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탄 뼈, 신발 200켤레…대량학살 흔적에 멕시코 '충격'

이소현 2025. 3. 2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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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공포의 농장'서 실종자 가족들 절규
마약 카르텔 비밀 훈련소?…대량 학살 의혹
주정부도 연루 의혹…연방 검찰로 수사 이관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 정치적 압박 직면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멕시코 중서부 하리스코주의 한 농촌에서 대량 학살의 흔적으로 보이는 200켤레 이상의 신발, 남녀 의류, 불에 탄 사람의 뼈 등이 발견됐다. ‘공포의 농장(ranch of horror)’으로 불리고 있는 이곳에서 조직적인 학살이 이뤄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멕시코 사회의 충격은 더욱 커지고 있다. 멕시코의 강력한 마약 카르텔인 ‘하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JNG)’의 비밀 훈련 캠프였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테우치틀란에서 한 실종자의 친척이 항의하고 있다.(사진=로이터)

2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실종자 문제에 대해 진실을 숨기지 않고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멕시코 연방 검찰청은 이곳이 ‘절멸 수용소’인지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고 밝혔지만, 주정부가 초기 수사를 부실하게 진행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따라 사건 수사는 연방 검찰로 이관됐다.

사건 현장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군사 훈련장으로 보이는 공간과 함께 다양한 생활용품들이 흩어져 있었다. 또 18개의 여행용 가방과 약 150장의 담요가 발견됐으며, 대규모 인원이 생활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일부 희생자들은 이곳에서 살해된 뒤 불태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날은 실종자 가족들과 취재진이 처음으로 공식적인 허가를 받아 현장을 방문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당국이 투명하게 조사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현장 방문을 요구해 왔다. 멕시코에서는 약 12만5000명이 실종된 상태이며, 대부분 끝내 찾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멕시코에선 실종 사건이 CJNG를 비롯한 마약 카르텔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멕시코 카르텔들은 소셜미디어(SNS)를 이용해 젊은이들을 속이거나 강제로 비밀 훈련 시설로 끌어들인 뒤 조직 가입을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명령을 거역할 경우 가차 없이 살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량학살 흔적이 가득한 이곳은 익명의 제보를 통해 지난 5일 처음 발견됐으며, 내부에서 발견된 유골과 물품들이 멕시코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앞서 이곳은 지난해 9월에도 당국이 한 차례 급습한 장소였다. 당시 경찰과의 총격전 끝에 10명이 체포되었으며, 시신 1구가 발견되었지만, 대량 학살 흔적은 방치된 채 남아 있어 현지 경찰과 마약 카르텔 간의 유착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테우치틀란에서 법의학 기술자들이 통제된 구역을 지키고 있다.(사진=로이터)

멕시코 현지 언론 밀레니오(Milenio)는 생존자의 증언을 인용해 지역 경찰이 직접 이 시설로 사람들을 끌고 갔다고 보도했다. 생존자는 CJNG가 조직원 훈련 과정에서 신참들에게 서로 싸움을 강요하고 마지막 시험에서는 인육을 먹게 하는 비인도적인 방식을 사용한다고 전했다. 시험에서 떨어지면 곧바로 살해당하고 시신은 불태워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훈련을 통과한 신참들에게는 월급 1만2000페소(약 87만5000원)이 지급되며, 탈출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생존자는 다른 주로 이동한 후 간신히 감시를 피해 탈출했다고 증언했다.

CJNG는 원래 멕시코 최대 마약 카르텔인 ‘시날로아 카르텔’의 일부였지만, 2010년대에 독립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태평양 연안 지역을 기반으로 유럽과 아시아에는 메탐페타민(필로폰)을, 미국에는 강력한 합성 마약인 ‘펜타닐’을 밀수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펜타닐의 주요 원료는 중국에서 공급되며, 멕시코 산악 지대에서 비밀리에 합성돼 미국으로 밀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CJNG는 경찰 및 정부 관계자들을 매수해 단속을 피해왔으며, 현재 멕시코 30개주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발견된 훈련 캠프 역시 CJNG의 활동 중 일부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레한드로 헤르츠 멕시코 연방 검찰총장은 “현장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발견된 증거물조차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았다”며 하리스코주 검찰의 부패와 직무 태만을 강하게 비판했다.

현재 멕시코 하리스코주 실종자는 약 1만5000명으로 멕시코 전체 실종자의 12%에 해당한다. 연방 검찰은 앞으로 직접 수사를 진행하며, CJNG와 지역 당국 간의 유착 여부도 조사할 방침이다.

이번 사건으로 셰인바움 대통령이 공약했던 범죄 감소와 치안 강화 약속이 시험대 올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셰인바움 대통령은 정치적 스승이자 전임자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전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지만, 현지에선 실종 사건 대응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이 정치적으로 ‘아킬레스건’이 되느냐의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이소현 (atoz@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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