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로 변장한 네 여자의 비밀, '장진 표 코미디' 여전하네

안지훈 2025. 3. 2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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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훈의 3인칭 관객 시점] 연극 <꽃의 비밀>

[안지훈 기자]

 연극 <꽃의 비밀> 공연사진
ⓒ 장차, (주)파크컴퍼니
코미디 연극의 대가로 꼽히는 장진 감독의 <꽃의 비밀>이 돌아왔다. 2015년 처음 공연된 이래 올해로 딱 10년이 흘렀다. 이탈리아 시골 마을의 네 여자가 사라진 남편을 대신해 보험금을 타기 위해 소동을 벌이는 이야기는 10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신선하고 유쾌하게 느껴진다.

다시 돌아온 <꽃의 비밀>에는 이연희, 장영남, 조재윤 등 스타 배우들이 함께한다. 화끈한 성격으로 네 여자의 소동을 주도하는 '소피아' 역에 박선옥·황정민·정영주, 술과 낯뜨거운 유머를 좋아하는 '자스민' 역에 장영남·이엘·조연진이 분한다. 예술학교 출신으로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는 '모니카' 역에는 이연희를 비롯해 안소희, 공승연이 캐스팅되었고, 여린 성격이지만 동시에 사건의 시초를 제공하는 '지나'는 김슬기와 박지예가 연기한다.

네 여자의 남편은 이번에 새롭게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이를 심사하기 위해 시골 마을을 찾아오는 보험공단 의사 '카를로'는 조재윤과 김대령, 최영준이 번갈아 연기한다. 카를로를 돕는 간호사 '산드라' 역에는 정서우와 전윤민이 분한다.

유쾌하게 드러나는 비밀들

공연이 시작되고 극의 배경인 이탈리아 북서부의 시골 마을 빌라페로사는 여느 때와 같이 평화롭다. 네 여자의 남편은 축구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함께 떠났고, 남겨진 아내들은 소피아의 집에 들락거린다.

정부에서는 시골 마을 주민들을 위해 남자에게 농촌 보험을 들어주는 정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소피아는 기본적인 진단을 위해 다음 날 빌라페로사를 찾아오겠다는 의사 카를로의 전화를 받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골 마을은 평화롭고, 앞으로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이 잔잔하게 흐른다.

그렇게 네 여자가 모두 집에 모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가 걸려 온다. 수화기 너머로 남편의 심상치 않은 목소리가 들리고, 이내 지나는 초조한 기색을 드러낸다. 불안에 떨던 지나가 밝히길 바람 피는 남편 안토니오가 미워 자신이 자동차 브레이크를 고장 냈고, 다른 남편들이 모두 안토니오의 차를 타고 가다가 계곡 아래로 떨어졌다는 것.

여기서 <꽃의 비밀>의 첫 번째 비밀이 밝혀진다. 이는 곧 극을 주도하는 사건의 발단이기도 하다. 다음 날이면 남편들이 모두 보험에 가입되어 사망 보험금을 받을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선 남편이 의사로부터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에 여자들은 계곡에 떨어진 남편을 대신해 남자로 변장한 뒤 검사를 받기로 한다.
 연극 <꽃의 비밀> 공연사진
ⓒ 장차, (주)파크컴퍼니
얼핏 보면 여자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남편이 사고를 당했는데 보험금을 타기 위한 사기극을 벌인다니 말이다. 하지만 이내 또 다른 비밀이 밝혀진다. 여자들은 모두 각자 남편에게 불만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축구를 보러 가겠다던 남자들의 목적지가 축구장이 아닌 환락가였다는 비밀이 말이다.

또 다른 베일이 하나씩 벗겨지며 비밀이 드러난다. 이후 여자들이 변장을 통해 남편 행세를 하는 것도 비밀을 감추는 과정이며, 의사 카를로와 간호사 산드라 역시 대놓고 말하지 못할 비밀을 안고 있다. <꽃의 비밀>의 매력은 비밀을 유쾌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비밀을 드러내는 타이밍은 적절하고, 방식은 유쾌하며, 표현도 선을 지킨다.

따지고 보면 <꽃의 비밀>에 등장하거나 거론되는 인물들은 모두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연극 속에서 비밀은 때로 오해와 불화를 낳기도 하고, 반대로 우정과 결속을 다지는 역할도 하며, 비밀로 인해 멀어졌던 사람을 종국에는 더 가까이 이해하게 되는 효과도 낳는다.

<꽃의 비밀>은 비밀로부터 야기되는 다양한 사건·사고, 감정의 소용돌이를 코미디의 겉옷을 빌려 이야기하는 드라마인 셈이다. 그렇다면 <꽃의 비밀>이라는 이름에서 꽃을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제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아름답고, 속사정을 알았을 때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꽃 말이다.
 연극 <꽃의 비밀> 공연사진
ⓒ 장차, (주)파크컴퍼니
한편 코미디는 시대와 발맞추면서 절제할 때 그 맛이 더 풍성해진다. 트렌디한 유머를 구사해야 하고, 과하지 않은 표현으로 모두가 웃을 수 있어야 한다. <꽃의 비밀>은 이런 코미디의 규칙을 준수한다. 동시에 유행어나 밈 없이도, 누군가의 스테레오타입을 희화화하지 않고도 웃음을 준다.

특히 <꽃의 비밀>은 대학로의 다른 공연들에 비해 관객의 연령층이 다양한데, 모두가 웃음을 터뜨린다는 점에서 얼마나 질 높은 코미디를 구현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공연은 5월 11일까지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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