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찜 쪄먹는 '폭싹 속았수다'의 조연들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2025. 4. 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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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지난 3월 28일 막을 내린 '폭싹 속았수다'의 여운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유, 박보검, 문소리, 박해준에 대한 찬사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조연이나 단역이라고 말하면 섭섭할 만큼 매력인 얼굴들이 숱하게 많았다. 주연만큼이나 돋보였던, 때론 주연 찜 쪄먹을 만큼 '신스틸러'였던 그 얼굴들, 살아 생생히 움직이는 인물들을 구현한 그 배우들의 이름을 다시 되짚어 곱씹어 본다. 

오정세(왼쪽)과 엄지원, 사진제공=넷플릭스

도의적 장학금은 '금두꺼비'로 끝났을까?
염병철(오정세) &나민옥(엄지원)

애순의 엄마 광례와 결혼하며 애순의 새아빠가 된 염병철, 그리고 광례 사후 몇 년 뒤 병철과 결혼하며 웃기지도 않는 관계가 되어버린 나민옥. 세상 한량이던 염병철은 애순을 대학 보내주겠다며 꼬드기며 자신의 아이들을 키우게 붙잡았지만 나쁜 인물은 아니며, 민옥은 까막눈일 만큼 일자무식이지만 자식들을 키우면서 부모가 쌓은 행실이 자식에게 고대로 물림된다는 것은 일찌감치 아는 인물. 도의적 장학금, 일명 '도희정 장학금'을 만든 주인공들로, 훗날 떡집으로 번창하여 애순의 손자 제일의 돌잔치 때 금 다섯 돈짜리 금두꺼비를 선물했다고 한다. 부부의 개그 센스가 상당한데, 가출한 애순과 관식을 잡고자 인상착의를 물으러 온 관식 엄마에게 "추격을 하시게?" "아주 추노꾼 같고, 보기 좋으네"라며 만담 콤비마냥 약을 올리는 장면이 압권. 

강말금, 사진제공=넷플릭스

쥑이는 부산 인심 선보인 신스틸러 
여인숙 아내(강말금) & 여인숙 남편(김영웅)

애순과 관식이 부산으로 야반도주해서 투숙했던 여인숙의 주인 부부. "부산 인심 쥑이지예" 하며 투숙객들에게 '써비스'로 술과 안주를 대접하곤 잠든 새 짐가방을 털어먹는 절도범으로 환상의 쿵짝을 보여줬다. 문제는 머리가 살짝 나쁘다는 것. 가방 속 제주 배표를 보고 무의식 중에 제주 부모님께 연락하겠다며 가방을 털어갔다는 것을 내비친 남편이나 금개구리를 금두꺼비로 올려치기한 관식 엄마의 '기술'에 당해 사실을 토로하는 건 물론 장물을 여러 번 같은 금은방에 내다 판 아내나, '부창부수'가 이런 것인가 할 정도의 환장의 호흡으로 범죄 행각이 탈탈 털렸다. 그 와중 관식 엄마에게 "니 전과 있제?"를 시전하던 아내가 이미 전과 10범이란 점이 웃음 포인트. 부산 출신 강말금과 김영웅이 구사하는 걸쭉한 부산 사투리가 빛을 발하며 시청자의 눈길을 훔쳤다. 

송광자(왼쪽), 사진=넷플릭스

애순과 관식 부부의 든든한 백업 
도동리 만물센타 하르방(박병호) & 할망(송광자)

젊은 애순과 관식이 셋방살이 하던 집주인 노부부. 애순과 관식이 쌀독 사정을 걱정할 만큼 가난할 당시, 할머니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밤마다 몰래 쌀독에 세 식구 먹을 쌀을 부어 넣곤 했다. 할아버지 역시 무심한 듯 툭, 애순 엄마 제사에 쓸 문어를 챙겨주는가 하면 아이를 잃은 애순에게 '기운이 뻗치는' 초란을 주는 '츤데레' 면모를 보인다. 애순이 어촌계장 선거에 나갈 때도 역할을 했다. 부상길이 선거운동이랍시고 애순네 가족에 대한 비난을 일삼자 애순의 딸이 서울대 출신임을 주지시키고, 부상길의 아버지가 제주에서 1등으로 창씨개명을 했다는 사실을 까발린 것. 하르방 역할의 배우 박병호는 '용의 눈물' '정도전'의 무학대사를 비롯해 일명 '스님 전문 배우'로 불렸을 만큼 유명하며, 할망 역의 송광자는 KBS 아나운서 출신으로, 2015년부터 연기를 시작해 배우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김금순, 사진제공=넷플릭스

