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수 연세대 치대 학장 “구강 건강 허물어지면 삶의 질도 무너져” [건강한겨레]

윤은숙 기자 2025. 3. 2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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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영수 연세대 치과대학 학장
‘입 늙으면’ 치아·잇몸 나빠질 뿐 아니라
혀 둔해지고 발음 어눌…“대화도 힘들고”
사망률 50% ‘흡인성 폐렴’ 발병률 높아
임플란트보다 ‘적극적 예방’ 매우 중요
관련 연구에 대한 정부 차원 지원 필요
정영수 연세대 치과대학 학장은 지난 14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진행된 건강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구강 노쇠’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전체 몸 건강 유지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류우종기자wjryu@hani.co.kr

‘구강 노쇠’라고 하면 흔들리는 치아나 피 나는 잇몸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입안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씹고 삼키는 데 필요한 근육이 약해지고, 혀와 입술의 움직임이 둔해지며, 침 분비량까지 줄어든다. 광고에서처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기’가 점점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발음이 어눌해지면서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대화마저 힘들어진다.

2007년부터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일본은 일찌감치 구강 노쇠 문제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예방과 관리에 나섰다. 구강 건강이 전신 건강과 직결된다는 점을 고려해 구강 기능 저하를 조기에 발견하고 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우리나라 역시 올해부터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면서 노인의 구강 건강을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의료계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정영수 연세대 치과대학 학장은 구강 건강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온 전문가다. 지난해 2월부터 지난달까지 대한치과병원협회 제12대 회장을 맡아 활동하며,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속에서 구강 노쇠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꾸준히 강조해왔다. 이와 관련해 정부와 협의를 주도하며 구강 노쇠 진단 및 치료의 제도화를 위해 힘써왔다.

진찰중인 정영수 연세대 치과대학 학장. 류우종기자wjryu@hani.co.kr

구강 기능 저하로 인해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신체 노화의 가속화다. 일본 지바현 가시와시에서 진행된 약 2천 명 규모의 대규모 고령층 연구 ‘가시와 스터디’에 따르면, 구강 기능이 저하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신체 노쇠, 근감소증, 사망 위험이 2배나 높았다. 또한 전신 노쇠와 신체 능력 저하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전에 구강 기능 저하가 먼저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학장은 “가장 큰 문제는 씹는 힘이 약해지면서 식사량 자체가 줄어든다는 점”이라며 “영양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체중 감소, 근육량 저하가 일어나고, 이로 인해 신체 활동이 위축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로 주변에서 노인들의 건강 상태를 보면 차이가 확연하다.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치아를 잃었거나 구강 노쇠가 일찍 진행된 분들은 그렇지 않은 분들에 비해 외관적으로도 차이가 드러날 정도로 노화가 더 빠르게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구강 노쇠의 파장은 단순히 ‘잘 먹지 못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성과 인지 능력 저하에도 영향을 미친다. 발음이 어눌해지고 입 주변 근육이 줄어들어 얼굴 움직임이 둔해지는 등 전반적인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면서 외출이나 모임도 뜸해진다. 타인과의 대화, 쇼핑, 대중교통 이용 같은 ‘인지 능력이 필요한 활동’이 감소하면 치매 위험까지 커질 수 있다.

정 학장은 “일본의 한 연구에서 약 5700명의 자립도 변화를 63살부터 87살까지 추적한 적이 있다”며 “연구에 따르면 나이 들어도 자립도가 높은 이들, 즉 건강한 장수를 이어가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구강 상태가 꼽혔다. 이 밖에도 사회성, 정신 건강, 영양 기능, 신체 기능 등이 중요하게 작용했는데, 이 모든 것이 구강 건강과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구강 노쇠는 직접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입이나 식도에서 음식물, 음료, 구강 내 세균 등이 폐로 들어가면서 발생하는 흡인성 폐렴의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사망률은 연구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15~30% 수준이며, 고령자나 중증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50% 이상까지 높아질 수 있다.

정 학장은 “나이 들면 씹고 삼키는 능력이 약해지면서 음식물이 기도로 잘못 넘어가는, 이른바 ‘사레’ 걸리는 일이 많아진다”며 “젊은 사람들은 강한 기침 반사로 이를 해결할 수 있지만, 노인은 기관지 근력이 약해 음식물이 폐로 들어갈 위험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적극적인 구강 관리를 받은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비교했을 때, 폐렴 발생 가능성이 1.67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이처럼 구강 노쇠와 고령층의 건강은 밀접하게 관련돼 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논의가 걸음마 단계다. 현재 고령층 구강 건강은 조기 진단과 예방보다는 사후 치료나 ‘임플란트’ 중심으로만 관리되고 있다. 정 학장은 “치아는 물론 구강 전체 건강에 대한 국내의 논의는 여전히 손상 뒤 치료에 치중돼 있다. 그렇지만 손상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적극적인 예방이 매우 효과가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물론 대한치과병원협회, 대한노년치의학회 등 의료계에서는 한국형 구강 노쇠 진단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왔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연구과제를 통해 진료지침도 개발된 상태다. 그렇지만 실제 의료 현장 적용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구강 노쇠를 측정하기 위한 의료기기 허가도 제한적이다. 정 학장은 “의료기기 허가가 나지 않으면 의료 현장에서 구강 노쇠를 측정할 방법이 없다”며 “진단 기준을 만든다고 해도 적절한 장비가 없으면 실질적인 진단과 치료가 어렵다”고 말했다. 기기가 없는 상황에서 연구나 대규모 실태 조사도 힘들다. 건강검진에 구강 노쇠 항목을 도입한다든가 진단과 관리를 급여화하기 위해 필요한 근거 확보부터 난관인 것이다. 더불어 치과의사가 구강 노쇠 검진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 시스템도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초고령 사회를 먼저 경험한 일본은 구강 건강 관리에 대한 정책적 접근이 한국과 다르다. 일본 후생노동성과 치과의사회는 1989년 ‘8020’(80살까지 자연 치아 20개 유지) 캠페인을 도입해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냈다. 30년간 꾸준히 추진된 결과, 8020을 달성한 노인 비율은 1989년 7%에서 2019년 51%로 대폭 증가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일본은 2018년 ‘구강 기능 저하증’이라는 병명을 공식적으로 도입하고 요양급여 체계에 포함했다. 이를 통해 구강 건강 관리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의료 비용 절감과 직결된다는 점을 정책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실제로 일본 연구에서는 구강 기능이 저하된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연간 장기 요양 서비스 비용이 최대 8천달러(약 1천만원) 더 소요된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정 학장은 “정부는 물론 국민도 구강 건강이 단순히 치아 관리 차원을 넘어 전신 건강과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노인의 구강 건강을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은숙 기자 su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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