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에 캑캑…"3시간 쪽잠 자고 잔불 꺼요" 시민들 힘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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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 다 탔부렸네예."
회의소 소속 시민들은 잔불 끄기에 나섰다.
회의소 시민들은 주로 민가·농가로 내려온 잔불을 처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잔불 끄기에 나선지 10분쯤 지났을 무렵 산 밑에 있던 연기가 점점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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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 다 탔부렸네예."
25일 경북 의성군 옥산면 신계리 사과나무 개간지 중턱에서는 아직 새하얀 연기가 이곳저곳 피어나고 있었다. 산불로 새카맣게 탄 사과 농가 잔해들이었다. 컨테이너 겉은 불에 그슬려 까졌고 나무 등 자재는 흔적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탔다.
가파른 산을 오른 권민재 경북지구 청년회의소 내무부회장을 필두로 의성청년회의소(회의소) 소속 회원들은 물탱크차 2대를 연달아 세운 뒤 그곳에 호스를 꺼냈다. 물이 닿을 때마다 하얗고 검은 재들이 날렸고 눈과 목에 매케한 잔여감이 느껴졌다. 현장에 남은 사과 농가 주민들은 농약 살포 기계에 물을 담으면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회의소 소속 시민들은 잔불 끄기에 나섰다. 외관상 불길이 보이지 않아도 숨어있는 '잔불'이 다시 큰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의성 산불 일부도 잔불에서 다시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기만 피어올라도 물을 뿌려 이중 삼중으로 진화한다. 꺼진불도 다시 보는 작업인 셈이다.
이들은 면장갑과 일반 마스크 등 별다른 보호장비 없이 사흘째 진화에 나섰다. 의성군에서 불이 시작된 지난 22일부터 3~4시간 쪽잠을 자가면서 작은 불을 진압했다.
권 부회장은 "지역 청년이니까 전문성이 없어도 도와보자는 차원에서 시작했다. 큰불은 소방에서 잡기 때문에 주로 저녁이나 새벽에 할 일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사흘 내리 마신 연기에 권 부회장의 기침은 끊이지 않았다.
회의소 시민들은 주로 민가·농가로 내려온 잔불을 처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또 비탈진 비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는 등 대형 소방차는 진입하기 어려운 환경 속 곳곳에 남아있는 잔불을 꺼트렸다.
잔불 끄기에 나선지 10분쯤 지났을 무렵 산 밑에 있던 연기가 점점 올라왔다. 위급한 상황이라 판단한 회원들은 호스를 끄고 개간지를 내려갔다. 대신 산불 전문 예방 진화대(예방 진화대)가 남아있는 불을 끄러 올라갔다.
예방 진화대는 산불을 감시하거나 규모가 작은 산불이 발생했을 때 초동 대처하는 업무를 맡는다. 아무런 장비 없는 회의소 주민들과 달리 안전화, 안전모, 방연마스크, 안전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큰 불에는 소용없는 것이었다. 경남 산청군 화재 현장에서 산불 진화 작업에 투입됐다 사망한 3명도 예방 진화대 소속이었다.
산을 내려온 회의소 주민들은 근처 금학리 한 사과밭으로 이동했다. 불이 번지고 있어 도움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해당 사과밭 인근 수봉실산은 화재 연기가 자욱했다. 주변으로 다가갈수록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자 이미 농가 사람들이 사과밭 가장자리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아직 불이 옮겨붙진 않았지만 바람 한 번엔 불이 옮겨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과밭 주인이자 의성소방서 소속 의용소방대원 배갑수씨는 "지금은 바람이 안 불어서 모르겠지만 강풍이 불면 눈 깜빡할 새 산 두 능선을 넘어 불이 날아온다'며 "아침 9시부터 밭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3일간 산에서 불을 끄고 다녔다"고 말했다.
전문적인 소방이 아닌 시민들은 쉬는 시간 없이 화재 현장을 돌아다녔다. 잔불 끄기 외에도 사비를 들여 소방대원이 필요한 물, 간식 등을 지원했다고 한다. 권 부회장은 "4일 만에 개인 돈 300만~400만원 정도 쓴 것 같다"며 "가족들이 걱정하긴 하지만 그래도 고향을 지켜야 하지 않겠나. 불이 완전히 진압될 때까지 (봉사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의성(경북)=민수정 기자 crysta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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