫자를 일일이 손으로 갈아 끼워넣으며 관객들에게 정보를 전해주고 있다. 아날로그가 때로는 디지털보다 아련하고 친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치다. 최첨단 LED 광고판을 활용한 리더보드를 갖춘 다른 골프장들과 달리, 이곳 오거스타 내셔널은 다소 투박하지만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수동식 리더보드를 아직까지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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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성 기자 (s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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