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머리만 커지고 있다”...엘리트 과잉 생산되는 한국, 뒤집히거나 무너지거나 [Book]
지난 4일 프랑스 상원에서 중도우파 정당인 호라이즌 소속의 클로드 말뤼레 상원의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네로 황제’에 빗대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트럼프의 독재적인 행보와 미국 동맹을 저버린 친러시아 정책이 부메랑이 돼 미국의 영향력을 쇠퇴시킬 것이라는 경고였다.
네로 황제는 영화 ‘쿼바디스’에서 잘 묘사했듯 로마의 대표 폭군이었다. 64년 로마 대화재를 빌미 삼아 기독교를 박해했고 사치와 폭정은 군대들의 반란을 일으켰고 원로원과 귀족들도 등을 돌렸다. 서기 68년 어느 여름밤 잠에서 깨어나 보니 근위병도, 지지자도, 시종들도 사라지고 없었다. 모든 이들한테 철저하게 버림받은 것이다. 스스로 삶을 끝낼 수밖에 없었던 네로는 단검으로 목을 찌르고 피를 흘리며 죽었다. 숨을 거두기 직전 “내 안의 훌륭한 예술가가 죽는구나”라고 중얼거렸다. 마지막까지 나르시시스트적인 면모를 보인 것이다.
네로의 사례는 강력한 제국의 황제라도 권력 네트워크가 그를 포기하는 순간 곧바로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권력이 내파하는 순간인 ‘네로의 모먼트’는 5000년 전 최초의 국가들이 진화한 이래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가장 최근 사례는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공화국 붕괴다. 대통령부터 고위 관리들이 모조리 도망쳤고 탈레반은 수도 카불에 무혈 입성했다.
신간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원제 End Times)를 쓴 저자는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구소련이 멸망하기 전 미국으로 이주한 러시아계 학자다. 듀크대에서 동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코네티컷대에서 생태와 진화생물학부, 인류학과, 수학과 교수로 있다. 그는 복잡계 이론대로 컴퓨터 모델링과 빅데이터 분석을 결합해 역사에서 되풀이되는 정치적 위기와 국가의 붕괴를 추적하고 이론화한다.
그에 따르면 위기는 네 가지 구조적 원인에서 시작된다. 대중의 궁핍화, 엘리트 과잉 생산, 국가 재정과 정당성의 약화, 지정학적 요인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엘리트 과잉 생산인데, 엘리트 진입에 실패한 자들의 불만이 대중의 경제난과 결합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사회 상층부가 너무 무거워지면 사회 안정을 무너뜨린다. 엘리트는 쉽게 말해 ‘권력 소유자’다. 상위 10%는 자신의 삶에 대한 권력을, 상위 1%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많은 권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권력 지위보다 권력 지망자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회적 힘도 이와 비슷하다. 남북전쟁 이전에 미국을 통치한 지배계급은 면화 대농장을 소유한 남부 귀족 노예주와 은행가, 법률가였다. 그러다 광업과 철도, 철강 생산에서 새로운 엘리트들이 대거 배출되기 시작한다. ‘잉여’ 엘리트와 남북전쟁으로 삶이 피폐해진 대중이 결합해 링컨 대통령을 탄생시켰다는 얘기다.
이 논리에 따르면 지금 가장 취약한 국가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해체 이후 국유 기업의 대규모 민영화로 생겨난 부를 올리가르히(신흥재벌집단)들이 차지하며 이들 파벌 간의 심각한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 금권정치가 시작되며 지배계층의 부패는 심각해졌다. 정치 경험이 없는 코미디언 출신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대통령이 되기에 이르렀다. 러·우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중과 좌절한 엘리트들의 결합이 어떤 결과물을 도출할지 알 수 없다. 저자는 우크라이나가 침몰하는 국가가 될 것인지, 군사정치로 변신할 것인지 선택에 놓여 있다고 전망한다.
한국은 안전지대일까. 국민소득에서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대 이후 2023년까지 2배 이상 증가했고, 전 세계에서 대졸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한국이다. 이들을 소화할 만한 일자리도 줄고 있다. 상층부가 무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거대한 제국은 살인이 아니라 자살로 죽는다고 진단했다. 우리 사회 지도층의 분열과 갈등, 서민의 민생고를 결코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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