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트럼프 압박에 맞서 국민국가로 재탄생하나 [최준영의 글로벌워치]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5. 3. 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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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합병 가능성까지 제기됐던 캐나다에 민족주의 정서 고조
애국소비 등으로 美와 차별화 시도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캐나다는 익숙하지만 뉴스에는 잘 등장하지 않은 조용한 나라다. 이는 특별한 사건이나 논란이 적다는 의미다. 캐나다의 면적은 998만㎢로 러시아에 이어 세계 2위에 해당한다. 해안선 길이(35만6000km)는 2위인 노르웨이(20만km)를 크게 앞선다. 세계 3위의 석유 매장량, 세계 5위의 천연가스를 보유한 자원 부국이기도 하다.

캐나다는 미국과 8891km에 이르는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다. 미국과의 국경은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선이자 가장 평화로운 국경이었다. 캐나다가 생산하는 원유의 대부분은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많은 자동차 공장이 5대호를 사이에 두고 한몸처럼 움직이고 있다. 캐나다의 수출 중 75%가 미국으로 향하며, 전체 수입의 50%도 미국산이다. 1812년 전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20세기 들어 두 나라는 언제나 함께하는 나라였다. 1990년대 중반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양국 간 긴밀한 경제 관계를 상징한다.

3월12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오른쪽 두 번째)가 온타리오주 해밀턴에 있는 아르셀로미탈 도파스코 철강 공장을 둘러본 후 철강 노동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AP 연합

'가장 살기 좋은 나라'에 날아온 트럼프 폭탄

선진국 클럽인 G7의 일원인 캐나다는 G7 회원국 가운데 미국 다음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꾸준한 이민을 통해 인구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캐나다의 고민은 미국과의 격차가 벌어진다는 점이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 캐나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점점 격차가 벌어져 지금은 큰 차이를 보인다. 성장률이 낮은 상태에서 인구가 증가하면서 1인당 GDP가 낮아지는 것이 큰 요인이지만 캐나다 경제가 활력이 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20년 이후 1인당 GDP는 매년 0.4%씩 감소했는데 이는 세계 상위 50대 국가 가운데 최악의 성적이다.

캐나다가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반 캐나다는 대규모 투자와 인구 유입 그리고 산업화 덕에 급속한 성장을 거듭했다. 1904년 당시 캐나다 총리였던 월프리드 로이어는 "20세기는 캐나다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자신하기도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캐나다의 문제는 낮은 생산성이다. 미국의 70%에 불과한 노동자 1인당 생산성은 유럽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연구개발(R&D) 투자는 GDP의 1.7% 수준에 머물러 미국의 절반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20년간 계속 감소했다. 미국을 비롯한 G7 국가들의 R&D 지출이 계속 증가했던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풍부한 자원과 제조업 역량을 보유했지만, 각종 규제와 중국을 비롯한 해외 경쟁국의 부상으로 경제 성장이 둔화됐다. 여기에 더해 주별로 상이한 제도와 무역장벽은 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캐나다의 경우 각 주의 권한이 매우 크다. 그렇다 보니 사회복지, 간호사 등 각종 자격증이 모든 주에서 통용되지 않는 분절화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법적으로 경쟁을 제한하고 있어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G7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가계부채의 경우 2008년 GDP의 80% 수준에서 2021년에는 107%로 증가했다.

그럼에도 캐나다는 환경·보건·교육·삶의 질 등 거의 모든 지표에서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국가로 인정받아왔다. 캘거리·밴쿠버·토론토 등 대도시들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그리고 이민자가 선호하는 최고의 도시로 꼽혀왔다.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이민을 통해 인구가 증가하는 것도 캐나다의 큰 장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 캐나다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트럼프는 취임 이전부터 멕시코와 더불어 캐나다에 대해 불법 이민자와 마약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취임 직후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트럼프는 캐나다에 대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취임 이후에도 캐나다에 대한 트럼프의 압박과 위협은 계속됐다.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을 사실상 무력화시킨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캐나다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선 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나섰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위협으로 간주했던 트럼프의 위협이 본격화되면서 캐나다인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캐나다는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임을 밝히면서 보복에 나섰다. 여기에 더해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미국으로 공급되는 전력에 대해 25% 세금을 부과하고, 미국의 압력이 계속될 경우 미국에 대한 전력공급을 중단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2019년 12월4일 영국 허트퍼드셔주 와트포드에 있는 더 그로브 호텔과 리조트에서 열린 NATO 원탁회의 전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저스틴 트뤼도 당시 캐나다 총리가 대화하고 있다. ⓒAP 연합

美에 대항한 신임 총리, 캐나다 정체성 재확립?

트럼프의 압박이 거세지자, 캐나다 내에서 민족주의 정서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미국 제품 대신 캐나다산을 구매하고 미국 여행을 가지 말자는 애국소비 열풍이 강하게 등장한 것이다. '우리는 미국과 다르다'는 감정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캐나다의 주권과 정체성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의문이 제기돼 왔다. 캐나다만의 문화와 차별성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캐나다의 현실이었는데 트럼프의 압력으로 인해 캐나다 스스로 우리는 미국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차별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세대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45세 이상의 경우 미국과 합병하는 데 80% 이상이 반대했다. 하지만 18~29세의 경우 54%가 반대했고, 26%는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래에 대한 기회를 중시하는 젊은 층에게는 미국이 매력적인 것이다.

이런 상황은 신임 캐나다 총리로 선출된 마크 카니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카니 총리는 연설을 통해 미국의 압력에 단호하게 맞설 것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F-35 전투기 구매를 재검토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대신 유럽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프랑스와는 반(反)트럼프 관세연합을 결성하는 등 유럽 동맹국과의 결속 강화를 통해 트럼프의 압력에 맞서겠다는 입장이다.

지정학적 입장에서 보면 캐나다는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나라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세력 가까이에 있지만 독자성이 약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개별 주들이 미국과의 합병을 선택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해체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돼 왔다.

하지만 트럼프의 압박과 위협은 캐나다를 하나로 뭉치게 하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위협은 내부를 단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분오열된 국가가 외부의 침략에 맞서 싸우면서 동질감을 형성하고 국민국가로 발전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캐나다가 과연 미국의 압력에 맞서 미국과 차별화된 문화와 정체성을 보유한 국가로 거듭날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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