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반성·사과 없이 "국민 위한 새 길 찾겠다"
“이제 저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나라와 국민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겠다.”
윤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일주일 만인 11일 관저를 떠나며 변호인단을 통해 낸 295자 입장문의 일부다. 그는 “국민 여러분과 제가 함께 꿈꾸었던 자유와 번영의 대한민국을 위해, 미력하나마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반성·사과는 없었다. “지난 2년 반, 이곳 한남동 관저에서 세계 각국의 여러 정상을 만났다”며 “우리 국익과 안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했을 뿐이다. 탄핵 반대 운동을 떠올린 듯 “지난겨울에는 많은 국민들, 그리고 청년들이 자유와 주권을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밤낮없이 한남동 관저 앞을 지켜주었다”며 “추운 날씨까지 녹였던 그 뜨거운 열의를 지금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고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은 관저를 떠나기 전 참모들에게 “임기를 끝내지 못해 아쉽다. 모두 고생이 많았다. 많이 미안하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반발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국민과 국회, 헌법에 의해 파면된 윤석열은 마지막까지 단 한마디의 사과나 반성도 없었다”며 “누가 보면 명예롭게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대통령인 줄 알겠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 윤석열이 해야 할 일은 자숙하고 참회하며 겸허히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촉구했다.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도 통화에서 “지금 윤 전 대통령이 아름다운 이별을 할 때는 아니지 않으냐”며 아쉬워했다.
윤, 빨간모자 쓰고 지지자들 향해 주먹 불끈
윤 전 대통령은 관저를 떠나 대로변 정문 앞까지 경호처 차량으로 이동한 뒤 차량에서 내려 기다리던 지지자들과 약 4분간 인사를 나눴다. 감색 양복에 하늘색 셔츠, 노타이 차림의 윤 전 대통령 모습이 파면 이후 처음 드러난 순간이다. 입장문에서 ‘청년들의 지지’를 강조했던 윤 전 대통령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대학 이름이 새겨진 점퍼를 입고 온 대학생들과 가장 먼저 포옹했다.
태극기를 흔들며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거나 양손을 번쩍 들며 화답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 뒤 다시 차량에 탑승해 교통이 통제된 한남대로 5차선을 저속으로 이동하며 도보에 있던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후 5시9분 관저 정문을 통과한 차량은 21분 만인 오후 5시30분 서초동 사저에 도착했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여사는 이날 반려동물 11마리도 함께 데려갔다. 대통령 경호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최대 10년간 경호처의 경호를 받는다.
정치권에선 이날 윤 전 대통령의 모습을 두고 “조기 대선에서 적극적 역할을 할 것을 시사한 것”이란 말이 나왔다. 지난 9일 한남동 관저에서 윤 전 대통령을 만났던 이철우 경북지사는 10일 페이스북에 “윤 전 대통령이 이번 선거에서 우리 당이 승리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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