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WC, 단순 e스포츠 대회 넘어 세계적인 게임 축제 될 것”
e스포츠 월드컵(EWC)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주도해서 개최하는 메가 스포츠 이벤트다. 지난해 20여개 종목에 6000만 달러(약 880억원)의 파격적인 상금을 내걸며 화려하게 첫 선을 보였다. 이들은 단숨에 e스포츠 업계 최고의 서드 파티 오거나이저로 급부상하며 모두가 탐내던 e스포츠의 패권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로 가져왔다.
2회 차를 맞은 올해, EWC는 ‘카운터 스트라이크 2’ ‘리그 오브 레전드(LoL)’ 등 기존 인기종목은 물론 ‘발로란트’와 같은 신규 종목, 마인드스포츠 체스까지 포함해 24개 종목의 대회를 개최한다. 여기에 국산 게임 크래프톤의 ‘PUBG: 배틀그라운드’ PC와 모바일 버전,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가 포함된 것도 눈길이 간다.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모처에서 EWC 얀 양커(Jan Jahnke) 게임 디렉터를 만났다. 큰 상금을 비롯한 EWC 광폭 행보의 이유, EWC가 20여 개 대회 종목을 선별하는 방식, 그들이 그리는 e스포츠와 리야드의 미래 등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 e스포츠 팬과 독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한다면.
“한국 팬들에게 인사할 기회가 생겨 기쁘다. EWC 파운데이션에 합류한 지는 약 1년이 지났다. 재단은 지난해 2월 설립됐다. 나는 4월에 입사했으니 사실상 초기 멤버다. EWC 합류 전에는 중국 IT 기업 텐센트에서 PUBG 모바일과 왕자영요의 e스포츠 및 프로덕트 매니지먼트를 담당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서 11년간 e스포츠를 전담하기도 했다. 한평생 e스포츠와 함께한 셈이다.”
-e스포츠 산업에 입문한 계기가 있는지.
“경쟁(competition)을 좋아했다. 2001년 FPS 게임 카운터 스트라이크 선수로 처음 e스포츠에 입문했다. 당시에는 e스포츠라고 불릴 만큼 체계적인 환경이 갖춰져 있지도 않았다. 1년 수입이 고작 몇백 달러에 불과했던 시기다. 하지만 당시의 경험을 통해 게임 해설, 소규모 대회 개최 등으로까지 활동 영역을 늘려나갈 수 있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한 건 2007년의 일이다. 처음에는 e스포츠가 아닌 고객 지원을 담당했지만 그때부터 자발적으로 e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하곤 했다.”
-지난해 EWC 합류를 결심한 이유는.
“e스포츠를 정말 사랑한다. 인생과 경력의 대부분을 e스포츠와 함께했다. 하지만 게임사에선 e스포츠가 핵심일 수 없다. 게임 개발이 최우선 순위에 놓여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e스포츠에만 전념하고 싶었다. EWC의 경영진과 이사진은 과거 EFG(유럽의 e스포츠 전문 기업) 출신이거나 업계에서 알고 지냈던 이들이다. 그들이 손을 내밀었을 때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장고(長考) 없이 당장 함께하겠다고 했다.”
-크래프톤의 ‘PUBG 배틀그라운드’는 PC와 모바일 버전 모두 종목으로 채택했다.
“배틀그라운드는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유저를 보유한 IP(지식재산권)다. 게임 업계에서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진 IP이기도 하다. 반대로 말하면, EWC의 종목으로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크래프톤·텐센트와 EWC의 파트너십이 공고한 데서 나오는 시너지 효과도 있다. 종목사와의 좋은 관계는 우리가 대회를 잘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크래프톤과 텐센트는 훌륭한 파트너들이다.”
-크로스파이어도 신규 종목으로 포함했다. 또 눈여겨보는 한국 게임이 있는지.
“이번에 방한한 것도 한국의 게임 개발·유통사들과 종목 추가에 대해 논의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출시 예정 게임들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한국 게임에는 항상 관심을 갖고 있다. e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이어지는 게임 축제에도 활용할 만한 게임 IP가 있는지 보고 있다.”
-자체 e스포츠 캘린더가 빼곡한 종목도 있다. 일정 조율이 쉽지 않을 듯한데.
