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선고에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끝”…충돌 없었다

김서원.김성진.이수민.이영근.서지원 2025. 4. 5.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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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찬탄·반탄 집회
4일 오전 서울 안국동사거리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시민들이 헌재의 파면 선고에 환호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옳지, 대한민국 만세! 샴페인 터뜨립시다!”

“대한민국은 이제 다 끝났다!”

4일 오전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한 순간 탄핵 찬성·반대 집회장에선 희비가 엇갈렸다. 찬성 측은 “승리했다”며 환호했고, 반대 측은 “말도 안 된다”고 절규했다. 하지만 우려했던 폭력사태는 발생하지 않았고, 양쪽 모두 오후 들어 집회를 해산하거나 취소하면서 광장은 일상을 되찾았다.

이날 오전 11시22분,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언급한 순간 탄핵 찬성 집회장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서울 용산구 관저 인근에 모인 촛불행동 측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손팻말·응원봉을 흔들었다. 김효진(48)씨는 “다시는 비상계엄 같은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국민이 존중받는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해병대 예비역 연대는 준비한 샴페인을 열고 축배를 들었다.

서울 종로구 헌재 인근에 모인 윤석열퇴진 비상행동 집회장도 잔치 분위기였다. 이들은 문 권한대행이 결정문을 읽을 때마다 연신 “맞다”고 호응하며 손뼉을 쳤다. 들뜬 표정으로 뛰어다니거나 비눗방울을 불며 자축하는 이들도 있었다. 선고가 끝난 뒤 안국동에서 광화문 서십자각 앞으로 이동한 이들은 꽹과리·북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거나, 깃발을 흔들고 떡을 나눠 먹었다.

이날 헌재 심판정에서 방청한 정모(62)씨는 “과거 5·18 계엄을 목격했을 때가 떠오르며 가슴속 응어리진 것이 풀어지는 기분이었다”며 “벅차오르는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뻤다”고 말했다. 아들과 함께 집회에 온 김경수(52)씨는 “계엄이 선포됐을 때 마음이 떨려 한숨도 못 잤는데 오늘 헌재의 판결이 대한민국을 미래로 나아가게 한 발판이 됐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모인 시민들이 윤 전 대통령 파면 선고 소식에 슬퍼하는 모습. 최기웅 기자
탄핵 반대 집회장에선 탄식과 오열 소리가 퍼졌다.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실 관저 인근 볼보빌딩 앞에서 열린 대한민국살리기국민운동본부(대국본) 집회에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오늘 선고는 사기”라며 “4·19나 5·16 때처럼 국민저항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외쳤다. 대국본은 이튿날 오후 1시 광화문에서 집회를 예고하며 이날 오후 3시부터 철수했다. 석동현 변호사를 주축으로 한 대통령 국민변호인단이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려던 ‘(대통령) 직무복귀 환영’ 집회도 진행되지 못했다.

대국본 외 탄핵 반대 집회 단체는 예정됐던 집회를 취소했다.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가 이끄는 세이브코리아는 “대한민국 일원으로서 헌법재판소 결정을 받아들인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5일 예정됐던 2만 명 규모의 여의도 집회를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전국을 순회하며 세이브코리아 집회에 참여했던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는 유튜브 방송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와 당황스럽다”면서도 “헌법재판소 결과에 승복한다”고 말했다.

탄핵 찬성·반대 간 갈등이 격화하면서 폭력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예상도 있었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다만 헌재 인근 수운회관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장 근처에서 한 남성이 대통령 파면 결정에 격분해 경찰 버스를 훼손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28분쯤 안국역 5번 출구 쪽에서 헬멧·방독면을 쓴 한 남성이 차벽으로 세워진 경찰 버스 유리창을 곤봉으로 깼다. 경찰 관계자는 “이 남성 외에는 탄핵과 관련해 입건된 사람은 없다”며 “다만 당분간 헌법재판관들에 전담 경호팀을 붙이는 등 신변보호 조치는 계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낮 12시49분쯤 관저 인근에선 “한 남성이 분신을 시도하려 한다”는 신고가 접수됐지만 실제로 사고가 발생하진 않았다.

경찰은 비상사태에 대비해 헌재와 관저 등에 경력 2만여 명을 배치했다. 경찰은 이날 탄핵 반대 집회에 최대 1만1300여 명, 찬성 집회에 최대 1만1000여 명이 모였다고 비공식 추산했다. 하지만 오후 3시쯤 헌재와 관저 인근 집회 참여자 수는 모두 합쳐 1000명 수준으로 줄었다. 경찰은 오후 2시쯤부터 헌재 주변 통행 제한을 풀었고, 자정부터 발령했던 갑호비상(경력 100%를 동원할 수 있는 비상근무 체제)을 오후 6시를 기점으로 을호비상(경력 50%를 동원할 수 있는 체제)으로 조정했다. 지하철 6호선도 이날 오전 9시부터 관저 인근 한강진역을 무정차 통과했지만, 오후 1시15분부턴 정상적으로 운행됐다. 헌재 인근 안국역 폐쇄 조치도 오후 4시32분쯤 종료됐다.

김헌식 사회문화평론가는 “시민사회에서 비폭력 원칙을 충분히 공지·공유하고 국민 의식도 이에 부합했다”며 “이번 탄핵 정국을 계기로 한국 집회 문화가 다른 나라에 모범적인 사례로 언급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도 “집회 참가자들이 윤 전 대통령 구속 당시 벌어졌던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 관련자에 대한 수사 등 법 집행 과정을 보면서 극단적인 행동을 억제하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서원·김성진·이수민·이영근·서지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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