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쓸 새 없이 집∙공장 삼켜"…산불로 폐허된 경북 의성 망연자실 [르포]
23일 오전 경북 의성군 의성읍 중리리. 마을 전체에 안개가 낀 것처럼 자욱하게 연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연기를 헤치며 도로를 달리다 보니 저 멀리 어렴풋하게 건물 실루엣이 보였다. 산불이 옮겨붙어 밤새 타다 못해 주저앉은 공장이었다. 엿가락처럼 휘어버린 건물 사이로 보이는 내부에는 아직도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다.
“손쓸새 없이 공장 화염 휩싸여”
시커멓게 타버린 채 연기를 뿜고 있는 공장을 바라보고 선 이 공장 김양수(45) 대표는 황망한 표정이었다. 그는 “산불이 공장 근처에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을 때는 불이 저 멀리에 있었는데 순식간에 바람을 타고 공장에 옮겨붙었다”며 “손 쓸 새도 없이 공장이 화염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산불이 공장 쪽으로 빠르게 번지는 모습을 보고 소방서에 수차례 연락했지만 이미 공장이 불타고 있을 때야 소방차가 도착했다”며 “아무리 국가재난에 해당하는 산불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소방차 한 대만 미리 와있었더라도 공장이 모두 타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의성읍에 있는 의성군 공설 봉안당도 산불 피해가 났다. 봉안당 외부에 마련된 추모공원은 잔디가 모두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인근 산에서 날아온 불씨가 공원에 옮겨붙으면서 잔디가 모두 그을렸고 일부 공원 비석을 녹이기도 했다.
산불이 봉안당까지 번졌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 아버지 묘소를 찾아온 한 70대 여성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너희 아버지 묘지 다 타버렸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흐느끼고 있었다.
의성 전체에 깔린 자욱한 연기
22일 오전 11시 24분쯤 경북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한 야산에서 성묘객의 실화로 발생한 산불로 의성 곳곳이 폐허가 됐다. 산불 다음날인 23일 산불이 난 곳 인근은 산불이 뿜어낸 연기가 낮게 깔리면서 숨쉬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산불이 난 곳으로부터 직선거리로 약 10㎞ 떨어진 의성읍내에서도 탄내가 났다.
산불이 강풍을 타고 광범위하게 번지면서 의성 지역 전체에 산불 피해가 속출했다. 의성읍과 단촌면, 점곡면, 옥산면, 비안면, 안평면 등지의 주택 29채가 불에 탔고 축사와 과수원 등이 피해를 입었다. 경북도에 따르면 현재 산림 1800㏊가 소실됐고 화선 길이가 무려 62.7㎞로 번졌다. 의성 산불의 진화율은 23일 오전 8시 기준으로 2.8%에 불과한 상황이다.
경북도와 산림당국은 장비와 인력을 최대한 동원해 23일 안으로 주불을 잡겠다는 계획이다. 이날 헬기 51대와 소방차 등 장비 311대를 동원해 진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진화 인력도 의용소방대와 군부대 병력 등 2471명을 투입한다.
“오늘 중 주불 진화하도록 노력”
고기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본부장(행정안전부 장관 직무대행)은 이날 의성군 안평면사무소에 설치된 지휘본부에서 “지금 강풍으로 전국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어제(22일) 오후 5시 30분 부로 중앙재난대책본부를 가동하고 있으며 오후 6시 부로 경북, 경남, 울산에 재난사태를 선포했다”며 “산림청, 군, 지자체에서 모든 장비를 총동원해 산불 진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경북 지역 시·군뿐만 아니라 인근에 있는 시·도에서도 지원을 받아서 최대한 오늘(23일) 중에는 주불을 진화할 생각”이라며 “국민 여러분께서는 실화 하나가 이렇게 큰불로 번진다는 것을 인식하고 산불 조심 기간에는 산에 갈 때 절대 산불이 나지 않도록 조심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의성=김정석·백경서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땅 팔아도 취하고 싶다"…기생들 몰려든 '은밀한 장소' | 중앙일보
- "하룻밤 여성 3명 강간한 아들 둔 엄마"…김선영 괴롭힌 '이 여자' | 중앙일보
- 신기루, '자택서 쇼크 사망' 가짜뉴스에…"천벌받아 마땅" 분노 | 중앙일보
- 똥배 없는 86세의 비결, 매일 자연이 준 보약 500g | 중앙일보
- 신혼여행 비행기에서 승무원에 추파…간 큰 남편 끝판왕 [부부의 세계] | 중앙일보
- “은퇴 후 동창 만나지 마라” 그가 20년째 혼자 노는 이유 | 중앙일보
- “야! 휴게소다”“또 먹어요?” 윤석열·한동훈 10시간 부산행 | 중앙일보
- BTS 정국, 해킹으로 '하이브 주식' 83억 탈취 당해…"원상회복" | 중앙일보
- 배우 조진웅, 11억 세금 추징…"세법 해석 차이, 전액 납부" | 중앙일보
- 여성 성폭행한 대리기사는 성범죄자…"아내 알면 안돼" 합의 시도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