“그렇다. 24개 종목 전부 컨트롤하는 일이 정말 어렵다. 게다가 단순히 게임 종목사가 주최하는 대회 일정만 고려하는 게 아니다. 게임 패치 일정, 휴식 기간, 선수들의 개인 사정 등도 면밀히 따져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종목사들이 협조적으로 나서고 있어서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올해는 작년보다 빠르게 게임사들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여전히 힘든 일이지만, 작년보단 나아졌다.”
-EWC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투자금 이상의 리턴을 자신하는지.
“사실 정말 많이 듣는 질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EWC라는 e스포츠 대회의 성장만 바라보고 투자하는 게 아니다. e스포츠 생태계 전반을 향한 투자를 하고 있다. EWC 기간 동안 리야드에선 24개 이상 종목의 게임 대회와 축제가 함께 열린다. EWC가 숙박·항공·관광·요식업계 등을 비롯한 주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
EWC는 현재 24개 이상의 게임을 종목으로 채택했고 앞으로도 종목 수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단일 종목 대회에서는 불가능한 수준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자 한다. 큰 상금, 최고의 팀들. 이를 통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게임 축제(festival)를 여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다양한 게임을 종목으로 포함하고 있다. 종목 선정 원칙이 있다면.
“우리의 핵심 원칙 중 하나는 ‘최고의 게임’을 종목으로 포함하는 것이다. 최고의 게임은 단순히 많은 시청자와 유저를 보유한 게임을 뜻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보다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서 신규 종목을 선정한다.
우선 게임의 e스포츠 생태계가 활발하고, 기존 e스포츠 구조가 탄탄해야 한다. 개발사의 지원, 파트너십도 중요하게 여긴다. 단순히 e스포츠 대회를 넘어서 게임 커뮤니티 전체가 함께하는 축제의 장을 만들려면 게임사와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양측은 인게임 이벤트, 개발사의 SNS 홍보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할 수 있다. 물론 유저수와 시청률도 중요한 요소다.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새 종목으로 선정하거나 기존 종목에서 제외한다.
-단순히 상금 규모 외에도 대회의 위상을 높일 방안을 고민 중인지.
“우리는 e스포츠 선수와 팀을 주류(mainstream)로 끌어올리는 걸 중요한 사명으로 여긴다. e스포츠 선수들과 기성 스포츠 스타의 교류가 그 수단 중 하나다. 지난해 PUBG 배틀그라운드 우승팀인 소닉스는 올 초 포뮬러 원(F1) 대회에 초청받기도 했다. 대중과 언론이 e스포츠 선수를 단순한 게이머가 아닌 스포츠 선수로 봐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개인적으로 상금은 마케팅 수단에 더 가깝다고 본다.”
-e스포츠가 기성 스포츠의 장벽을 허물 수 있다고 보는지.
“e스포츠와 스포츠는 공통점도 차이점도 분명하다. 선수들이 열정을 갖고서 대회에 임하고, 노력해서 실력을 키우고, 팬들이 그런 최상위권 선수들의 대결을 보는 걸 즐긴다는 점에서 둘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하지만 e스포츠가 스포츠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논쟁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본인이 좋아하는 걸 자연스럽게 하게 될 것이다.
e스포츠의 스포츠화는 자연스러운 고민거리다. 한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이 고민을 조금 일찍 시작한 편이다. 지금은 한국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이와 관련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가령 중국은 이제 e스포츠 생태계 구축이 성숙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좋아하는 e스포츠 선수가 있는지.
“한국에는 e스포츠 슈퍼스타가 정말 많다. 스타크래프트 1의 복서(임요환), 플래시(이영호), 리그 오브 레전드의 페이커(이상혁)를 좋아한다. 경기를 리드하기까지의 과정이 정교하고 완벽한 선수, 그러면서도 언더도그의 서사가 있는 선수를 좋아한다. 스타크래프트 2에서 활동했던 마린킹(이정훈) 선수의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도 아주 좋아했다.”
-한국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은 자타공인 e스포츠 최강국이다. 우리의 성과를 한국 팬들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된 점을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 작년엔 촉박한 시간과 부족한 인력 때문에 우리가 준비했던 것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좀 더 일찍 준비를 시작했다. 작년보다 더 나은 프로모션과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됐으니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한국 언론사들도 리야드에 방문했으면 한다.”
윤민섭 이다니엘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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