부모의 행실이 자식에게 물림됨을 보여준 사모님과 가정부 
제니 엄마(김금순) & 제니네 가정부(남권아)

애순의 딸 금명이 대학시절 불법 과외를 하면서 얽혔던 제니 엄마 김미향과 제니네 가정부 또한 눈길을 끌었다. 부모의 행실이 자식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례를 단적으로 보여준 케이스로, 제니 엄마가 딸의 대리 시험 제의가 발각될까 일부러 금명에게 도둑 누명을 씌우자 제니네 가정부가 기지를 발휘해 금명을 도와주었다. 알고 보니 제니네 가정부는 예전 부산 여인숙에 투숙했을 때 애순과 관식의 도움으로 짐가방을 털리지 않아 그들에게 두부를 사줬던 인연이 있었던 것. 이후 둘이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주고받는 사연으로는 제니 엄마는 접대부 출신 김 양이었고, 가정부는 마담 언니 출신으로 과거부터 제법 끈끈한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의 백일홍으로 주목받은 김금순과 연극무대에 꾸준히 오르며 야누스적 매력을 선보인 남권아의 호흡이 짧지만 강렬했다. 

황재열

'물심양면'과 '오나타' 사이 
애순의 담임(황재열) & 은명의 담임(박재윤)

1951년생 오애순이 처음 겪은 사회적 시련(?)은 급장선거를 부정선거로 만든 담임선생님 때문. 9표 차이로 이만기를 따돌리고 급장이 되었건만 담임에 의해 부급장으로 전락하자 광례는 밭을 갈며 진주목걸이를 빌려 차고, 떡과 양말과 봉투를 준비해 담임을 찾아간다. 짧은 출연이지만 "읃어먹기는 읃어먹고 뽑지 않은 37명도 부도덕하지만" "어느 자리든 장이란 자리는 물심양면이 좀 되는 사람이 (해야)" "끌려 내려오면 모냥 빠지지만 니 발로 내려오면 하야여" 등 명대사를 여럿 남겼다. 애순의 아들 은명의 담임은 자동차 로고 스펠링을 떼어다 판 은명 덕분에 소나타 아닌 '오나타'를 타게 된 비운의 인물. 다소 혀가 짧은 듯한 말투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안겼는데, 역시 짧은 출연 와중 "누나랑 같아요? 누나랑은 나도 못 놀아요!"란 팩폭 명대사를 남겼다. 

김해곤

금명이 짝을 지워준 중매쟁이, 사실 우리야
깐느극장 사장(김해곤) & 충섭이 엄마(이지현)

금명은 충섭이 간판화가로 일하던 깐느극장에서 매표소 알바로 일하면서 그와 가까워진다. '애마부인' 포스터에 헐벗은 여인 대신 말 네 마리를 그려놓는 충섭에게 타박을 놓지만 차마 자르지는 못하는 깐느극장 사장은 극장 사람들과 함께 은근히 금명과 충섭을 이어주는 역할. 만두를 사와 충섭에게 가져다주라며 금명에게 시킨 것도, 극장 문을 닫게 되자 찾아온 금명과 충섭에게 근처 좌석을 배정해주며 센터링을 올려주는 것도 이 인물이다. 충섭 엄마 역시,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금명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복사전문점의 영어 서적과 시험 족보들을 가득 싸주면서 "아가씨는 못 들어"라며 명대사와 함께 아들을 짐꾼으로 엮어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김해곤의 툴툴거리는 연기,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청산이 엄마로 시선을 끈 이지현의 담담한 듯 툭툭 내뱉는 연기가 인상적. 

이미도 

어촌계장 애순에게 어시스트한 그들
미숙(이미도) & 박씨(정선철)

부상길이 어촌계장에서 떨어진 것은 똘똘한 애순과 열심히 뒷바라지한 관식의 인품 덕분이지만, 어시스트한 이들도 꽤 있었다. 특히 미숙이와 박씨. 미숙이는 젊은 시절 "땐스는 스포츠예요"를 시전하며 부상길과 엮었다가 복덕방을 운영하며 부상길과 눈이 맞아 꽁냥꽁냥을 시전하다 애순네 일행에게 발각되며 부상길의 낙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숙은 이후에도 애순에게 '미숙이년'으로 불리며 애증의 관계를 쌓았는데, 은명이 원양어선에 탔다는 결정적인 제보를 한 것도 그녀였다. 그런가 하면 젊은 시절 관식과 함께 부상길의 배를 탔던 박씨도 회심의 한 마디로 선거전에서 어시스트를 올렸다. "근디 선장, 선장은 본연의 공약은 없는가? 남 욕하느라고 돈만 쓰고 댕기는 거 같은디?" 잠시나마 부상길의 말문이 막힌 건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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