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돌봄청년' 당사자 한 자리에…"지원책 개선 건의"
“정부·지자체에 제도 개선 건의할 것”
가족돌봄 청소년·청년에 대한 공공 지원이 사실상 부재(경기일보 17일자 1·3면 등)한 가운데 전국 당사자들이 모여 관계당국에 제도 개선을 건의하기로 했다.
지난 22일 오전 서울에선 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의 정책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조기현 대표(34)와 최유나(46)·강하라(32)·김희망(34·가명) 활동가가 함께 했다. 모두 가족돌봄 청년 당사자다.
이들은 최근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처음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음에도 여전히 현실적 한계가 있다고 보고, 보건복지부나 지자체 등에 새로운 아이디어 및 제도 개선을 제안하기 위해 이번 회의를 마련했다.
비로소 지원법 논의가 시작된 만큼 종합적 계획도 세워져야 하는 시점인데 현장의 이야기를 가급적 다양하게 반영해주면 좋겠다는 취지다.
이날 본격적인 회의에 앞서 먼저 ‘당사자들의 고충’부터 공유했다.
정신질환자 가족을 간병해 온 김희망 활동가는 “유년기 때부터 어려웠던 부분은 지역사회건 병원이건 어딜 가도 ‘가족돌봄’이나 ‘정신장애’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쉽게 말 못하는 사회적 인식이 있어서 저 스스로 소화 시키는 수밖에 없었다”며 “저는 경기도에 살고 있지만 현재까지 한 번도 공공 지원을 받아본 적이 없고 정신질환자 돌봄과 관련된 정보도 얻지 못했다. 제 경험을 토대로 보면 돌봄제공자와 돌봄대상자들이 사회로 연계되도록 도와주는 시스템, 그리고 사회 복지·심리 치료·스트레스 완화 등을 위한 다각적인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적장애 아버지를 보살피고 있는 강하라 활동가는 "저는 기초생활수급, 차상위, 한부모가정 등 모든 사회적 지원 유형을 피해가는 경우에 해당한다. 생계를 위해 하루 12~14시간씩 일하며 과로가 쌓이는데 집에 와도 돌봄대상자를 살피느라 2차 노동 상태에 빠지고 별다른 지원은 받지 못하고 있다"며 "가족돌봄 청(소)년을 방치한다면 일부는 사회로 향하지 못하고 은둔·고립청년으로 멈춰버리는 추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가정방문 식으로 돌봄가족을 챙겨준다면 삶의 질이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정부나 지자체 측에 전하고 싶은 대안으로는 ▲아동·청소년·중장년·노년을 아우르는 지역사회 내 돌봄 통합창구 마련 ▲시·군 단위의 청년미래센터 확충 ▲전문 사회복지사·활동가 양성 및 교육 강화 등에 대한 내용이 오갔다.
서른 살이 넘어 돌봄청년이 된 최유나 활동가는 "저는 유아기·청소년기부터 돌봄 경험을 한 분들과는 사뭇 경험이 다른데도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싶다"고 운을 뗐다.
그는 “현장에서 만난 가족돌봄 청(소)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상대적으로 내가 다른 친구보다 덜 힘들어서 지원을 못 받는다'는 것”이라며 “빈곤을 증명해야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상처를 받고, 20대 초반이 되더라도 '노동력이 있는 어린 애' 취급을 받으며 배제된다. 정부도 지자체도 지원책을 고민하고 있는 게 감사하지만 아직은 활발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실정이라 추후엔 연령별로 지원이 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가장 중요한 건 가족돌봄 청(소)년의 성장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회의의 마무리도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졌다. 종합된 내용을 토대로 조만간 보건복지부 등 관계당국과 만나 의견을 전달한다는 구상이다.
조기현 대표는 "보건복지부가 일상돌봄서비스를 진행하고 있고 청년미래센터도 만드는 등 고무적인 변화들을 내고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정말 가족돌봄 청(소)년 위기가 해소되는가'를 생각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면서 "자기돌봄비 200만 원 준다고 해서, 광역 시·도마다 센터 하나 생긴다고 해서 나아지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근본적으로 대상자들의 성장권을 보장하기 위해선 '가족돌봄' 환경을 개인에게 떠넘길 게 아니라 사회가, 어른이 공감하고 해결해줘야 한다"면서 "읍면동 단위에 가까운 지역단위부터 접근성을 높여 아동·노인·장애 등을 포괄하는 돌봄 체계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조 대표는 “연령별 특성에 맞는 케어(care)와 돌봄 특성에 맞는 접근이 요구된다. 또 서비스가 대상자의 ‘신청’ 위주로 제공되던 것을 넘어 복지사 등 전문가의 ‘직권’ 식으로 가동되는 개선이 필요하고, 이 모두를 총괄하기 위한 통합된 창구로서의 커뮤니티케어가 필요하다”면서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가족돌봄 청(소)년 대상자가 가장 많은 경기도가 선도적으로 그 역할을 해 다른 지역에서도 따라갈 수 있는 길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021년 7월 '의존할 수 있는 돌봄안전망을 만들자'는 목표로 시작된 n인분은 현재까지 4년여간 ▲정부 간담회 및 국회 토론회를 통한 정책 제안 ▲외국식 용어 '영케어러(Young Carer)'의 번역어 ‘가족돌봄 청(소)년’ 창안 ▲돌봄청년을 위한 동료상담가 양성 ▲돌봄 사각지대 발굴 등 활동을 펼쳐왔다. 올해 중 ‘n인분’이라는 이름 대신 ‘N인분’으로 활동한다는 방침이다. 경기α팀
이연우 기자 27yw@kyeonggi.com
한준호 기자 hjh1212@kyeonggi.com
김미지 인턴기자 unknow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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